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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무척 그립다

토요일 아침마다 집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던 그때가...


“엄마~ 일어나! 놀자 놀자!" 하며 토요일 아침마다 나의 단잠을 깨우는 우리 집 개구쟁이 꼬마 녀석. 평일 내내 은행에서 소리 없는 전투를 치르고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해방감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토요일 아침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나도 늦잠이라는 걸 자고 싶은데 녀석이 태어난 순간부터 내게 토요일은 여느 평일과 같다. 다만, 토요일 아침에는 세상 꿀맛인 토스트를 만들어 주는 남편과 자그마한 손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강아지 같은 아들과 함께 있다는 거, 그게 다르다.


"엄마, 내가 커피 내려줄게.
잠깐만 기다려봐~"


아들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향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세 살 때부터 아빠에게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운 녀석은 매주 토요일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엄마가 할 테니 내버려두라고 해도 소용없다. 아빠 엄마에게 커피를 내려주는 일은 오롯이 우리 아들의 몫이다. 그게 그 녀석의 기쁨이다. 우리 집은 네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내려먹는다. 신혼 때 선물 받은 반수동 커피머신 드롱기는 아이가 태어나니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더 이상 신혼부부가 아닌 우리에게 여유롭게 원두를 넣고 커피를 내리며 커피 향을 음미할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육아휴직이 끝나서 나는 은행으로 복직하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한 그 해 밸런타인데이, 나는 남편에게 네스프레소 기계를 선물했다. 백화점에 남편을 데리고 가서 함께 커피머신을 고르고 남편을 위해 3개월치 캡슐을 사주었다.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는 남편에게 나는 말했다. "여보가 육아를 몰라서 그래. 하루에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정신이 안 든다고. 이것도 금세 없어질 거니깐 두고 봐! 그리고, 다 먹으면 또 사줄게. 아끼지 말고 힘들 때마다 커피 마셔~" 그 후 우리 집에는 매일 아침마다 커피 향이 진동한다.




세 살 즈음부터 호기심 천국이었던 아들은 아빠 엄마의 커피 머신을 본인의 장난감처럼 생각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아빠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엄마의 취향까지 제대로 파악한 녀석은 커피를 내릴 때마다 에스프레소 잔과 머그컵을 직접 준비했다. 커피 머신의 에스프레소와 룽고의 그림을 익혀서 아빠의 커피를 내릴 때는 작은 사이즈의 물 버튼을 누르고, 엄마의 커피를 내릴 때는 큰 사이즈의 물 버튼도 알아서 척척 눌렀다.


그 사이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다섯 살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빠의 커피 취향도 디카페인 커피로 바뀌면서 아들은 캡슐 보관통에서 카페인 캡슐과 디카페인 캡슐을 직접 구분했다. 게다가 다양한 색깔의 캡슐에서 엄마가 특히 좋아했던 색깔의 캡슐을 기억해뒀다가 엄마가 유독 기상하기 힘들어하는 날에는 그 색깔의 캡슐로 커피를 내려주었다. 내 커피 취향은 캡슐 1개를 내린 뒤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붓는데 우리 아들은 그것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녀석은 커피를 내린 머그컵을 조심스레 들고 정수기로 향한다.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은 뒤 고사리 같은 양손으로 머그컵 손잡이를 붙들고, 그 사이 거실로 나와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내게 조심조심 다가온다. 잔뜩 찌부려져 있는 녀석의 미간과 앙다문 새초롬한 입술을 통해 녀석이 커피를 쏟지 않기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드디어 녀석이 내 앞까지 왔다. 엄마 앞에 무사히 도착하자 녀석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도 같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내 얼굴에서는 엄마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엄마, 커피 여기 있어. 얼른 마셔봐바~"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내가 "우와~ 진짜 끝내준다!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내려준 커피가 최고 맛있다니깐? 진짜 엄마는 너무 행복해! 정말 고마워, 잘 마실게!" 그리고는 아들의 얼굴에 내 얼굴을 파묻고 나는 쉴 새 없이 뽀뽀세례를 날린다.

