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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엄마는 천국에 있는 게 아니야

아들한테서 연애편지와 직접 만든 쿠키를 배달받다


"엄마, 내 편지도 봤어? 거기에 엄마 사랑해, 많이 보고 싶어~라고 쓰여 있는 거야!" 아들의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가득 묻어났다. "응응, 편지도 잘 받았어~ 정말 고마워!! 엄마도 우리 아들 많이 보고 싶어!"라고 나는 화답했다. 아들은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며 또 한 번 말했다.

“엄마가 정말 보고 싶어!”




오늘 아침, 휴가 연장을 위해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코로나 양성 판정 확인서>를 대신 떼러 남편이 내가 있는 병원에 왔다. 서류를 떼기 전, 근처 마트에 들러 와이프가 좋아할 만한 과일, 과자, 음료, 물 등을 잔뜩 구입한 남편은 병원 로비에 물품들을 맡겼다. 영상통화로 전화한 남편이 마트의 과자코너를 보여주면서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데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났다. 마치 감옥에 있는 느낌이랄까. 사식을 넣어주는 남편이 있어 참으로 고마웠다. 남편이 병원까지 왔는데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헤어져서 굉장히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남편과의 통화를 종료한 후 로비에 내 물품이 맡겨졌다는 사실을 간호사실에 전화로 말씀드리자 점심 배식 때 함께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내 병실 전실에 평소와 다르게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들어왔다. 서랍장 위에 점심식사를 두고, 바닥에 쇼핑백 2개를 놔주셨다. 물이 들어있어 무겁다며 나에게 잘 옮기라고 했다. 나는 기뻐하며 침대에서 급히 내려와 전실로 향했다. 쇼핑백만 봐도 가족이 그리웠다. 하나하나 물건들을 꺼내 정리를 하는데 쇼핑백 안에 자그마한 쇼핑백이 또 있었다. 그 안을 열어보니 쿠킹호일이 작게 뭉쳐져 있었고, 하얀 종이가 2번 접어진 채 들어있었다. '이게 뭐지?'하고 종이를 열자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필시 우리 아들의 필체다.


다섯 살 내 꼬맹이는 이제 한글을 조금씩 떼고 있지만 아직 글자를 쓸 줄 모른다. 집에서도 스케치북에 글씨라고 쓰면서 하얀 종이에 O 또는 I 글자만 적어놓는다. 뭐냐고 물어보면 오징어, 상어, 옥토넛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를 썼다고 한다. 내게 쓴 러브레터에도 마찬가지였다. OIO OIIIO 암호 같은 글씨로 가득했지만 분명 나를 사랑한다는 뜻일 거라고 예상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녀석의 모습이 떠오르자 내 얼굴에는 엄마 미소가 만개했다.


쿠킹호일이 궁금했다. '이건 또 뭐지?' 하며 조심스럽게 잘 감싸진 쿠킹호일을 열기 시작했다. 내용물을 확인한 그 순간,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건 평소 아들과 내가 집에서 자주 만들던 쿠키였다. 아들은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간다는 아빠 편에 자신만의 선물을 보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한 러브레터와 수제쿠키를 말이다. 너무 감격한 나는 바로 친정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들을 바꿔주었다.


- 우리아들의 러브레터(형광펜사랑 우리아들)와 수제쿠키 7개 -
“엄마~~~”

반갑게 나를 부르는 아들에게 "아들~ 아들이 엄마한테 보낸 선물 지금 막 잘 받았어! 너무 고마워!" 하면서 영상으로 편지와 쿠키를 보여줬다. 깜짝 놀란 아들은 "어? 내가 만든 쿠키다! 엄마 지금 그거 받은 거야? 아빠가 엄마한테 전해준다고 했는데 진짜 도착했네?"라며 행복해했다. 그러더니 녀석은 내게 그 쿠키를 먹어보란다. 그래서 나는 영상통화를 하며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천상의 맛이었다.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아들의 눈에서 뿌듯함이 가득 느껴졌다. 자기가 만든 쿠키가 엄마에게 진짜 도착해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이다.




지난 월요일 12시에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이사까지 완벽히 마친 남편과 아들은 시댁으로 잠시 떠났다. 아들과의 2주간 자가격리로 심신이 지쳐있을 남편에게 완벽한 쉼을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는데 자신의 본가에 가서 쉬는 것만큼 완벽한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회사에다 하루씩 휴가를 내심으로써 남편은 아들 케어는 잠시 내려놓고 푹 쉴 수 있었다.


그 후, 시댁에서 놀고 있는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 아들은 뜬금없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 천국에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못 만나는 거야?"


