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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코로나와 싸우는 사람들

백의의 천사 간호사 선생님들과 의료진들


불편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는데, 내가 머무는 음압병실을 열심히 청소하고 계시는 간호사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뭔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다. 하얀 방호복을 입고 있어서 눈 밖에 볼 수는 없지만 동그랗고 예쁜 눈의 선생님은 큰 키를 구부려서 병실 내에 있는 집기 이것저것을 소독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작은 병실 안 모든 것에 그녀의 손길이 꼼꼼히 닿았다. 내가 누워있는 침상의 헤드와 난간도 열심히 닦아주셨다. 심지어 그녀는 나의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녀의 방호 안경 속으로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보였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내게 편히 쉬라며 이야기를 건네고 병실 문을 나서는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에서 존경심을 느꼈다. 그녀는 내 병실에 입실하기 전 거쳐야 하는 전실에서 방호복을 벗기 위한 절차를 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전실을 떠나기까지 거의 7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선생님들은 내 병실에 한번 들어오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저 힘든 절차들을 겪어내는 것이다. 코로나와 싸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쩌면 저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 신세를 한탄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음압병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되는 곳이다. 방에 창문이 나져 있지만 열 수가 없다. 이 곳은 오로지 환풍구로만 공기가 흐른다. 화장실도 평상시에는 문을 꼭 닫아야 한다. 그게 이곳의 생활수칙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의 병원 병실을 청소하시는 분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병실 청소까지 직접 해내고 계셨다. 내 병실에 들어오려면 새하얀 방호복으로 전신을 보호해야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들은 진짜 백의천사이다.


어제 내가 이 병원에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순간부터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병실을 안내해 주고 함께 입실하고 입원에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하고, 하루에 3번 식사와 약을 갖다 주고, 매일매일 나의 활력징후(바이탈 체크)를 점검하고, 내 병실을 청소해 주는 모든 것을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해 주고 계신다. 환경 소독 차원에서 하는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지만 그런 시크한 태도가 더 멋지게 느껴졌다. 이전 생활치료센터에서는 모든 것이 전화로만 이루어졌었다. 사람의 모습은 입/퇴소할 때 안내해 주는 선생님들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곳 병실에서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수시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물론, 그들은 나를 만나는 게 싫을 수도 있지만.


어제 병원으로 전원을 오고 내 병실에 안착하기까지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내 옆에 계속 붙어있었다. 그녀는 심적으로 불안한 내 마음을 읽어주고 코로나 확진 이후의 내 가족들 상황을 물어봐주고 어린 아들이 코로나 확진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함께 기뻐해 줬다. 그동안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그리움을 느껴서일까. 나는 봇물 터진 듯이 나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2주 동안 약을 4번이나 바꿨는데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이곳까지 왔고 그래서 많이 속상하다는 나를, 그녀가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올해 초 코로나가 확산될 때부터 이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맡아오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만났던 코로나 확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병실에 입원해서 있는 동안 마음을 편히 먹고, 완치돼서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내게 용기를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옆에 오기를 기피하는 내 등을 쓰다듬어 주고 내 팔을 어루만져주며 괜찮아질 거라고 계속해서 힘을 주었다. 방호 안경 속의 본인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려 있을 만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답답했을 텐데도, 그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의 이야기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 코로나 확진자들을 돌보면서 많이 긴장하고 계실 텐데 오늘 저라는 환자 한 명이 더 추가되어 미안하다고 얘기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간호사는 본인의 직업이고 올해 초부터 숱하게 겪어온 탓에 괜찮다며 그런 마음 갖지 말라고 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한 말에서 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부모님께서는 정말 얼마나 매일 가슴 졸이실까요. 모두가 두려워하는 코로나라는 질병과 일선에서 맞서 싸우는 있는 딸이 자랑스럽지만 또한 얼마나 긴장 속에 계실지 상상이 안 되네요.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건강한 것이 부모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일 거예요. 부모님은 매일 선생님을 위해 수없이 기도를 하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맺혔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코로나 확진자들을 만났지만, 본인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기뻤다. 그녀가 내게 위로를 줬던 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아주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음에 감사했다.