"엄마, 이제 정신이 들어?
내가 타 준 커피 마시니깐 머리 안 아프지?"


가끔씩 찾아오는 편두통에 토요일 아침마다 기상이 힘들 때가 있다. 자꾸만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두통 때문에 바로 못 일어나겠으니 시간을 좀 달라고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아들은 나의 그 말이 꽤나 뇌리에 박혔는지, 엄마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행복해 할 때면 꼭 저렇게 말한다. 자기가 내려준 커피가 엄마의 두통을 싹 낫게 만드는 마법이라도 된 듯 뿌듯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그렇게 내 꼬마 녀석과 꽁냥꽁냥 하는 사이 남편은 주방으로 향한다.


남편은 빨간색 샌드위치 메이커를 꺼낸다. 식빵을 꺼내어 내가 사랑하는 버터를 잔뜩 바르고, 냉장고에서 햄, 치즈와 야채들을 꺼낸다. 냉장고에 내가 사랑하는 아보카도까지 있으면 정말이지 금상첨화. 톡 하고 계란을 깨뜨려 프라이팬에서 계란후라이를 잘 익혀낸다. 도마 위에 식빵을 놓고 차곡차곡 재료들을 얹은 뒤 내가 좋아하는 케첩을 잔뜩 뿌리고 샌드위치 메이커에 잘 넣어 타이머를 돌린다. 잠시 후 "땡!" 하고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조심스레 샌드위치를 꺼내 접시에 예쁘게 옮겨 담은 뒤 칼로 반을 가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스트가 여전히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내 앞까지 배달온다. 야무지게 앙- 하고 크게 한 입을 문 뒤에 나는 "앗 뜨거 앗 뜨거!!!”를 외치며 남편에게 엄지척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흐뭇한 모습으로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내 꼬마 녀석도 아빠에게 토스트를 해 달라며 재촉한다. 나는 그 사이 우리 아들이 내려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여기가 천국이다. 다른 곳이 천국이 아니고 지금 바로 이곳, 우리 집이.




오늘 아침이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전실을 두드리며 아침식사가 왔으니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식사를 가지고 들어가라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아직도 병원이다.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찾는다. 날짜를 보니 10월 17일 토요일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토요일. 그러나 오늘 아침도 나는 사랑하는 두 남자와 떨어져 있다. 혼자 격리된 지 오늘로 이십일 째. 그토록 좋아하는 따뜻한 커피도 마시지 못한 지 벌써 이십일이 되었다. 오늘따라 두 남자가 만들어 주는 토스트와 아메리카노가 무척이나 그립다.


아침식사를 책상에 올려두고 한참이나 바라봤다. 토요일 아침은 밥이 아니라 토스트여야 하는데, 나는 그걸 제일 좋아하는데, 그냥저냥 계속 아쉽다.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하기에 용기를 내어 밥 한 숟갈을 떠본다. 그래도 미각이 80% 정도 돌아온 요즘, 밥의 맛을 알면서 먹으니 너무나 감사하다. 아직 후각은 50% 정도 돌아온 것 같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루에 두 번 내 음압병실을 청소하실 때 소독을 위해 락스를 사용하는데, 사실 그 독한 락스 냄새가 잘나지 않는다.


오늘 점심에 내 방을 청소하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OOO님, 제가 지금 청소하고 있는 거 약품 냄새 나세요? 냄새가 안 느껴지시는 것 같아서 여쭤봐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후각이 완전히 돌아온 걸 언제 아냐면요, 저희들이 이렇게 청소를 할 때 '어머? 선생님, 이 약품 굉장히 독하네요. 저 진짜 몰랐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이 나죠?'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면 거의 후각이 돌아온 거라고 보죠." 선생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곧 그런 날이 오겠죠?"




다음 주 토요일에는 사랑하는 두 남자와 새로운 우리 집에서 맛있는 토스트와 커피를 음미하는 내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날이 곧 오겠지. 나는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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