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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마음의 창문닦기_거기 누구 있나요?

스스로 마음의 창문을 닦아도 남아 있는 자국에 대한 잔상


드르륵, 내 병실 문이 열린다. 누군가의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언뜻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나는 다급하게 손을 더듬어 책상에 올려진 마스크를 찾아 착용했다. 나 홀로 있는 병실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기본수칙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말할 일이 거의 없어 내 입은 하루 종일 한 일(一) 자를 그리고 있는데 마스크가 뭔 소용인가 싶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공간에서조차 마스크를 착용하니 너무 답답해서 턱에 걸치고 있는 날도 많다. 그래도 내 병실에 누군가 들어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코로나 확진자로서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내 활력징후(바이탈 체크)를 체크하면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고, 산소포화도를 점검하고, 몸무게도 재고, 밤 사이 증상 변화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에 한 번, 새벽마다 몸무게를 재는데 그때마다 잠도 같이 확 깬다. 코로나 확진자가 된 지 오늘로 벌써 스물한 번째 날. 3주라는 시간 동안 홀로 갇혀 있으면서 그새 몸무게가 2.5kg나 증가되었다. 틈틈이 음트(음압병실에서 홈트레이닝 하기)를 해도 한계가 분명 있다. 삼시세끼 먹기만 하고 에너지를 쓸 일이 도통 없으니 몸무게는 한없이 올라가는 중이다. 하루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인데, 이 에너지는 뇌 에너지만 잡아먹는지 몸무게 변화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객담(가래) 검사가 있다며 검사통 하나를 책상 위에 놓고 간다고 말한 뒤 병실을 떠났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고 하는데 쉽사리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겁 없이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일까. 한숨 푹푹 쉬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뒤척이다가 그냥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순간 재채기가 나왔다. 에-에취. 휴지곽에서 휴지를 한 장 뽑으려다 말았다. 재채기를 하니 객담이 나와서 뱉으려고 했는데, 오늘 객담검사가 있다고 한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책상에 올려진 검사통 뚜껑을 열어 객담을 뱉었다. 검사통에는 '분자유전'이라는 글자와 함께 내 이름/환자번호가 적혀 있다. 그 옆에 COVID19 라고 쓰인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벌써 오늘로 세 번째 객담검사이다. 오늘 저녁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선생님으로부터 코로나 음성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된 이후 시행했던 모든 검사에서 양성 판정만 받아온 나라서, 걱정 아닌 걱정을 잠시 해 보았다. 객담의 색깔이 노란빛이 조금 나는 걸 봐서는 아직까지 양성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보다 객담의 양이 많이 줄었지만 객담 증상이 완전히 소멸된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니 더더욱 잠이 달아났다. 나는 몸을 일으켜 창 쪽으로 갔다. 밤새 내려져있던 블라인드를 확 올리며 나는 새 아침을 맞이했다.




뽀드득, 뽀드득. 아침부터 305호 내 병실에서 작은 소리가 울린다. 내가 휴지로 창문을 닦아내는 소리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특효약인 산을 보기 위해 창문 앞에 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창문에 얼룩이 져서 내 시야가 자꾸 방해받았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얼룩지지 않은 곳으로 산을 바라보려 하니 허리를 구부려야 해서 불편했다. 그럴 바에는 그냥 내가 창문을 닦자고 마음먹고 아침부터 열심히 창문을 닦았다. 화장실에 가서 휴지에 물을 살짝 묻혀서 닦으니 얼룩이 금세 사라졌다. 한결 깨끗해진 창문으로 보는 산은 더없이 푸르렀다. 초록의 싱그러움은 내 안의 불안을 달래주었고, 간간히 붉게 물들고 있는 나무들은 내게 힘을 내라며 불타는 용기를 주었다.

