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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asson Mar 15. 2024

L에게 쓰는 편지

#12 호불호가 강한 2세 아기, '엄마 십빠, 하나.'

2024.03.15

리나에게,


좋은 아침.


이른 아침, 내 볼에 느껴지는 귀여운 감촉.

내 볼에 뽀뽀를 쪽 하며   

'엄마 자자 떠?(잘 잤어?)'

라고 물어보는 너.


오늘 아침 우리가 나눈 대화야.


'엄마 햅삐?(Happy)'
'응 엄마 행복해'
'엄마, 노 슈퍼?(안 슬퍼?)'
'응 엄마 안 슬퍼'
'리나도 햅삐'
'리나도 행복해?'
'네'
'리나도 잘 잤어?'
'네'


한국어, 영어, 스웨덴어를 섞어 말해서 더 귀여워.


아침에 일어나 나의 기분을 살피는 너를 보고 조금은 미안했어.

어제 아침 내가 너한테 짜증을 조금 냈거든.

너는 애착인형이 없는 대신 나를 애착 인간으로 여기고 있거든.

나를 꼭 껴안고 내 얼굴을 계속 만지거나 내 살을 만져야 안정감을 느끼더라.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네 동생을 품고 있는 내 배를 발로 차기도 해.

새벽에 네가 깨서 나를 부르면 나는 네 방에 가서 자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편히 못 자거든.  

그날따라 유난히 나에게 치대던 너에게 살짝 짜증을 냈어.

이제 리나 방에 못 오겠다고, 자꾸 엄마 못 자게 할 거면 엄마는 엄마 방에서 잘 거라고.

다음날인 오늘, 네가 내 기분을 살피더라.

참 미안하고 죄책감 들고 그러더라.

너의 애착인형이 나라서 나로 하여금 네가 안정을 찾는 것인데,

네 잘못이 아닌데,

네 탓을 하는 내가 참 엄마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

늘 나보다 30분 먼저 일어나는 네가

오늘따라 내 옆에 가만히 누워있더라고.

우리가 일어나는 시간인 7시 30분 정도가 되자 네가 뽀뽀하며 날 깨운 거야.


너는 어쩜 그렇게 착하고 마음이 넓을까.

엄마 자격 한참 미달인 나를 엄마로 키우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





며칠 전, 하원길.

낮잠을 안 잔 네가 피곤해서 짜증을 유난히 부리던 날이었어.

걸어가고 있는데 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짜증을 냈어.

그리고 울기 시작했지.

나는 그냥 근처 벤치에 앉아 네가 다 울기를 기다렸어.

실컷 울더니 나에게 다가와 안아달라고 말하더라.

너를 안아줬더니 네가 내 품에 안겨 코를 훌쩍이며 말했어.


'엄마, 리나 십빠, 하나'


두 귀를 의심했어.

네가 욕을 하는 줄 알았거든.


'응? 무슨 말이야?'

'리나 십빠, 하나'


내가 못 알아듣자 너는 계속해서 저렇게 말했어.

내 머릿속은 복잡했지.

대체 누가 네 앞에서 욕을 했길래 네가 배운 걸까?

나는 저런 욕을 육성으로 절대 내뱉는 사람이 아닌데.

네 아빠는 한국인이 아니니 더더욱 아닐 테고.

네 할머니 할아버지도 저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


몇 번을 더 되뇐 네 목소리에 불현듯 깨달았어.


'아, 리나 슬퍼? 화나?'

'응, 리나 십빠, 하나'


슬퍼, 화나.

욕이 아니라 네 기분을 말해주는 거였어.

그 순간 참 웃기고 귀엽고 장하고.

슬프고 화난다는 감정을 말하는 네게 욕을 한다고 착각한 나도 웃기고.


왜 화나고 슬프냐고 되묻자

엄마라고 답하는 너.

내가 너를 화나게 했구나.

명확히 나를 콕 집어 얘기해 주는 네가 참 기특했어.





또 어느 날

너에게 다가온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어.

꼬리 흔들며 네 냄새를 킁킁거리길래 네가 살살 쓰다듬었어.

그랬더니 그 강아지가 네 손을 핥았어.

네가 소리를 꺅 지르며 너무 좋아하더라.

한껏 빵빵하게 솟아오른 볼때기에 날 닮은 인디언 보조개가 그어졌고

세상 행복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네가 말했어,


'리나 좋다! 리나 멈머 좋다!'


네가 네 그 웃음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어쩜 너는 이렇게 순수하고 해맑을 수 있을까.


너는 아이스크림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에

'아킴 (아이스크림) 좋다!' 라며 세상 행복한 미소로 2유로짜리 아이스크림을 먹는단다.


2유로 아이스크림에 행복한 너



너는 먹는 것도 참 좋아해서 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어.

그리고 나를 닮아 국에 밥 말아먹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는 기분이 좋은지

'밥 좋다!' 라며 활짝 웃어.


내가 만든 오트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너
미역국에 이미 밥 말아먹었는데 밥을 또 먹는 너


이런 네 미소를 보는 내 마음은 정말 행복함과 감사함으로 충만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진심으로 순수하게 기뻐하는 너의 모습.

언제까지나 지켜줄게.





벌써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26개월의 너.

호불호도 얼마나 강한지,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 네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안 나와 있으면

너는 등원을 완곡히 거부했지.

다른 선생님들이 나와서 아무리 달래보아도 너는 절대 들어가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와야 웃으며 들어가지.

네가 좋아하던 선생님 Catherine, Ruby, Mariella였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때는 전혀 기억 못 하겠지.

내가 사진으로 잘 간직해 둘게.


아주 어린 갓난아기 때부터

누구에게나 잘 웃어주고 사교성도 좋던 네가

아무나 따라갈까 봐 어쩔 땐 걱정도 되었는데

의사표현을 확실히 할 줄 아는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되었단다.


너는 내가 뽀뽀해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싫으면 아주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는 아이거든.


제발 지금처럼 확고하고 주체적인 아이로 자라나길 바라.

내가 그렇게 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더 많이 너를 사랑해.

세상에 다시없을 내 사랑. 내 딸.  









아참,

그런데 리나야

강아지는 절대 안 키울 거야.

아마 네가 살면서 나의 이 원칙에 불만을 가지게 될 날이 올 거야.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시점에도 너는 내게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강아지를 식구로 맞이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거든.

네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좋아하고 귀엽다고 해서 가볍게 데리고 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강아지는 우리와 수명도 다르단다.

우리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강아지가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리면

나는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없을 거 같거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는 자주 오랫동안 집을 비울 거라는 거야.

한국이든 어디든 늘 으면 2주 길면 몇 달을 지내다 오잖아.


또 역마살 낀 네 아빠 덕분에 언제 어디로 이사 갈지 모르는 환경이야.

그때마다 강아지도 비행기에 태워 데려갈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거든.

네가 성인이 되고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네 터전이 생기면 그때 키워보렴.

그땐 네 인생이고 네 선택이니 말리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나와 함께 사는 동안에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일은 절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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