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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먹고 산다는 것

생활치료센터에서 삼시 세 끼를 먹고 지내는 날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해?
밥은 잘 나와?" 


내가 코로나 확진 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고 했을 때 가족이며 친구들이며 제일 먼저 내게 물어본 질문이다. 모두 다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일한 질문을 해서 제법 놀랬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이니깐.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응~ 잘 먹고 지내고 있어. 매일 삼시세끼 편의점 도시락이 나오는데..."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똑같이 탄식을 한다. "뭐? 편의점 도시락? 아니, 아픈 사람한테 식사가 그게 뭐야, 따뜻한 밥을 줘야지!" 황당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을 워워- 진정시키면서 나는 다시 말한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나오는 건 맞아, 근데 뭔가 조금 달라, 더 성의 있는 식사랄까..." 나의 그 말에 지인들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지 "그러면 다행이네, 난 또~" 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벌써 이 곳에 입소해서 삼시세끼 넣어주는 식사를 먹은지도 십삼일째. 끼니 수로만 치면 서른여섯 끼이다. 첫날 오후 5시에 입소하고 방에 들어와 30분 후 첫 배식이 됐을 때만 해도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첫날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 날 아침 배식을 받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면역력이 좋아지려면 잘 먹고 잘 자야 하는데 첫날 잠은 설쳤으니 밥이라도 제대로 먹자- 하며 꾸역꾸역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미후각의 상실이 지속되어 맛은 느끼지 못해도 열심히 밥을 먹었다. 열심히 먹으면 이 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 간의 불면 증상이 호전되면서 내 상황도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생활치료센터가 여러 군데에 있겠지만 내가 있는 이 곳의 식사는 전부 세븐일레븐에서 배달이 온다. 이 곳이 엄연히 병원은 아니다 보니 따로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들 수 없어 여러 가지 고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어 본 기억이 많지 않은 나지만, 밖에서 파는 편의점 도시락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건 알겠다.

- 오늘의 점심메뉴, 간식도 늘 하나씩 함께 제공된다.-

환자들을 위해 식사를 따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만큼 매 끼니에 대부분 샐러드가 있다.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방 안에서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지내야 하니 생리적인 불편함이 없도록 대장 활성화를 위해 푸른 야채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매 끼니에 대부분 고기가 포함되어 있다. 오리고기, 제육볶음, 불고기, 돈가스, 스테이크 등의 반찬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매 끼니에 국이 같이 배달된다. 대부분 편의점 간편식들로 매 끼니마다 다른 종류의 국이 함께 온다. 밥은 도시락과 별개로 따로 제공된다. 네모진 박스 안에 쫄깃한 밥이 한가득이다. 맛은 몰라도 씹는 식감을 통해서 밥이 참 찰지다고 생각했다. 식사가 배송될 때 한번 데워져서 오는지 밥에 따뜻한 기운이 그나마 조금 남아있다.




가끔씩 특별식이 나올 때도 있다. T.G.I 프라이데이 또는 SKY31 딜리버리 메뉴들이 배달되거나, 유일하게 딱 한번 햄버거가 배달되었는데 롯데리아 햄버거라는 것을 통해 이 곳의 배식을 롯데 계열사에서 맡고 있다는 걸 확실치는 않지만 상황들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따금 아침으로 엔제리너스에서 샌드위치와 커피가 배달되기도 한다. 내가 이 곳에 있는 동안 오늘 아침까지 총 세 번의 엔제리너스 특별식이 있었다. 입소하고 이틀 뒤 아침으로 아이스커피가 배달되었는데, 원래 따뜻한 커피만 마시는 나이지만 이렇게 만나는 커피가 너무 반가웠다. 물론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냥 천국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나흘에 한번 꼴로 차가운 음료가 배달되기도 했는데, 두 번째 만난 아이스 음료도 커피인 줄 알고 마셨는데 뭔가 굉장히 시큼해서 놀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음- 원두가 코스타리카 산인가? 굉장히 산미가 강하네!'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복숭아 아이스티였던 것 같다.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난 그냥 커피라고 생각하고 마셨지만 말이다.

