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변수가 내게 준 인생의 터닝포인트
부랴부랴 퇴근하고 힘내서 우리 아들 픽업:D
그런데 이 녀석을 만나니깐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이 마법은 무엇!
엄마가 ABC 노래 불러달라 하니
노래도 불러야겠고 팝콘도 먹어야겠고..
그래도 완창으로 엄마 소원에 화답해 준 녀석:)
이 녀석이랑 과일 사러 퇴근하고 마트에 갔는데
카트에 앉고 싶다는 녀석을 위해,
허리/단전에 기합 한번 꽉 주고 아들램
번쩍 안아서 카트에 안착 성공!
그랬더니, 우리 아들
“엄마, 허리 괜찮아? 엄마, 허리 다 나았어?
나 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나한테 반문에서 마음이 찡...
장 잘 보다가 내 장에 탈이 났는지
화장실이 너무 급한 비상사태 발생.
아들에게 “아들, 큰일 났어!
엄마 응아가 너무 급해..ㅠ"라고 말하니
내 손을 꼭 잡고는 "엄마, 힘내. 쓰러지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고마운 녀석.
고생 끝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나오는
내게 화장실 앞에서 녀석이 말했다.
그것도 엄청 크게!
"엄마!!! 똥 다 쌌어? 이제 배 안 아파? 괜찮아???"
오늘도 나는 너의 단짠 귀여움에 푹 빠졌다.
- 우리 아들 생후 1178일. 38개월 21일 -
벌써 이곳에서 맞는 열세 번째 아침. 긴 어둠의 터널을 거의 빠져나가고 있음에 아침부터 감사했다. 이곳에서의 지난 2주일을 돌이켜보니 은혜 아니면 해내지 못했을 경주였다. 나 그리고 우리 집에 남겨진 남편과 아들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들이겠지. 내일 자가격리 해제를 앞두고 아침 일찍부터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재검사를 마치고 왔다는 두 남자의 소식으로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갑자기 작년 오늘 난 뭘 했는지 궁금해서 아주 오랜만에 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봤다. 마지막 포스팅이 2020년 9월 19일 토요일이다. 거의 매일매일 일기장처럼 아들의 사진과 함께 육아일기를 기록하던 나만의 비밀장소는 내 컨디션 난조와 함께 멈춰버렸다. 지인들에게 코로나 확진받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뭐 그리 자랑인가 싶어 이후의 모든 시간은 그대로 멈춰진 상태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작년 오늘 일기를 찾아냈다.
'아, 작년 오늘 나는 은행에서 퇴근하고 아들과 장을 봤었구나. 아, 맞다. 마트에서 저런 일이 있었지.' 하며 잠시 그때의 추억에 잠겼다. 버스 안에서 팝콘을 먹으며 내게 ABC 노래를 불러주던 아들의 목소리, 그날의 아들과 나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 때도 우리 아들은 엄마의 아픈 허리를 걱정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작년 초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면서 나는 한동안 아들을 번쩍 안아줄 수 없었다. 수술 후 6개월 안에 재발 확률이 높다는 교수님 말에 따라 굉장히 몸을 사리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이 '자기 소원은 엄마가 자기를 번쩍 안아주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아들조차 제대로 안아주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마트 카트에 앉고 싶다는 아들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온몸에 기합을 넣어서 아들을 번쩍 안아 카트에 앉혀줬더랬다. 내 몸이 부서져도 좋으니 아들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 또한 아픈 모습으로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되어 있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지 모르겠다. 어린 아들의 기억 속에 엄마가 아픈 모습으로만 남아있을까 봐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주말마다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함께 외출하고 좋은 곳을 찾아 열심히 떠났던 엄마의 웃음 가득한 모습이 아들의 기억을 온전히 지배하면 좋겠다. 센터에 입소해서도 아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던 나다. 매일 통화할 때마다 엄마가 코로나를 얼마나 열심히 무찌르고 있는지, 코로나가 얼마큼 도망갔는지 얘기해주면서 우리가 만날 날을 기대할 수 있게 희망찬 모습을 보였던 나다.
