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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녹슬어 버린 엄마의 가슴

아들과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가슴> 그림책을 떠올리며


“으아아앙.... 엉엉엉, 엄...마.... 보,... 보고,, 엉엉... 싶어..." 오늘 아침의 시작은 아들의 울음소리였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지도 벌써 열두 번째 날. 그간 수없이 영상통화를 했지만 이렇게 나를 보고 엉엉 우는 아들의 모습은 처음이다. 남편을 통해 아들이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얘기는 여러 번 전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실제상황이다. 내 앞에서, 그것도 당장 달려가서 안아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이곳이야말로 감옥이다. 아들은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밤잠을 잘 자고 일어나면서 엄마 꿈을 꾼 것일까.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은 울음이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우는지 화면에는 컴컴한 안방의 천장만 보였다. 아들에게 얼굴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아들은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흑흑, 엄마, 못.... 엄마 못 보겠어... 엉엉.." 엄마의 얼굴을 보면 더 슬퍼서 차마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겠다는 아들의 속마음이 나타나는 그 말에 눈물샘이 터졌지만 아들에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눈물을 삼켰다. 독약처럼 아주 썼다. 내 생에 이렇게 쓴 눈물은 처음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랑은 차원이 다른 눈물이다. 참 쓰다.




아들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이다. 아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것은 처음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몇 번의 떨어짐은 있었다. 주로 내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그래도 길어야 일주일이었다. 출장이 잦은 아빠와는 떨어짐이 익숙하지만 엄마와의 떨어짐은 익숙하지 않은 우리 아들. 엄마가 자기의 세계이고 우주인 녀석에게 지금의 긴 이별은 정말 가혹하리라.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빠와 엄마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기다림 속에 잠이 든다는 내 사랑. 이제 다시 만날 날이 진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우리 아들은 정말 내가 그리웠나 보다. 어느 정도 울음이 진정되고 서로가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어 통화를 마무리하려던 때,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정말 사랑해. 우리 아들 많이 보고 싶어. 츄츄(손뽀뽀를 날렸다)" 그러자 아들은 말했다. "내가 엄마보다 더 많이 보고 싶어. 나는 바다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말해주는 아들 덕분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도 달콤한 우리 아들의 사랑고백. 자신이 알고 있는 무한한 단어들을 다 사용해도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으리라. 내 마음이 그러하듯이.


육아휴직 중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는 늘 혼자만의 티 타임을 가졌다. 가끔씩 어린이집 엄마들과 함께 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혼자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했다. 그때는 그게 정말 소원이었으니깐. 우아한 티 타임이 끝나면 근처 중고서점에 들렀다. 매일 중고서점에 들러 반짝이는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나만이 아는 희열이었다. 그날도 나는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 유아서적 코너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책이었다. 포르투갈에서 온 <엄마의 가슴>이라는 그림책이었는데 제목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엄마의 가슴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책장에서 책을 꺼내자마자 책의 컬러풀 함에 놀랐고 유럽 특유의 보색 대비 감각에 놀라면서 책장을 넘겼다. 가만히 서서 한 장 한 장 읽어갔다. 이 책은 아들을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해 소장하겠노라며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렇게 나는 보석 하나를 손에 들고 집으로 왔다.


그 날 저녁, 하원하고 나와 놀던 아들이 소파에 놓인 그 책을 발견했다. 아들은 이건 무슨 책이냐며 관심을 보였다. 그 책을 발견한 오전의 일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라는 단어에 우리 아들의 이름을 넣어가며 한 장 한 장 읽어갔다. 그 후로 이 책은 나와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몇 날 며칠이고 아들은 그 책을 들고 와서 내게 읽어 달라고 했다. 밤에 잠을 자기 전에도 읽어 달라고 하고, 그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잠드는 날도 있었다. 그때 우리 아들의 나이 고작 세 살 때였다. 또래보다 말을 조금 더 빨리 유창하게 잘하는 편인 아들은 그 책의 내용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날 아들이 내게 물어왔다.

오랫동안 아이를 볼 수 없을 때면
엄마의 가슴은 녹슬어 버려요.


