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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Mar 03. 2022

끔찍한 18세기 수술을 뒤바꾼 역사적인 ‘이 사건’

마취제의 발견

그날은 1846년 10월 16일 금요일이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실 내부가 관중으로 가득 찬 이유는 ‘고통 없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문에 특별한 광경을 보려는 이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수술이라니! 당시 수술이라고 하면 무조건 끔찍한 고통을 의미했다. 의사들은 수술 중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대부터 허브 추출물, 알코올에 적신 수면 유도용 스펀지, 아편 등의 방법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이 모든 도전은 허사였다. 어느 병원이건 할 것 없이 고문당하는 환자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고통은 수술 의학의 운명적인 동반자였던 셈이다.


수술의 고통은 치료의 범위도 제한했다. 수술할 수 있는 질병도 몇 되지 않았으며 아무리 힘센 ‘간호사’들이 환자를 붙들어도 수술대에서 날뛰고 소리 지르는 환자의 복부나 흉부를 절개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빠른 속도야말로 모든 외과 의사의 최우선 과제였다. 환자가 고통의 충격으로 사망하기 전에 수술이 끝나야 했다.


호러스 웰스(Horace Wells) by Laird W. Nevius


1년 전인 1845년, 이미 그곳에서 치과의사 호러스 웰스(Horace Wells)가 고통 없는 수술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당시 환자는 웰스가 준비한 가스를 들이마신 후 기절했다. 웃음 가스라고도 알려진 아산화질소였다. 하지만 피부에 칼이 닿자 환자는 깨어나 울부짖었고, 그렇게 웰스는 쫓겨났다.


그리고 1년 뒤, 웰스의 제자인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William Morton)이 스승처럼 ‘고통 없는 수술’에 도전했다. 모턴은 환자에게 에틸에테르 연기를 들이마시게 했고, 환자는 이내 기절했다. 외과 의사가 환자의 피부를 절개했고, 가볍게 종양을 제거했다. 상처가 봉합되고 수술이 끝나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관중들은 숨소리 없이 조용했고, 곧 깨어난 환자는 수술이 끝난 줄도 몰랐다. ‘마취’라는 의학적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 질병과 인간의 관계는 이전과 영원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The first use of ether as an anaesthetic in 1846
하지만 이 획기적인 발전에도 대가는 있었다.


1847년 2월, 마취로 인한 첫 번째 사망이 발생했고 뒤이어 다른 사망자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의학 잡지에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마약성 마취제에는 항상 위험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후 클로로폼과 같은 더 강력한 마취제도 등장했다. 의사들은 점점 클로로폼을 더 나은 마취제로 신뢰했다.


심지어 모턴의 스승인 화학자 찰스 잭슨이 마취제의 발견을 자신의 업적으로 가로채려는 사건도 있었다. 모턴은 에테르에 대해 누구보다도 잭슨과 많이 논의했다. 그런데 잭슨은 자신이 발명가인 양 모턴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계속 협박했다. 지금도 여전히 몇몇 백과사전에는 잭슨이 마취제를 발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취 실험에 실패하고 조롱받았던 웰스의 ‘웃음 가스’는 현대 마취학에서 확고한 위치를 되찾은 반면, 에테르와 클로로폼은 쓸모없어진 지 이미 한참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마취술을 선보여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인류가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마련한 것은 오롯이 모턴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모턴(William Morton)



* 위 글은 책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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