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코로나,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두 남자

나를 울고 웃게 만드는 남편과 아들이 참 그립다


“엄마~~~~" 

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목소리는 진짜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내 꼬마 녀석의 소리인데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지금 격리센터에 있는 게 맞다. 오전에 엑스레이 검사가 있어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씻고 있던 중이다. 내가 아들이 그립긴 그리운가 보다. 환청이 다 들리네- 하고 푹 고개를 숙였다. 사실이면 참 좋으련만, 이 목소리가 실제로 내 귀에 들린다면 참 좋으련만. 여느 날처럼 이 문을 벌컥 열고 "엄마 샤워해?" 라며 깜짝 놀래키는 녀석이 참 그리운 아침이다. 샤워기를 더 세게 틀기 위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건 내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발디딤으로 인해 공기와 물이 빠지면서 물 젖은 화장실 슬리퍼가 만들어 낸 소리였다. 하지만 아들이 내는 목소리의 억양까지 정말 똑같았는데... 허탈함에 기운이 다 쪽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다섯 살 내 꼬마는 엄마 냄새에 굉장히 민감하다. 은행에 출근하는 날이면 곤히 자고 있는 두 남자를 최대한 깨우지 않기 위해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듯 매일 아침마다 정성스레 아주 조심히 이불 속에서 나온다. 그리고는 까치발을 들고 화장실까지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걸어간다. 보통의 기상시간은 매일 아침 6시 20분. 아침마다 나는 도시락을 싸고 설거지통의 그릇들을 제자리에 넣어두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선식 한 잔을 마시고 출근을 한다. 출근 때까지 두 남자가 잠에서 깨지 않을 확률은 한 5%? 거의 매일 내가 화장실에 딱 들어가는 순간 "엄마~~~~" 하며 아들이 벌컥 문을 연다. 문 너머의 풍경은 거의 매일 같은 모습이다. 두 눈을 비비면서 잠에서 덜 깨 비틀비틀 거리는 내 꼬마가 말한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엄마 회사 가려고 씻어?"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응, 정말 아쉽게도 오늘은 엄마 회사 가는 날이야, 너는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고. 하지만 세 밤만 더 자면 주말이지롱~~~ 그때 우리 신나게 놀자!"라고 말하는 내게 매일 내 꼬마는 말한다. "알겠어, 엄마. 그럼 샤워하고 화장하고 회사 가기 전에 꼭 침대로 와. 나한테 인사하고 가. 잊지 말고 까먹지 말고 잃어버리지 말고!"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없어지는 걸 어찌 그리 알고 매일 일어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녀석은 잘 때도 수시로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편인 나는 자면서도 그걸 느낀다. 내 꼬마는 나와 조금만 거리가 멀어져도 손을 더듬으면서 나를 찾는다. 그러다가 엄마의 머리카락이 손에 만져지거나 엄마의 몸에 자신의 신체가 닿으면 다시 안심하고 잔다.


코로나 확진을 받기 이틀 전에는 혹시 몰라 아들과 분리되어 잤다. 분리라고 해 봤자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혼자 잤는데 그 이틀간도 아빠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녀석은 새벽에 수시로 깨서 엄마를 찾았다. 엄마 밑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속삭이는 내 목소리에 녀석은 안심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런 그 녀석과 벌써 못 본 지 일주일. 영상통화를 해도 그리움은 늘 사무친다. 매일 밤 홀로 이 곳 침대에 누우면 나 또한 찰싹 붙는 녀석의 냄새가 그립다. 매일 밤마다 내 겨드랑이 밑에 얼굴을 파묻고 "킁킁킁킁- 난 엄마가 좋아, 엄마 팔은 세상에서 제일 말랑말랑해." 라며 녀석만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그 꼬마 녀석이 참으로 그립다. 남편과 연애할 때처럼 나를 울고 웃게 만드는 또 다른 남자, 내 아들이 요즘 나의 최애 꼬마 남자 친구다.


요 녀석이 어느덧 커서 다섯 살이 되니깐 아빠가 옆에 없을 때도 꽤나 든든히 엄마를 지켜준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남편은 직무의 특성상 거의 매달 해외출장을 나갔다. 한번 출장을 나가면 최소 일주일을 비우는 남편이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아들에게 "아빠 비행기 타고 출장 다녀올게. 그 사이에 엄마 잘 지켜줘야 하는 거 알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 아빠의 부재가 있을 때면 녀석은 더 의젓한 모습이 되었다. 최근의 일이다. 아이와 하원 하면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날 나는 긴튜튜스커트를 입었는데 세찬 바람에 치마가 확 들렸다. 그 순간 놀라서 ‘어어어 어-'하면서 치마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내 꼬마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면서 온 몸으로 치마의 들림을 막아주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아이구야~ 보디가드가 따로 없네. 네 엄마는 좋겠다~"라면서 웃으며 지나갔다. 녀석을 쳐다보니 아주머니의 말에 조그마한 어깨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앞장서서 가던 녀석이 뒤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엄마~ 조심히 따라와. 나만 따라오면 돼. 그러면 안전하다고!" 조그마한 발로 열심히 종종 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런 꼬마 녀석이 지금은 내가 아닌 아빠를 지켜주고 있다. 남편이 어제 오전부터 발열이 시작되어 자가격리 중간에 또다시 코로나 재검사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온 가족은 긴장을 했고 사방팔방에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아들은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로써 알았는지 평소보다 아빠를 보채지도 않고, 지난번 내가 했던 것처럼 아빠 옆에 오지 말라는 약속도 잘 지켰단다. 갑자기 마스크를 착용하고 비닐 위생장갑을 끼고 있는 아빠를 대하는 내 아들이 느꼈을 무서움을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코로나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1차로 엄마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본인 옆에 남은 아빠마저 그렇게 될까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그리고 오늘 오전 9:25분에 남편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코로나 '음성 판정' 문자가 오고 아빠가 기뻐하며 비닐 위생장갑을 벗어던지자 그제야 함께 해맑게 웃었다고 했다. '음성'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면서 아빠가 좋아하니 본인도 

"음성! 음성! 음성!"

을 외치며 함께 기뻐했단다. 남편과의 통화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저 멀리 아들이 "음성! 음성!"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음성 판정 소식으로 오늘 하루도 기쁘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기쁜 날에 내 눈물이 빠질 수야 없지. 오늘도 눈물 한바탕 흘려주고 시작한 하루였다. 두 남자를 생각할 때면 미안함에 눈물이 나고 감사함에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 자가격리 중에도 아이와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는 남편 덕분에 간간히 웃음도 피어난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 옆에 있는 남자 하나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고 이 녀석과의 추억이 쌓이면서 이제는 아들이 빠진 이전의 삶이 기억나지 않고 앞으로의 매 순간을 오랜 시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한다.

 



어느 날 안방에 걸려있던 남편과 단 둘이 찍은 스냅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들을 발견했다. 왜 자기는 저 사진 속에 없냐며 굉장히 시무룩해하는 아들이 너무나 귀여워 엄마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녀석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저 때는 네가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이였거든. 하지만 네가 우리에게 온 순간부터 앞으로 모든 시간에서 네가 빠진 사진을 찍는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오래도록 계속 함께일 거니깐!" 그러자 녀석은 나를 더 꽉 안으며 말했다. "내가 엄마한테 너무 늦게 온 거야? 엄마를 찾는데 오래 걸렸어. 나는 엄마가 좋아. 엄마 사랑해." 작은 고사리 손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날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나는 참 행복한 엄마로구나. 그 행복감으로 인해 센터에서의 팔일째도 나쁘지 않은 하루가 되었다.



이전 10화 코로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