“엄마, 녹슬어 버리는 게 뭐야?" 나는 한참 고민했다. "음, 책 제일 앞에 나왔던 말 기억나? 엄마의 가슴과 아이의 가슴은 거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아이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엄마의 가슴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녹이 슨다는 것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거야. 엄마의 가슴과 아이의 가슴이 연결이 끊겨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동일하게 느낄 수 없는 거지. 마치 네 장난감 배터리가 다 되어 멈춰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아들은 나를 살며시 안아주면서 말했다. "엄마, 내 가슴은 엄마가 옆에 없으면 녹슬어 버리고 말 거야." 나는 말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 우리가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애석하게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 아들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는데, 아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만 같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착잡해졌다. 혹여나 이번에 겪은 엄마의 오랜 부재가 아들의 가슴속 한켠에 섭섭함으로 자리 잡을까 봐 내심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엄마의 부재를 100% 덮을 수는 없었겠지만 너무나 훌륭하게 아들의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있으니 90% 정도는 커버가 되었을 거라고, 부족한 10%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날부터 내가 차곡차곡 다시 덮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들이 장성하여 우리가 옛 추억에 대해 웃으며 얘기하게 되는 그 어느 날, 나의 브런치를 아들에게 공개하고 엄마가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했노라-고 말해주겠다 생각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오소희 작가님의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이 있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어떤 문구든 간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엄마가 주는 무게감과 엄마가 된다는 그 고결함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될 무렵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첫 장을 열고 네 페이지 만에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이미 '나'라는 꽃을 틔우기까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먼저 묵묵히 지나온 나의 엄마가 떠올라서 눈물이 났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하는 멀고 먼 여정을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의 염려에 떨어진 눈물이었다. 내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데 과연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 비슷한지 스스로를 돌아봤다. 워킹맘으로 아들에게 한참이나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그 이상의 것을 나는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들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아직은 이런 이상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조금은 역부족인 나의 다섯 살 꼬마 녀석이지만!


어쨌든 오늘은 사랑하는 그 녀석이 너무나 그립다. 내 마음이 완전히 녹슬어 버리기 전에 속히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한참을 울던 녀석이 말했다. "엄마, 이제 전화 끊어줄래? 나 이제 아침 먹으면서 놀아야 하거든? 우리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라고 말이다. 녀석 덕분에 울다가 다시 한참을 웃었다. 내 엉덩이에 뿔 나겠네. 우리 아들 확실히 아들은 아들이다. 아들에게 나는 말했다. "아들~ 조금만 기다려! 엄마 코로나 거의 무찔렀어. 우리 진짜 곧 만날 수 있어! 울지 말고 딱 기다려, 사랑해!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




한 살 두 살 세 살,


처음 3년은 너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잘 키우는 데 쓰마.

너의 미소도

너의 똥도

모두 나를 미치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가

미치도록 힘겨울 것이다.

이런 '미침'은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

나는 웃다가,

울다가,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 네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설 것이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 4년은 너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뛰고 웃고 노래하는데 쓰마.

봄의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 것이다.

가을 낙엽 위를 함께 뒹굴 것이다.

너는 시인의 어휘로 꽃과 낙엽을 낭송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음미하는

영광스러운 청중이 될 것이다.


어쩌면 너는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몇 바늘 꿰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왕성히 회복할 것이다.

내가 아파 누우면 내 이마에

흥건한 물수건을 올려주며

제법 근심스런 표정을 짓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하루하루가

엄마와 자식 사이의 황금기임을 알 것이다.

알기에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이 5년은 네가 네 방식대로

생을 펼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쓰마.

내 잣대로 너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너를 속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잘하는 아이라면

그 또한 내게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의 내 진정한 숙제는

이전의 겹쳐 있던 너와 나의 생을 따로 떼어놓고

나란히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를 가꿀 것이다.

네가 너의 생을 펼칠 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가끔 나의 세계를 노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이 4년은 너를 모른 척하는 데 쓰마.

네가 네 길을 네 식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나의 방해로 인해

아예 모색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모색의 길에서 중간에 돌아온다거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나는 빠져 있어 주마.


믿으면서,

너를 믿으면서,

너를 믿는 나를 믿으면서,

나는 담담히 내 세계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이다.

기성화된 내 눈에

너는 실컷 아둔하게 방황하라.

실컷 기이하게 방황하라.

너는 신세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갈 특권이 네게 있다.


늙은이들의 약아빠진 조언에 겁먹지 마라.

꽉 막힌 세상의 셈법에 굴복하지도 마라.

예비해두지도 마라.

탕진해도

방전되어도 좋다.

밧데리가 다 나가 기절하고 깨어난 뒤

현기증을 느끼며

네가 첫 눈을 뜨고 볼 세상,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이 네 것이다.



열입곱 살 열여덟 살 열아홉 살,


이 3년은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모색한 바를 내게 들고 와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할 것이니,

진실로 나의 할 일은 그 항목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칠 것이다.

너는 이미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도움만을 요구할 것이다.

사실 네가 내 눈에 띄는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여덟 살이 된 이래로

홀로 담담히 가꿔왔던 내 세계에 집중할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목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네 젊은 세계에 감탄할 것이다.

네 무모함과,

네 불안정함과,

그럼에도 두려움을 꾹꾹 누르고 나아가는

네 의지에 감탄할 것이다.


너는 가끔 생각난 듯

나의 세계를 힐끗 들여다볼 것이다.

그것이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래, 되었다는 듯

한번 따끈히 안아주고

총총히 네 바쁜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힐끗, 네 한번의 시선과

따끈한 네 한 번의 허그,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또 살아갈 것이다.



스무 살,


너는 어른이 되었다.



                                                                                   - 오소희 작가 <엄마의 20년>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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