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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Jul 12. 2023

경험치



집주인이 작년 내 생일에 가압류를 당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생일 달은 정말 인생 최악의 달이었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었는데 가입 3년 째 연 1회 납부 기간을 놓쳐 자동해지됐더라. (ㅅㅂ) 정신승리 회로를 돌려본다. 집주인이 가압류만 당했고 근저당설정을 하지않았음을, 우리가 선순위임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나. 얏호!


침을 꿀떡 삼켜볼 만큼 끔찍한 사실을 안 순간엔 되려 웃음이 난다. 그 다음날 까지도 좀 괜찮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라면 문제... 집 상황을 시댁식구들과 이야기 할 때 누군가 "에휴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어서..." 라고 하셨다. 무슨 약발이 도졌는지 핫! 언젠가 저는 다 도움이 될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면접장이었다면 나 거의 합격아니냐..;;;) 다들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렇게 말을 해놓고 나는 집에 돌아와 이 경험이 언제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있더라. 왜냐면 다시는 겪지 않을 (다음 집은 매매할 계획을 이미 잔뜩 세워놨었고), 무조건 피해야 할(부동산 문제 무엇이든) 분야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사람은 이런 일을 겪어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이 대략 휘발되니까.


아. 그러면 이 사건(?)이 담금주처럼 재료라고 치면 나라는 사람 술의 깊이가 달라지는 그.. 그런 숙성..아니.. 성숙하게 될 것인가? 그런게 살면서 한번 겪을까 말까 하는 경험이 쓸모가 있을까? 맷집 같은거...?


내 연령에서 겪는 경험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 집을 알아서 다 해줘서 부동산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네....."

" 나는 남편이 음식물 쓰레기 담당이라 지금 껏 버려 본 적이 없는데... 그게 그래?"


가끔 어떤 대화를 할 때 말문이 턱 막힌 몇몇 말들이 있다. 이 무경험에 대한 것은 과연 편안함으로 피부 노화가 늦춰졌을까?  요즘은 나도 모르게 맨발로 밟고 지나가아만하는 뜨거운 불길. 나에게 왜 이런일이? 라는 의구심이 깊이 든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모두들 사랑받고자 태어난, 편안하게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 그런데 무경험이 정말 삶에 도움이 될까? 스스로 의문이 들었지만 환갑이 넘도록 '난 몰라 이런적이 없어서'가 자랑처럼 들리지는 않을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승리 회로초입일까) 아니, 멋있는 인생이 아닐 것 같았다. 파란만장 산전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위태로웠던 위기의 순간들이 언젠가의 위기에 쫄지 않을 수 있는 내력을 다지는 일이 될거란 막연한 믿음.


가끔 프라이머리 이터널 이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아픈 상처 받은 후 아무런 배움이 없을 땐' 그냥 그런게 내 몇년 째 반복됐던 유산의 슬픔이 그런 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의 문제적 상황은 배움이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투지력이 엔돌핀과 비슷하게 생겨났다.


아무튼  법적효력과 불이익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며 세입자가 집주인의 갑질을 정통으로 맞을 때. '살면서 겪어보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연유로 운동장이 불행의 기울기로 넘어가려 할 때.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나마 인생에 다 도움이 된다고 정신승리 조타를 돌려본다. 힘 껏, 아주 힘 껏.


넘어야 할 산이 아주 많이 남았다. 당장 이번 달에도 넘어야 할 산이 굉장히 큰데.

뭐, 살아야지 어떡하겠어. 갑옷 입고 전장으로 나가야지 뭐.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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