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었다. 레인이 첫 야자나무 재배를 시작한 해이다. 약간 회사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시기였고 다른 탈출구를 생각하던 때였다.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일을 하면 분명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하게 될 수 있다. 레인이 무엇을 하든 가능한 밀어주고 싶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어떻게 하든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으니 무기력해지는 자신이 싫다고 했다. 20대에 좋아했던 일과 30대 초반에 좋아하게 되는 일이 다르듯이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식물 일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도. 스타트 업의 시작은 차고라고 했던가? 집 안에서부터 야자나무 기르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발아는 현관 앞 방에서 준비물을 구성해놓고 시간이 날 때면 그 방에 들어가서 꿈쩍도 안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혼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발아 실패를 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인상이 좋지 않았다. 저러다가 언젠가는 말겠지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작은 방바닥에 플라스틱 화분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발아 스킬이 좋아졌나 보다. 조금씩 높아져가는 발아율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발아가 된 씨앗들을 흙 속에 옮겨 심어야 하는데 결국 공간 문제를 가져왔다. 방바닥에 화분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좁은 방이 폭발할 지경에 다다랐다. 정말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결국 그해 8월부터 거실에 온갖 야자나무 모종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집에서 기르는 웰시코기가 활동량이 많은데 넓은 거실에 모종 화분을 두다니.. 호기심 많은 웰시코기가 밟거나 장난감인 줄 알고 물어가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멀지 않아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 발로 화분을 밟아서 거실 바닥에 흙이 쏟아져서 뒹굴었다. 레인이 다니던 도자기 공방 샘이 식물을 그렇게 많이 집안에 두면 와이프가 싫어하지 않냐고 가만히 두냐고 말했다고 신이 나서 말하던 8월이었다. 그해는 참 여름 장맛비도 많이 왔지. 농장에서 기르는 야자 모종이 장맛비를 먹고는 엄청나게 성장을 했다. 야자만 자랐을까? 아니지. 잡초도 함께 성장한다. 그 이후는 정말 밑바닥 농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고된 단순 노동일이 많았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정말 목소리에서부터 지금 어떤 상태인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상태로는 오래 지속하지 못하겠지. 그 속에서 스스로 재미적 요소를 찾아야 할 것이고 효율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차고라고 비유될 만하 조그마한 방에서 넓은 대지로 주 무대의 장소가 바뀌었다. 효율성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보지만 이젠 야자수 농장 일 속에서 재미를 발굴해서 동기부여를 하고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2019년 6월이 되니 비닐하우스 안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었다. 40도를 넘어갈 기세다. 야자 씨앗이 마구 마구 발아되기 시작했다. 뭔 욕심이 많았는지 씨앗을 왜 이리 많이 뿌려뒀는지 뒷감당이 안 되었다. 하우스 내부의 열기에 아직까지 생생한 나이지만 버티기 힘들 지경이다.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면 온 몸에서 땀구멍이 풀 오픈되어서 땀을 쏟아내었다. 5분을 버티기 힘들다. 그리고 15분 정도 밖에서 식히다가 다시 5분을 그 반복이다. 이런 것을 다 이겨내야 야자나무 파머가 되는구나. 발아가 많이 되어 좋을 텐데 그만 좀 발아가 되었으면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노동 강도는 더 세서 몸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어느 해외 야자나무 농장 사진. 비닐 포트에 심겨 있는 야자나무 모종이 평평하고 넓은 땅 위에서 초록물결을 이루고 있는 한 장의 사진. 반복적이고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레인을 이끌었다.
회사 내에서 레인의 비밀 프로젝트를 아는 한 동료가 있다. 야자 농장 운영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조용히 묻는다 “어때요?” “...” 바로 말 못 한다. 조금 시간을 뜸 들였다. 살짝 부풀려서 희망을 심어줘야 할까 고민했을 거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더 고부가가치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는 정말 공짜가 없다. 어떠한 희망도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