- 내 병실 바깥으로 보이는 산의 풍경 -

그런데 나는 곧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창문을 깨끗이 닦은 것 같았는데도 뭔가 아직도 덜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병실 창문은 이중으로 된 창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닦은 창문은 안쪽의 창문이다. 열심히 닦아낸 덕에 내 쪽의 창문은 한껏 깨끗해져서 투명하게 빛났다. 그런데 바깥쪽 창문에는 여전히 얼룩이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손 쓸 방법이 없다. 건물 외벽의 창문은 내가 닦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이다. 병원 측에서 외주 업체에 창문 닦는 일을 요청하지 않는 한, 바깥쪽 창문은 계속해서 더러울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침대로 돌아와 다시 몸을 눕힌 뒤 두 눈을 감았다.



- 병실 침대에 앉아서 창문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을 마주한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도 이중창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나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내 속사람과 마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즐겁고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내 자신을 제대로 직시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속사람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평생토록 회피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나만큼 나를 잘 알고 나를 100% 이해하고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자신의 속사람 마음을 읽어주고 속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일, 그 행동이 게으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한 영혼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한동안 나의 게으름으로 속사람과의 만남을 방치했더니 내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것이 면역력 저하에 일조하면서 내 몸이 코로나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나는 21일이라는 기간 동안 내 속사람과 마주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줬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간의 삶을 반추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밀히 살펴보고 스스로를 재정비하니 마음 가득히 있던 불안들이 정리되면서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고 내 자신을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생각할수록 귀엽고 사랑스럽다 느껴졌다. 곧 다시 마주할 세상에서 온전히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반면에 참으로 안타깝지만, 내 손이 닿지 못하는 바깥쪽의 마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아무리 팔이 가제트 형사처럼 길다 한들 닿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타인이 도와줘야 하는 마음의 창문도 있다는 걸 나는 간과했다. 마치 건물 외벽의 창문을 바깥쪽에서 닦지 않으면 아무리 안쪽 창문을 깨끗이 닦아도 창문 전체가 온전히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의 바깥쪽 창문의 얼룩을 깨끗이 지워줄 그 누군가는 자신이 의지하는 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 가장 큰 안도감을 느끼는 동물이니깐. 그래서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병실에 21일째 갇혀 있으면서 아무리 내 스스로에게 괜찮다 한들 함께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괜찮아질 수 있었을까. 나를 위해 계속적으로 기도해 주는 중보 기도자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전화해서 내 상태를 물어봐주고 필요한 게 없는지 살펴봐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괜찮아질 수 있었을까. 아침저녁으로 동그랗고 탱탱하게 살이 오른 얼굴을 들이밀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외치는 아들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마음이 진정될 수 있었을까. 괜찮다- 괜찮다- 매일 같이 외쳐주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내 마음 바깥쪽 창문의 얼룩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인생은 원래 고독한 거라고들 말하지만, 그 고독한 인생길 가운데 내 마음의 빛이 되어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덜 외롭고 덜 지치지 않을까.  고독한 내 마음 바깥에 세워진 가로등에 불빛을 켜 주고, 창문에 성에가 낄 때면 따뜻하게 안아줌으로써 서리를 녹게 만들고, 창문에 상처로 얼룩이 질 때면 세척제 팍팍 뿌려가며 깨끗하게 닦아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오늘 당신 곁에도 반드시 있으면 좋겠다. 이미 내 곁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존재에 심히 감사해하며 그들의 소중함을 온 맘으로 느끼면 좋겠다. 그들이 내 곁에 평생 머물 수 있도록 나 또한 그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주고 삶의 희망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너무나 좋겠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나와 일면식도 없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매일 같이 내 병실을 청소해 주면서 곧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깐 기운 내라고 이야기해 줄 때마다 나는 정말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속상할 때면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 주고, 눈물이 날 때는 내가 코로나 확진자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와서 내 어깨를 다독여주는 존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점점 증상들이 호전되고 있는 걸 함께 지켜보면서 우리 함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병실에서 맞는 스물한 번째 밤도 썩 나쁘지 않은 밤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지금 당신의 마음 건너편에는
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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