- 오늘의 아침메뉴, 아침 간식은 연양갱 -

오늘 아침에도 엔제리너스에서 빵과 샐러드가 배달되었다. 오늘 함께 배달된 음료를 마시고 나의 미각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음료는 레모네이드 아니면 유자에이드 같았다. 굉장히 프레시 하다고 느꼈지만 미세한 감각이 살아나지 않아 아직도 음료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다. 어제부터 샤워를 하고 난 후에 샴푸 냄새도 언뜻 맡아지는 걸 봐서는 후각 또한 어느 정도 회복되는 중이다. 내가 이 곳에서 쓰는 바디샤워 향이 망고향이었다는 것도 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모든 것이 원래의 나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서 참 감사할 따름이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쉬고 열심히 글을 쓰면서 나는 차차 회복되고 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처음에 이 곳에 입소해서는 매일이 우울했지만, 남편이 예상했던 것처럼 나는 곧 이 곳에 적응해서 나만의 세계를 꾸리고 있었다. 계획과 실행은 없지만 매일의 내 기분을 알아주고 그것을 다독이며 나만의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고 있다. 하루의 일과 중에 내가 빼먹지 않는 것 또한 나로 인해 집에서 자가격리 중인 두 남자를 위한 특별식 배식 선택과 배달 주문이다.




나의 코로나 확진으로 나는 이곳에 격리되고 나의 두 남자는 좁은 집에서 14일이라는 자가격리 모험이 시작되었다.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아들과 함께 336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자신의 몸도 건사하면서 아들을 돌봐야 하고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인 돌밥인생을 보내면서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날 2시간 후에 벌어지는 이사까지 앞둔 상황. 자가격리라는 제약적인 환경에서 틈틈이 이사 준비도 해야 하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 모르긴 몰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자가격리 일주일 만에 발열이 난 남편은 중간에 코로나 재검사라는 믿기 힘든 고난을 겪어내야 했다. 물론 해프닝은 남편의 몸살감기로 끝났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하루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상당히 지옥이었다. 육아휴직 일 년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남편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난날의 축적된 멋진 경험들이 있었고, 어쩌면 그 경험이 오늘을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어려움에 처한 나의 두 남자에게 많은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최대한의 짐을 비우고 있던 상황에서 맞은 코로나 확진이라는 변수로 텅텅 빈 냉장고가 가장 문제였다. 당장 14일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 하는데 식재료가 없으니 남편은 당황했고, 그나마 가까이 계신 나의 친정 부모님께 장보기 리스트를 보냈다. 우리 부모님은 급히 장을 봐다가 그것을 현관문 앞에 두고 갔다. 그 안에는 손주를 위한 과일과 간식거리도 잔뜩이었다. 추석이라고 갈비찜을 해서 현관문 앞에 두고 가시기도 하고, 커피와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시부모님은 디카페인 캡슐과 남편이 좋아하는 먹거리들을 잔뜩 사다주기도 하셨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 때문에 내 여동생은 퇴근길에 상비약을 잔뜩 사서 현관문 앞에 놓고 갔다. 도련님과 동서는 우리 아들을 위한 책과 장난감들을 사서 택배로 부쳐주셨다. 남편의 지인들은 기프티콘으로 남편에게 먹을 것들을 선물했다. 이 두 남자를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되는 진풍경이 펼쳐졌지만, 이 가운데 우리를 도와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삼시세끼 밥만 먹는다고 사람이 만족할 수 있으랴. 이곳에서 내가 매 끼니마다 간식을 제공받는 것처럼 (사실 나는 간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상당수는 먹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뭔가 기분전환이 될만한 것들을 해 주고 싶었다. 답답하게 지내는 중에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특별식도 먹고 싶을 텐데 그러한 두 남자의 행복을 위해 중간중간 내가 출동했다. 이 곳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서, 나도 두 남자에게 민폐 말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전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배달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그 덕에 남편이 아픈 기간 중에는 죽을 배달 시켜 보낼 수 있었고, 뜨끈한 국물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두 남자가 좋아하는 설렁탕도 배달시킬 수 있었다.


주위 모든 이들의 염려와 사랑 덕분일까. 자가격리 중에 우리 아들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다. 또래 평균보다 저체중이었던 아들은 이 기간 동안 쑥쑥 성장했다. 남편이 동영상으로 아들이 체중계에 올라가서 체중을 재는 모습을 찍었는데 가족들 모두 이 동영상을 보고 환호했다. 아들이 잘 견디고 잘 자라고 있음에 모든 가족이 안심했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느라 힘들었던 남편은 살이 조금 빠찌고 흰 머리도 몇 개 더 늘어난 것 같아 내 맘이 조금 속상하지만 말이다.


이제 점점 끝이 보이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곧 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큰 시련을 이겨내고 나면 사람은 단단해는 법이다. 이 터널 끝에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빛나는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된다. 그런 기대감으로 오늘 하루도 남 못지않게 잘 보내봐야겠다. 오늘은 아름다운 가을의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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