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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날들

음압병실에서 혼자 지내는 외로운 날들에 대하여


전실에 '이불' 두었습니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날이 밝았는지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통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젯밤은 잠을 좀 설쳤는데 그래도 몸이 일어나지는 걸 보니 아예 잠을 못 잔 건 아닌가 보다. 아무렴 잠을 또 못 잤으면 어떠랴, 언제든 피곤하면 눈을 붙일 수 있는 나는야 코로나 확진자인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블라인드를 활짝 걷고 어제보다 오늘 더 붉게 물든 산을 바라본다. 산은 바라만 봐도 마음이 상쾌하다. '하... 정말이지 이 산이 없었다면 나는 너무 우울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전실 유리문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 하얀색 메모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음, 뭐지?'하고 나는 전실 쪽으로 걸어갔다. 자고 막 일어난 상태라 눈곱이 껴서 글씨가 명확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눈을 비비며 전실 유리문 앞으로 가서 메모지에 쓰인 글씨를 읽어갔다. '전실에 이불을 두었다고? 응? 뭐지?' 하고 유리문 너머의 서랍장을 보니 그 위에 말린 장밋빛 색깔의 이불이 곱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이미 아침식사 배달이 끝났나 보다. 우선 마스크를 쓰고 전실로 나가서 이불과 아침식사를 챙겨서 병실로 들어왔다.


그때, 305호 내 병실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나는 급히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OOO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간호사실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병실이 좀 추우세요? 주무실 때 보니깐 이불을 턱 끝까지 덮고 주무시길래요~ 온도를 좀 높여드릴까요? 요즘 바깥의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거든요..."




음압병실에서 지낸지도 오늘로 9일째이다. 그 사이 나는 내 병실에 있는 CCTV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나름대로 무신경하게 지냈다. CCTV 때문에 내가 영화 트루먼쇼의 짐 캐리처럼 될까 봐 애초부터 신경 쓰기 싫었다. 그런 나와 달리, 간호사실의 선생님들은 그런 내 모습을 CCTV로 확인하며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었나 보다. 내 잠자는 모습까지 알고 계셔서 전화를 받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 네~ 선생님! 저 춥지 않아요. 제가 원래 이불을 턱까지 다 덮고 자는 스타일이라서요. 하하~ 아, 그러면 온도 1도 정도 올려주시겠어요? 네네, 바깥이 쌀쌀하다고 가족들이 그러더라고요. 지내다가 추우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지난주 월요일 병원으로 전원 온 첫날, 간호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병실 한쪽이 전체 창으로 되어 있어서 환자분들 중에 가끔 춥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는 가족들한테 이불을 택배로 받거나, 가족들이 로비에 맡기시면 올려다 드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원래 기초체온이 좀 높은 편이라 지내면서 춥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병실에서 보통 제공되는 면이불만 덮고 지냈는데, 꽁꽁 이불을 싸매고 자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느끼셨는지 간호사실에서 메모와 함께 직접 이불을 가져다주셔서 아침부터 제법 놀라고 마음 한 구석이 몽글몽글 따뜻해졌다.


어제 저녁에 내 병실을 청소해 주시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러면 지금 여기 음압 병동에는 저 포함해서 환자가 몇 명 정도 있는 거예요?" 그러자 선생님이 약간 당황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하셨다는 표정이다.


"아, 그게,, 지금은 OOO님 혼자 계세요..."


너무 놀라서 내가 말했다.

“네? 저 혼자요? 아무도 없어요? 다 퇴원했어요? 지난주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 옆 병실에 어르신도 계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 혼자만 남아 있어요? 진짜 저 혼자만요?...”

나의 격양된 목소리에 선생님이 조금 더 놀라신 듯 보였다. 선생님은 "아, 네네. 현재는 그런 상태인데요. 저희가 최근에 음압 병동 확장공사도 했고, 나라에서 생활치료센터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라 곧 새로운 환자들이 오지 싶어요."라며 나에게 지금은 혼자이지만 곧 혼자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속마음이 담긴 말씀을 하셨다.




