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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오만과 편견

살면서 느꼈던 편견에 관한 나의 소소한 생각들


‘점심배식이 완료되었으니 입소자 여러분들께서는 현관문을 열고 식사를 들여가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방송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침대에 널브러진 몸은 쉬이 일으켜지지가 않았다. 대학 동기 아버지의 부고 소식으로 차분하게 시작된 오늘 아침, 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그 심오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 격리되어 있기 때문일까? 내가 원한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내가 원치 않는다고 죽음이 다가오지 않는 것도 아닌 산다는 것, 그 아이러니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러하기에 오늘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어야 하겠으며 그러하기에 눈이 떠진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잘 지내봐야겠다 다짐했다. 어느 순간 친구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을 듣게 될 만큼 내 나이가 많아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면서 직접 조문가지 못하는 형편을 메시지에 담아 친구에게 조의금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그래, 살아있는 사람은 또 열심히 살아야지! 점심을 먹자.' 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현관문을 열자 아래쪽 배식 탁자에 놓인 롯데리아 마크가 보였다. 그렇다. 그대가 예상한 것처럼 오늘의 점심은 햄버거. '햄버거 진짜 먹고 싶었는데 너-어-무 좋다.' 신나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았다. 사실 이 곳에 와서 내 노트북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용도로 사용됐는데 햄버거를 눈 앞에 두니 영상 하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전 폐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도 폐렴 소견 없이 정상으로 나왔고, 남편의 코로나 재검사 결과 또한 음성으로 나와서 다시금 평안함을 찾은 나였다. 게다가 오늘 의료진 선생님도 내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으니 복용 중인 약도 내일부터는 하루에 두 번으로 줄여보자고 하셨다. 기분도 좋고 햄버거에는 역시 영화지- 라는 생각에 넷플릭스를 검색했다. 마땅히 보고 싶은 것이 나타나지 않아 생각을 접을까 하는 순간 <오만과 편견>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래, 이거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전을 좋아했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오만과 편견, 주홍글씨, 빨간머리 앤 등의 소설을 좋아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고전 속에 나오는 사랑이야기도 좋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서는 여성 캐릭터들에 매력을 느꼈고, 옛날 시대의 고풍스러운 배경과 의상들을 상상하며 책을 읽을 때 나는 행복했다. 고전소설을 읽으면 내 귓가에 클래식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고전 속으로 빠져들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햄버거 한 입을 딱 베어 먹는 순간, 내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아.... 역시 햄버거는 버거킹이지. 나 진짜 롯데리아 안 좋아하는데 왜 하필 롯데리아야. 진심으로 와퍼가 먹고 싶다..." 사실 이 생각은 굉장한 모순이다. 현재 나는 입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각/후각의 상실로 맛과 냄새를 맡지 못하기에 분명 맛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햄버거=버거킹 와퍼'라는 진리의 구조가 머릿속에 딱 박힌 사람으로서 롯데리아의 새우버거에 편견이 있었고 그 편견은 내 모든 걸 지배해 버렸다.


살면서 햄버거를 남겨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결국 함께 온 감자튀김이며 치킨 파이이며 전부 남겼다. 가족 채팅방에 햄버거를 남겼다고 하자 엄마가 말했다. 햄버거를 정말 좋아하는 우리 딸이 그걸 남겼다고 할 정도니 진짜 입맛이 없는 게 확실하다며 우리 가족 모두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하셨다.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다. 다시 <오만과 편견>의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혹시 그대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요약하자면 평범한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애칭 리지)은 무도회에서 만난 부유한 다아시라는 남자의 오만함이 불쾌하여 그에 대해 비난하고 그를 싫어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다아시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편견으로 다아시를 바라봤던 그녀의 마음이 변화되어 그에 대해 사랑의 눈을 뜬다. 자신의 태도를 뉘우친 엘리자베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지금으로 바꿔보면 재벌남과 평범녀의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모두가 말하는 진부한 사랑이야기 이지만 여기에서 나는 깨달음 하나를 얻는다.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의 오만함은 편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 있음을 말이다.




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거나 알게 될 때 마음 속에 놓치지 않는 전제 하나를 깔아 둔다. 그것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도 기대가 없어야 실망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인간은 엄청난 고난을 겪지 않는 한 기본 성품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무 살의 나 또한 사람에게 집착했던 때도 있고 숱한 남자 친구들과 열렬하게 싸웠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모든 싸움은 대부분 내가 상대방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는다. 그러하기에

 "사랑한다"

이 말 속에 상대방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하는 고백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모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성숙한 상태에서 만난 남편에게는 화를 낼 일이 없었다. 그를 변화시킬 이유도 없었다. 우리가 싸울 일도 없었다. 나는 남편 그 자체를 존중하고 좋아했으며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를 사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툼 없이 지금껏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건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정말로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서로에게 호감을 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은행은 3-4년에 한번씩 순환근무를 한다. 한 지점에서 유대관계를 가지고 몇 년씩 지내던 동료들과 떨어져 다른 지점으로 옮겨야 할 때의 긴장감은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찌 모든 사람들이 나와 백 프로 마음이 맞을 수 있겠는가. 나와 사이가 불편한 사람이 있을 때 퇴사할 때까지 그 사람을 봐야 한다면 그 얼마나 고통이겠는가. 그럴 때 이런 순환근무방식은 근무환경이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니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곳이라 발령이 나고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할 때 소문이 먼저 가서 그 자리에 앉아있다. 일은 얼마나 잘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기혼자인지 미혼자인지 자녀는 있는지 등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미 편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볼 이유가 투성이다. 그리고 함께 지내면서 그 편견의 사실여부를 확인해 간다.


은행생활이 오래되면서 나는 되도록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미리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누군가 새로 발령이 났다고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안테나 망을 쭉 뻗어 그 사람에 대해 먼저 캐묻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 궁금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사전 지식(편견)'은 자꾸만 소문에 그 사람을 껴맞추게 만든다. 아무런 편견 없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우리의 눈은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 사실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라는 게 이미 편견 덩어리로 가득한 것이 아닌가.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나부터 편견의 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편견을 벗어던질 때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진실된 사람 냄새를 맡을 때 세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편견의 사실여부를 체크하는 관계가 아닌 사람 냄새 가득한 관계로 일터가 변할 때 매일의 출근길이 색다를 수 있다는 걸 여러 관계 속에서 알게 되었다.




코로나와 점차 이별할 준비를 하면서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편견이다. 현재로서는 재감염될 위험 때문에 완치 판정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이고 백신 개발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한 질병인데, 내가 코로나 확진을 잘 이기고 세상에 나갔을 때 모든 이들이 이전처럼 나를 봐줄까 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내가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일 수도, 이것이 코로나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모아져서 부작용 없는 백신이 개발되고 마음 놓고 마스크 없이 길거리를 활보하게 되는 그날이 다시 온다면 지금 했던 염려들도 한낱 먼지와 같을테니 오늘의 걱정은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항상 진실은 아니니깐 눈에 보이는 현상 그 너머의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센터에서의 아홉째 날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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