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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Mar 24. 2022

역사 속 전쟁이 오늘 내 월급에 미친 영향

나폴레옹 전쟁과 소득세

현대 국가 형태를 만든 엔진,
소득세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미국과 독일 정부 수입의 65%, 영국의 47%를 차지하는 소득세. 그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국의 십일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소득세는 나폴레옹을 물리치기 위해 도입되었다.


1783년, 영국의 연간 세수입은 1,300만 파운드였다. 국가 채무는 2억 3,400만 파운드였고, 이자만 800만 파운드였다. 10년 후 프랑스와 나폴레옹 전쟁이 터지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프랑스 혁명이 영국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유럽 왕가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었다.


1798년에는 채무가 4억 1,300만 파운드로 늘었고 이자도 두 배 이상 늘었다. 영국 중앙은행은 처음에는 분기마다 금화와 은화로 이자를 지불했지만, 금액이 커지자 금은의 재고가 소진되어 은행은 지폐를 금이나 은으로 교환하지 않는 방법, 즉 금본위제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 결과 전쟁 내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해군은 반란을 일으켰고 육군은 굶주렸다.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 지원과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1799년에 소득세를 도입했다.


윌리엄 피트(영국 총리)의 소득세 정책(제임스 길레이, 1799)


당시 영국 정부는 보이는 건 무엇이든 세금을 매겼다.


마차, 짐차, 수레, 카트에 따로 세금을 매겼다. 남자 시종도 과세 대상이었고 벽돌, 유리, 창문, 벽지 등 종류별로 각각 과세했다. 세수로 1,000만 파운드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지만 40퍼센트나 미달했다.


1803년에는 원천징수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전에는 세금을 내는 책임이 납세자에게 있었지만 이제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에 세금을 거두었다. 은행은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 이자를 채권 보유자에게 지급했다. 회사는 배당소득에 대한 이자를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를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분배했다. 공무원의 급여와 연금도 지급 시에 과세되었다.


이 제도는 20세기 후반에 모든 형태의 급여생활자에게 확대되어 현재는 거의 모든 나라가 적용하고 있다. 소득세는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바꾸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데 자금줄이 되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오늘날에는 전 세계 복지국가의 예산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영국은 나일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부채는 더욱 늘어났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에 6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 부채를 안겼다. 이렇게 발생한 채무와 이자는 그다음 50년간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총리는 “좀 더 일찍 소득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부채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빚이 없었다면 19세기 전반에 국민들이 그렇게 가난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위 글은 책 <세금의 세계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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