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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리에게 허그가 필요한 이유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 포옹,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하여


"엉엉, 안아줘~~~ 엄마, 안아줘~
안아줘~ 엉엉엉~ 안아줘...."


아들은 계속 안아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떤 걸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답변은 "안아줘!" 그 한 마디였다. 이 돌림노래는 도돌이표가 무한대이다. 아들의 외침은 끝이 없었다. 아들의 눈빛은 진심으로 간절했다. 제발 엄마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꼬옥 안아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눈빛에 나는 몇 번이고 흔들렸다. 나는 지금 아들을 훈육 중인데, 지켜보던 남편도 내게 절대 안아주지 말라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내게 말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아들을 몇 번이고 안아주고 있었다.


"엄마, 안아줘.. 으아앙... 안아줘..." 결국 나는 아무 말 없이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아이는 몇 걸음 되지 않는 그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무릎에 녀석이 올라와 앉더니 내 몸통을 꽈악 끌어안았다. 아들은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단지 녀석을 안고만 있었는데 울음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었고 녀석은 나지막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녀석은 세상의 평화가 전부 자기 것인 양 평온해졌다. 그리고 녀석은 그렇게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고작 아들이 세 살 때의 일이다. 사실 이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데, 아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내가 훈육을 했었는지는 기억을 끄집어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아들이 내 품을 간절히 정말 간절히 원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운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하루를 잘 보냈는지, 온라인으로 예배는 잘 드렸는지, 내일이면 3주 만에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하게 되는데 기분은 어떤지, 궁금한 게 많은 엄마는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다섯 살 우리 아들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의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은 말했다.

"엄마, 안아줘...."


그러더니 핸드폰 영상에 비친 아들은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핸드폰 화면에 아들의 검은색 머리카락만 보였다. 너무 미안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하며 내 가슴은 제법 아팠다. 최근 들어 아들 앞에서 눈물보다는 미소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던 나인데, 어제는 순간 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나약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울음을 꾹 참으며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용서를 구했다. 아들은 곧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포옹이 가진 힘은 거의 만병통치 약과 같다. 포옹을 할 때 우리의 뇌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경직되어 있는 우리 몸 전체에 힐링을 가져온다. 혈압을 내리고 불안, 우울, 스트레스의 감정을 완화시킨다. 포옹은 자존감을 세워주고, 날이 서 있는 신경을 가라앉혀 주기도 하며, 이 세상에 나 혼자 동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불면증을 낫게 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게 도와주며,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여 행복감을 선사한다. 포옹을 많이 할수록 노화 과정도 둔화되고 식욕까지도 조절이 된다고 하니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약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 때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나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중에서도 인체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생리 심리학을 무척 좋아했다. 공부를 할수록 의사가 되고 싶다는 헛된 꿈이 생길 정도로 너무나 좋아했던 과목이다. (그러나 의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태생적으로 문과인 내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그런 학문이 아니므로...) 생리 심리학에서도 포옹을 할 때 우리 몸의 반응을 배우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포옹은 엔도르핀 외에도 우리 몸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옥시토신 호르몬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데 이는 애정과 유대감의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옥시토신은 애정을 넘어서 애착의 감정을 만들어 낸다. 애착은 사람에게 평온과 만족감을 주지 않는가. 애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발달 심리학적으로 애정결핍이 생기고 애정결핍은 한 사람의 일생에 다양한 모습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아들이 많이 읽는 대표적인 책 중에 제즈 앨버로우 작가가 쓴 <HUG>라는 그림책이 있다. 나 또한 우리 아들과 많이 읽었던 책 중에 하나이다. 이 책에는 단어가 딱 3개 나온다. Hug, Bobo, Mommy 딱 3가지이다. 모든 것은 그림으로 설명된다. 어느 날, 아기 침팬지 Bobo는 혼자서 길을 걷다가 엄마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가 허그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은 홀로 있는데, 아기 이구아나도 엄마 품에 안겨 있고 아기 뱀도 엄마 품에 안겨 있다.