나는 너무나 놀랐지만 평정심을 갖고 아니라고- 엄마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고, 이 증상들이 완전히 사라지면 집으로 다시 돌아갈 거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을 안심시켰다. 천국에 있다는 건 사람이 죽었다는 뜻인데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아들의 옆에서 통화를 듣고 계시던 시아버지가 아들의 말에 엄청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나도 사실 아들의 입에서 이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건 처음이었다. 자가격리 중인 남편을 통해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나 또한 큰 충격을 받고 엉엉 울었더랬다. 남편은 아들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한창 아빠와 재미있게 놀다가 뜬금없이 "엄마가 천국에 있냐.."는 그 말을 꺼내서 자기도 너무 놀랬다고 했다.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다며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아들은 잠들기 전에 꼭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내게 요청을 한다. 그러면 나는 늘 침대에 누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다는 것과 그 후 천국에 가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아마 아들의 기억 속에는 그 이야기가 심어졌나 보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코로나 확진은 우리 가족을 생이별하게 만들었고, 아직 다섯 살 꼬맹이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다. 하루 이틀은 어찌어찌 참았겠지만 엄마를 실제로 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예전에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나 싶다.


그 때문인지 아들은 나와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을 낱낱이 보여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생활치료센터의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산의 풍경부터 내가 자는 침대, 나의 옷장, 책상, 화장실까지 하나하나 영상통화에 담았다. 아들은 매일매일 내가 있는 곳을 샅샅이 확인하고 확인이 완료되면 그제야 대화를 시작했다. 아마도 녀석은 엄마가 있는 곳을 매일 확인하며 달라진 곳이 없는지 숨은 그림 찾기를 했던 것 같다. 천국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풍경과는 다를 거라고 예상했는지, 내가 있는 센터의 모습을 다 확인하면 왠지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아, 엄마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똑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아들은, 자신이 만든 쿠키를 내가 영상통화로 보여주고 자신과 통화를 하면서 쿠키를 먹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또 한 번 큰 안도를 느꼈으리라. 자신이 만든 쿠키가 엄마에게 정말 도착했다는 사실에 녀석은 많이 행복해 보였다. 남편 말에 의하면, 아침에 쿠키를 만들고 싶다는 아들에게 그럼 엄마에게 오늘 갖다 줄 테니깐 잘 만들어 보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아들은 엄마에게 쿠키를 어떻게 갖다 주냐며 눈이 휘둥그레졌단다. 아빠가 의사 선생님한테 주면 엄마에게 전달될 거라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오는 거냐며 굉장히 신기해했다는 우리 아들! 그만큼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녀석에게 오랜 기간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오늘의 이벤트를 통해 아들이 행복해하고 엄마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실히 알게 되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이 감사하다.  




오후에 내 활력징후(바이탈 체크)를 점검하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입원을 해 있는 동안 사회에서는 거리두기 단계가 다시 1단계로 조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보니 내가 머물렀던 병원 옆 생활치료센터도 금주에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센터가 처음 열었을 때는 100명 정도가 입소를 했었는데, 내가 센터에 머물렀던 기간에는 전체 인원이 20명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으로 알고 계신다고 했다.


갑자기 어제 친구가 전화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금주 월요일부터 호텔 뷔페들이 다시 개장을 했는데 평일인데도 저녁 뷔페마다 예약이 만석이라고 했다. 본인도 가족모임이 있어서 어렵게 예약을 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내 생각이 나면서 이런 시점에 가는 것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고 해서 친구에게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방역수칙 잘 지키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나는 말했다.


세상은 다시 점점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정부에서는 오는 31일부터 약 2주간 '2020 가을 여행 주간'을 시행한다고 한다. 장기간 계속된 거리두기에 따른 피로감과 민생경제 악영향 등을 이유로 거리두기 조치가 1단계로 하향된 상태. 개인마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전체 하에 여행 주간이 재개된다고 하는데 듣기만 해도 나부터 벌써 설레는 여행 주간이다. 나는 개인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지만 어디서 감염이 됐는지조차 모르는 깜깜이 환자이다. 1단계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의 마음마저 해이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보니 가장 힘든 것은 내 몸이 아픈 것보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시대의 도움으로 그나마 영상통화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격리되어 있다는 것 그 또한 지옥이다. 마치 감옥살이 체험 같다. 한 평 정도 되는 방 안에서 홀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육체의 고통보다 내 안에 순간마다 불쑥 찾아오는 불안의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러니 내 스스로 불안을 쫓아내고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활동의 반경도 심히 제약적이라 몸에는 살이 붙어 그 또한 답답하다.


감염 전파력이 떨어지는 14일 안에 내 몸이 다 회복되면 좋겠지만 잔여 증상이 남아있으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열심히 잘 먹고 잘 쉬고 잘 회복되어야 한다. 나도 그나마 병원으로 전원을 온 후에는 강력한 여러 종류의 약들로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는 중이다. 내가 얼른 회복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들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이야 어른이기에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데, 내 꼬마 녀석은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얼른 나아서 엄마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오늘 또 시행된 객담검사(가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겸허히 기다려 봐야겠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아들이 보내준 선물 덕분에 정말 행복한 하루이다. 이렇게 코로나 확진 후 열여덟 번째 날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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