내 병실 환경 소독을 마치신 선생님이 병실 문을 나섰다. 나는 다시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냥 혼자가 아니라 조금 전에 선생님 말에 의하면 지금 이 음압 병동에 코로나 확진자는 나 하나뿐이다. 뭔가 철저하게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다들 그새 좋아져서 퇴원을 했구나, 좋겠다...'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코로나 확진이 되기 전에 '혼자'라는 단어를 굉장히 간절히 원하던 때가 있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을 때마다 남편에게 "나 며칠만 혼자 있으면 좋겠어. 은행이고 뭐고 진짜 나 혼자 어디 산속에 갔다 오면 좋겠어. 사람들 얼굴 좀 안 보고 싶어.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 무인도가 좋겠어. 고객들은 은행에 본인의 업무를 보러 왔으면서 왜 우리에게 극도의 친절까지 요구하는 거냐고. 내 감정을 왜 무의미한 사람들에게 쏟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이건 감정 낭비야!"라고 흥분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원하던 대로 소원이 성취되었는데 혼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던 '혼자'의 의미는 이렇게 강한 고립감까지는 아니었는데.


23일 동안 홀로 격리된 공간에 있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그립다. 잠시라도 엄마를 가만두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엄마 팔에 매달려서 놀아달라고 징징거리는 아들이 그립고, 퇴근할 때마다 뭐 먹고 싶은지 물어봐주고 그 음식을 테이크아웃을 해서 짜잔-하고 "아빠 왔다~~~"라고 외치는 남편이 그립고, 은행에서 진상 고객들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열 받고 화내던 그 모습이 그립다. 아마 사람이라는 존재에 그리움을 느끼는가 보다. 하지만 내 그리움의 근원은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마음, 그 정(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서로가 공감을 하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그런 일상의 소소함들이 나에게 큰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게 나눠준 이불 한 장으로 나는 그토록 바라던 정(情)을 손에 쥔 기분이었다. 되찾은 정 하나로, 내 마음은 순두부처럼 몽글거리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울렁거렸다. 빛바랜 이불은 좀 낡아 보였다. 하지만 전혀 괜찮다. 왜냐하면 내가 이 병실을 떠날 때 내가 쓰던 모든 것들은 의료 폐기물 통에 버려질 테니깐.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낡은 듯한 이불을 전해주신 선생님들의 센스에 감탄했다. 여전히 나는 병실에 혼자 있는데,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감정 하나가 아침부터 나를 꽤나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내 스스로가 '감정 낭비'라고 지칭하는 은행에서 만난 진상 고객들에게 느끼는 분노도 사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이 존재하기에 발생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간다면 겪지도 않을 일이겠지만,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긍정적인 시그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아차 싶었다. 은행으로 복귀하면 마음을 더 잘 다스려봐야겠다고 혼자서 조용히 다짐해 보았다. 비록 며칠 가지 못할 작심삼일의 마음일지라도.


침대 위에 앉아 창 밖의 산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에 거슬리는 게 나타났다. 요상하게 생긴 다리가 6개 달린 이름 모를 곤충 한 마리가 창문에 붙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개미 한 마리조차 구경하지 못했는데 9일 만에 내 눈 앞에 나타난 이 곤충이 그저 반가웠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물론 대답도 반응도 없다. 하지만 혼자 외로이 있는 내 병실 창문에 찾아와 준 이 녀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병실 전화기가 또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이번에는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다. 이 음압 병동에 한 명의 남자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그가 말했다. "OOO님, 병실의 온도를 조금 높였다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좀 따뜻해진 거 같으세요? 지내보시고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나는 말했다. "네네, 선생님~ 지금 딱 좋아요! 춥지도 덥지도 않아요, 면밀히 살펴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담당 교수님이 코로나 재검사 때문에 내 병실에 찾아오셨다. 그동안 잘 지냈냐며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눈 뒤, 현재 있는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목과 코에 기다란 면봉을 찔렀다. 내일 있을 객담검사까지 해서 전부 음성이 나오면 퇴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도 주셨다. 다만, 아직도 가래 같은 증상들이 남아 있으니 음성이 아닐 수 있지만 우선 희망을 가져보자 말씀해 주셨다.


"아들이 몇 살이라고 하셨었죠? 아이고, 엄마를 너무 보고 싶어 할 텐데 속상하시죠. 그럼 지금 아드님은 누가 돌봐주나요?"라며 나의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 주시는 교수님 질문에 나는 신이 나서 열심히 대답을 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고 스물세 번째 날이 된 오늘...

"나는 음압병실에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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