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되어 있는 가운데서 나름의 살길 찾기 대작전
남편에게 카톡이 날아왔다. 핸드폰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다. '이게 뭐지?' 하고 쳐다보니 <홈트레이닝 - 기구가 필요 없습니다>라는 어플이다. 아침 통화 때, 어제 실시한 코로나 재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났다는 소식을 알리자 남편은 병실에서 홈트, 아니 음트(음압병실에서 트레이닝)를 하라면서 어플 하나 찍어서 보낼 테니 다운을 받으라고 했다. 남은 기간 중에 코로나도 무찌르고 건강까지 챙겨서 퇴원을 하자며 시간도 많은데 운동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남편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권해 왔다. 결혼 후부터 계속 권했으니 벌써 9년을 권했다. 그렇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숨쉬기 운동, 그 정도가 내게는 딱이다.
물론 살면서 운동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랑 아들과 집 근처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도 자주 타고, 산책 겸 나가서 걷기도 많이 했다. 동네 공원에서 뛰기도 하고 가끔 집에서 요가도 했었지만 늘 작심삼일이었다. 운동은 꾸준함으로 이어져야 '건강한 몸'이라는 결과를 얻는데 내게 있어 운동은 하나의 이벤트였다. 그랬던 내가 정말이지 큰 마음먹고 열심히 운동을 했던 적이 있다. 망가진 허리 때문에 수술을 한 후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코어의 힘을 기르고 근력을 기르기 위해 필라테스를 선택했다. 무려 1년 넘게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다행히 내게 잘 맞았고 좋은 선생님도 만나서 허리 근력도 많이 강화되고 몸의 밸런스도 많이 맞춰졌다. 이것이 내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운동하고 가장 오랜 기간 지속했던 운동이다.
운동을 가는 날이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들과 놀아주다가 아들을 재우고 밤 9시에 레슨을 받으러 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한밤이 되어 있었고, 집안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 늘 거의 12시가 다 되었다. 사실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는데 체력적으로 지치는 부분도 꽤나 많았다. 그럼에도 1년 넘게 지속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몸의 형태에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선생님은 센터에서 발생한 사장님과의 불화로 인해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을 연결해 주겠다 하셨지만, 선생님만큼 내 몸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다른 강사분과 함께 하는 것이 꺼려졌다. 조금 쉬었다가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지만 그 사이 전 세계에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퍼졌고, 나는 운동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코로나라는 녀석은 사람들의 운동 스타일도 변화시켰다. 대중이 모이는 헬스클럽이나 요가학원, 필라테스센터 같은 곳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일명 홈트레이닝을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던 때에 사람들은 집돌이/집순이가 되면서 코로나로 인해 '확찐자'가 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운동 강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SNS라는 매체를 통해서 홈트레이닝 비법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널리 퍼진 다양한 정보공유로 인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리 집이 운동센터가 될 수 있었다. 운동을 위한 별다른 기구가 없어도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비법들이 넘쳐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던 때에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집집마다 '확찐자'들이 넘쳐났고 그중 한 사람이었던 우리 남편도 집에서 어플을 따라 하며 홈트레이닝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나였다. 남편이 아들과 함께 거실을 활보하며 열심히 운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나는 귀엽다며 지켜보기만 했다. 남편은 내게 함께 할 것을 권했지만,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피곤이 몰려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소파에 누워 두 남의 재롱(?)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웃는 운동이 내가 하는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남편의 권면에 내 마음이 강하게 움직였다. 나는 얼른 어플을 설치했다. 그리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코로나 확진자인 것도 슬픈데 격리되었던 2주간 2kg의 체중이 늘어난 것은 더더더 슬프다... 코로나 확진자로 족해야지 코로나 '확찐자'까지 될 수 없다구! 하자, 운동을 하자!'라고 결심하며 설치된 어플을 클릭했다.
그런데 운동을 하려고 하니 천장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CCTV가 굉장히 거슬렸다. 나의 24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꽤나 불편했지만, 갑자기 생뚱맞게 운동을 시작하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내 눈에 체중계가 보였다. 나는 터덜터덜 몸을 끌어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정신이 확 들었다. 다시 한번 그 사이 2kg가 늘어난 몸무게를 눈으로 확인하자 CCTV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플에 들어가 보니 초급/중급/상급으로 운동의 레벨이 나뉘어 있었고 복근, 가슴, 팔, 다리, 어깨, 등으로 신체 부위가 세부적으로 나뉘어서 내 취향과 계획에 맞게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초급을 눌러 한 개씩 따라 해 봤다. 애니메이션으로 운동 동작을 상세하게 표현해주니 보고 따라 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하나하나 열심히 따라 했다. 환자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운동을 한다는 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운동에 집중했다. 그동안 뭉쳐있던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오히려 시원해졌다. 몸이 스트레칭이 되니 흐트러진 정신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쉽게 몸이 지치는 상황이지만 쉬엄쉬엄 열심히 따라 하는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초급을 마치고 나니 갈증을 느껴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꽤나 오랜 시간 운동을 따라 했다. 왠지 이렇게 매일 따라 하면 곧 건강해지고 체중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실이 조금의 여유가 있어 이런 운동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홈트 아니고 BTS 음악에 맞춰 막춤을 열심히 췄었는데, CCTV가 있는 이곳은 막춤보다는 운동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는 내게 별 걸 다 선물해 주고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내가 싫어하던 운동까지 하게 만들고. 코로나는 참 내 삶에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코로나 확진되기를 주위에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참.... 이런 삶의 변화들을 코로나 옥중일기에 잘 남겨서 두고두고 기억해야겠다. 글까지 쓰고 나니 오늘은 상당히 좀 피곤하다. 이제는 잠시 침대에 기대어 쉬어야겠다. 열일곱 번째 날이 조금은 뿌듯하다. 운동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