그 모습을 본 아기 침팬지 Bobo는 시무룩해진다. 양 어깨가 축 쳐진 채 길을 걷는 Bobo를 엄마 코끼리, 아기 코끼리가 안타깝게 쳐다본다. 곧 Bobo는 엄마 코끼리 코에 올라타더니 "HUG"를 외친다. 하지만 엄마 코끼리는 Bobo를 안아줄 수가 없다. 그렇게 엄마 코끼리 등에 타서 계속 길을 걷는 중에 엄마와 놀고 있는 아기 사자들을 만나고, 기다란 목을 꼬아 서로를 안고 있는 기린 가족을 만나고, 엄마 등에서 편히 쉬고 있는 아기 하마 가족도 만난다. 그 모습을 본 Bobo는 꾹꾹 참았던 서러움이 폭발하고 엄마 코끼리 코 위에서 "HUG"를 외치며 운다. Bobo는 모든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채 바닥에 앉아 "HUG"를 외치며 계속해서 눈물을 쏟는다.


그때 저 높이 한 나무 위에서 엄마 침팬지가 외친다. "BOBO~~~~" 모든 동물들이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엄마 침팬지는 땅으로 내려와 Bobo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아기 침팬지 Bobo는 "MOMMY~~~"를 외치며 엄마 품에 안기고 이 둘을 둘러싼 모든 동물들이 "HUG" "HUG"를 외친다. 아기 침팬지는 자신이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엄마 코끼리 코에 매달려 "HUG"를 외치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모든 동물들은 종족을 떠나 "HUG"를 외치며 서로서로 안아준다. 아기 침팬지와 엄마 침팬지는 "MOMMY"와 "BOBO"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책을 아들과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을 때 아들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달라고 했다. 단어도 몇 개 없는 그림책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HUG"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읽지만 장면마다 "HUG"를 외치는 감정이 다 다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며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나는 점점 지쳐갔다. 아들이 먼저 그만 읽겠다고 해 주면 좋겠는데- 이 노동이 언제 끝나려나- 하며 표정도 말투도 점차 변해갔다. 몇 번이고 읽고 난 후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 책을 덮을 때 갑자기 아들이 내게 안기면서 말했다. "엄마~~~ 허그~~~~~" 고사리 손이 내 어깨를 두드리자 힘든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내 마음에는 행복만 남아 있었다. 그 후로 "HUG"라는 단어가 내 귀에 들려지면 그 날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만연하다.


스킨십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굉장하다. 아침에 부인으로부터 '아침 키스'를 받고 출근하는 남편의 연봉이 그렇지 않은 남편들에 비해 20%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기사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일명 '잘 다녀오세요 키스'는 남편의 수명도 평균 5년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키스와 수명의 관계는 불분명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시켜 행복감을 전달해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고 기사를 통해 전문의는 말했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아침마다 제일 먼저 집을 나선다.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설 즈음에 남편과 아이가 기상을 한다. 나는 출근 때마다 두 남자에게 뽀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기사를 접하기 전부터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아침 키스'를 해 왔다. 출근시간이 빠듯해서 남편에게만 뽀뽀를 하면 자기한테는 엄마가 뽀뽀를 안 했다고 아들이 난리를 친다. 그래서 언제나 공평하게 두 남자에게 '아침 키스'를 해 준다. 키스를 할 때 어디 입만 갖다 대겠는가? 어깨라도 한번 부딪히고, 서로를 꼭 안아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침마다 나는 두 남자에게 기를 받아 출근한다. 그것이 내가 일상을 버티는 힘이라면 대단한 힘이다. 아침마다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짧은 두 팔로 하트를 만들어 내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아들 녀석과 함께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담당 의사 선생님께 전화가 와서 어제 아침에 시행했던 객담(가래) 검사에서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솔직히 실망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 실망감의 근원지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을 꼬옥 안아줘야 하는데 여전히 그 사소한 일이 현실 가능하지 않다는 속상함이다. 내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아 있다는 사실보다 엄마와의 포옹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도 곧 웃어넘겼다. 코로나 바이러스 한 개를 집에 가져가 가족을 만나는 것보다, 완전히 제대로 나아서 가는 게 더 중요함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속상함이 조금 더 길어질지 모르지만 나는 건강한 엄마로 아들 앞에 서고 싶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 코로나 검사를 시행할 거고, 증상들이 완화되는 걸로 봐서는 돌아오는 주말 정도면 집에 갈 수 있지 않겠냐며 웃으셨다. 더불어 남편 분이 진짜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남편? 그러하오? 두 남자여, 나를 뼈가 으스러지게 안아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오. 얼른 나아 두 남자의 열렬한 포옹을 받아낼 준비를 나 또한 하고 있겠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그대들을 만날 기대감으로 이곳에서의 스물두번 째 날도 기운을 내어 볼테니.



"지금 당장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으로 인해
남아 있는 오늘이 행복할 거예요."


-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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