교대시간에 따라 내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 선생님들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은 백의천사였다. 내가 질문을 하면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설명을 해 주었고, 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다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고 난 후부터 어딜 가나 반기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자존감은 꽤나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곳 선생님들은 나라는 사람을 계속 존중해 주었다. 내 상태을 계속 물어봐주며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함께 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내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찾아왔다. 담당 의사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신뢰감을 주는 톤이었다. 어제 입원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결과에 대해 얘기를 해 주셨는데 어제 내 가래에서 코로나 양성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에 나는 크게 놀랐다. 잔여 증상은 남아있지만 코로나와 어느 정도 이별을 했을 거라 생각한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눈에서 큰 실망을 감지한 그녀는 곧 괜찮다며, 여기서 잘 쉬고 잘 치료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얀 방호복 속에 선생님의 눈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의 진중한 눈동자에서 신뢰를 얻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증상이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게 꽤나 강한 약들을 처방했다고 하셨다.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오늘 코로나 검사를 한번 더 할 거라고 하셨다. 내 코와 입에 기다란 면봉이 들어갔다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은행원이라고 들었는데 감염경로가 은행이냐면서 물어봤다. 나는 감염경로를 모른다고 했고 선생님은 "아, 깜깜이 환자시구나..."라며 애석해했다. 그러면서 내 가족들에 대해 물어봐주고 남편과 아들이 정상적으로 격리 해제된 것에 함께 기뻐해 주셨다. 그녀가 병실을 떠나고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곳에서 간호사 선생님들과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내가 지난 2주간 의지했던 생활치료센터의 의료지원반 선생님이 생각났다. 통화보다는 주로 카톡으로 연락을 했던 사이였는데, 급하게 병원으로 전원 오게 되면서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생각이 났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카톡으로 감사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말로만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나의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못 담는다는 생각이 들어 커피 기프티콘도 함께 발송했다. 20분 후 그녀에게 답문이 왔다.


OOO님,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이것은 공용폰이라서 기프티콘은 거두어 주세요ㅠ 저희가 사용할 수 없어요^^ 정말 마음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O병원에서 퇴원하시기 전에 생활치료센터의 간호사들 칭찬 엽서 한 장만 써 주세요~ 저희도 OO병원 간호사들이거든요^^ 어쨌든 OO님께서 저희 병원으로 전원 가시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치료 잘 받으시고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치료기간 동안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저희도 OO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감사하다는 OO님의 말이 큰 힘이 됩니다~


비록 선생님의 답문에 내가 보낸 기프티콘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퇴원 전에 꼭 칭찬 엽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선생님에게 도움이 된다면 칭찬 엽서 열 번이고 써 드려야지! 그녀는 내가 센터에서 불안한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큰 위로를 주었다. 내 상태가 호전되지 않음에 함께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했다.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내가 센터에서 엄청 의지했던 선생님도 알고 보니 내가 지금 있는 병원의 간호사 선생님이셨다. 순간 생각했다. 이 병원은 간호사 선생님들의 마음씨를 보고 채용을 하나 싶을 만큼 모두 다 진정한 백의천사였다.




- 이미지 출처 : 웹툰 그리는 간호사 오영준 님의 ‘간호사 이야기’ -

어제 우연히 길병원의 '웹툰 그리는 간호사' 오영준 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가 그린 코로나 방역 최일선 의료진들의 모습들이 인천시청에서 전시된다는 내용이었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를 돌보는 음압 병동 의료진들의 애환을 그린 웹툰. 대학 2학년 때까지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군 제대 후 진로를 바꿔 길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단다. 2016년 메르스 당시 음압 병동 근무 경험이 있는 그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올해 1월부터 음압 병동 근무를 자원했다고 했다. 미국 LA타임스는 K-방역과 함께 '한국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웹툰과 오 간호사를 소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하는 K-방역의 일선에 내가 직접 와보니 코로나 치료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피땀 눈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의료진 모두가 이 재난을 다 함께 타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가장 최일선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셨다. 예전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3명꼴로 코로나에 감염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코로나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코로나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처한 간호사 선생님들에 대한 처우가 지금보다 더 개선되기를 바란다. 내가 마스크를 생명줄처럼 쓰고 다녔어도 어느 순간 코로나 확진자가 된 것처럼, 방호복이라는 보호장비를 입어도 코로나라는 무서운 놈이 어느 틈에 공격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심신이 지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표해보는 열여섯 번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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