통화할 때마다 "엄마, 내 볼 만지고 싶어? 내 얼굴 통통해졌지?"라고 말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새어 나오려는 울음을 삼켜가며 엄마가 곧 가서 우리 아들 번쩍 안아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엄마의 모습을 늘 보여줬다. 오늘 아침, 이제 하룻밤만 자면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아들의 표정은 그 어느 날보다 기분 좋아 보였다. 매일 잠들기 전 엄마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달력에 X표를 치고 있는 아들이었다.
작년의 사진을 보니 우리 얼굴에는 마스크가 없다. 사진 속 우리 아들의 표정에는 네 살 꼬마의 순수함이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최근에 찍은 모든 사진들에 마스크가 씌워져 눈만 보이는 반쪽짜리 사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나는 잠시 예전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요즘,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생겼을 만큼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믿음이 점차 팽배해지는 요즘이다.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 앞에 모두가 두려움을 갖고 벌벌 떠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운데 한줄기의 희망을 갖는다. '이렇게 평생 살지는 않을 거야. 언젠가 이 공포도 사라질 때가 오겠지...'라며 마스크라는 생명줄을 벗어던지고 자유와 환희로 가득 찬 미래를 그린다. 우리는 과거의 삶을 동경하면서 다시 새로워질 미래를 동경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변수에게 직격탄을 맞기 전까지는 나 또한 그랬다. 지난날 제약 없이 아무런 제한 없이 해외여행을 가던 날들이 그립고, 아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쁨으로 야외활동하던 때를 동경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게 종식되는 그날, 우리 세 식구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보자고 다짐하며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고는 했다.
그러나 내가 코로나라는 녀석을 대면하고 보니 코로나 이전의 삶과 코로나 이후의 삶을 가르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세상은 코로나 전후로 역사가 바뀌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이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우리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기는 했으나 우리의 마음마저 바꿀 수는 없기에 코로나 전후로 인생을 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났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깐.
나에게 코로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리는 삶에 코로나가 쉼표를 찍어줬고 그 가운데 과거의 내 삶을 반추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이 조금 더 그럴듯하도록 재정비하는 시간을 마련해줬다.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나'이고 오히려 이런 이벤트를 계기로 영육 간에 건강한 내 모습이 되도록 애쓰는 중이다. 코로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은 오작교가 되어 주었고 오늘보다 더 행복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었다면, 책상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는 내 모습도 없었을 테니 코로나는 나에게 이래저래 고마운 녀석이다.
허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나는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내일이면 나도 생활치료센터에서 나가고, 남편과 아들 또한 자가격리가 해제되면서 우리 세 식구 얼싸안고 그동안의 회포를 풀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료지원반으로부터 아직 내게 남아있는 잔여 증상들로 인해 내일 예정되었던 퇴소는 조금 미루어질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발열은 잡힌 지 오래이고 가슴통증, 기침/가래와 같은 증상들은 호전이 되었지만 편도선이 붓고 그와 함께 파생되는 인후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증상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퇴소가 어렵다는 담당 교수의 판단이라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통보였다.
순간 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내가 또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한다니... 매일 밤마다 엄마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X표를 표시하고 있던 아들에게, 2주간 홀로 아들을 돌보면서 자가격리라는 극한의 상황 중에도 정신줄 잡고 이사 준비까지 해 온 심신이 지친 남편에게 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아빠가 "엄마 보고 싶지?”라는 질문에 대성통곡을 했다는 내 꼬마 녀석이 받을 상처가 헤아려지지 않았다. 나에게 아직 증상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슬픔보다 두 남자를 향한 애타는 내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내 마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흔들리려던 마음의 중심을 다시 다잡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생 아프지 않도록, 제대로 건강해져서 아들을 만나야겠다 생각했다. 더 제대로 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내게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되려 지금 나는, 심신이 다 지친 남편이 내일 이사까지 마무리하게 되면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아프지는 않을지 그게 더 걱정이다. 내 연락을 받고 잠깐의 상심은 했겠지만, 아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대신 설명해 주고 자가격리 해제 전까지 남은 아들의 두 끼니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이 글을 빌어 또 한 번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언제나처럼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것이다. 나 때문에 같이 상심한 가족들 또한 결국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낼 것이다. 긴 어둠의 터널을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해서 찬란히 빛날 햇살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 한 번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인생이지! 센터에서의 열네 번째 날이 조금은 아쉽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