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가 남긴 것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 이후 4년 만에 신작을 가지고 돌아왔다. <베테랑>의 천만 흥행 돌파에 이어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개봉했던 <군함도>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군함도> 이후 <사바하>, <엑시트>의 제작을 맡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어내던 감독 류승완에게 4년은 눈에 띄는 공백이다. 공백 끝에 류승완 감독은 다시 한번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가지고 왔다. 신작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에 휩쓸린 한국과 북한 대사의 영화 같은 탈출을 담고 있다. 모로코 올로케이션이 뿜어내는 이국적인 에너지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믿음직스러운 배우들의 면면은 오랜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극장에 꽉 찬 기대감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시 한번 탈출이다. '목표는 탈출'이라는 카피를 들고 나온 이 영화. 코로나19로부터, 전작의 그림자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투명한 벽과 벽을 넘어서.
<모가디슈>에서는 거리를 두고 전쟁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멀리 문 밖에서는 최루탄이 터지고, 대사관 창 밖에 총소리가 들리며, 차창 너머에는 총을 든 어린아이가 있다. 제 3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그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태극기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대한민국 여권으로 신분을 증명하며 겨우 전장을 오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가진 최대한의 정보와 권력으로 최소한의 안전만을 보장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전도 곧 깨지고 만다. 전쟁의 골이 깊어질수록 전쟁은 벽을 넘어 그들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틈새로 우리의 전쟁, 우리의 균열이 고개를 든다.
남과 북 사이에는 벽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단단하고 큰 벽은 투명한 벽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벽 너머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로 보이지만, 이 벽을 통과한 모습은 언제나 굴절되어 있다. '북한은 어릴 때부터 특수훈련을 받는다.'거나 '밥에 독을 탔을 것.'이라는 수많은 의심이 그 굴절로부터 태어났다. 두 나라가 아닌 제3 지대에서도 그들은 그 굴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 내전이라는 외력에 의해 그 벽은 강제로 깨어진다. 반군이 대사관 벽을 넘어 침투하고, 총알이 창문을 깨버리자 절대 화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집단은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탈출과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는 잠시나마 '설교가 아닌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깨어진 벽 너머를 들여다보게 한다.
한국 대사와 북한 대사, 두 집단이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그 전쟁은 한반도를 떠올리게 한다.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눠야 했던 아픈 역사와 국가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젊은 청년은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소말리아이지만 결국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곳을 상기시킨다. 남북한이 그 전쟁의 중심을 '함께' 통과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소말리아 내전으로부터의 탈출이나 생존이 아니라 시공간은 넘어서는 더 큰 무엇으로부터의 탈출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은 액션 그 자체로도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지만, 총알을 따라 차 내부와 외부, 차와 차 사이를 오가는 카메라가 두 집단 사이에 완전히 사라져 버린 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장 혼란스러워야 할 전쟁의 한 복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남과 북은, 남과 북을 넘어선 '한신성'과 '림용수'는, 가장 선명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모가디슈로부터의 탈출을 무사히 마치고 나이로비에 도착한 그들은 다시 벽과 마주한다. 잠시나마 하나가 되었던 그들은 그토록 바라던 안전을 보장받는 곳으로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전쟁을 통과해야 한다. 이 둘의 전쟁은 어쩌면 벽과의 전쟁이다. 계속해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전쟁, 대화가 아닌 설교를 해야 하는 전쟁, 굴절된 모습을 현실이라 여겨야 하는 전쟁. <모가디슈>의 목표는 오직 탈출이었다. 대부분은 살아남았고 돌아가고 싶었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 탈출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탈출해야 할 곳과 것은 무엇인가. 투명한 벽의 벌어진 틈새를 통과하는 시선과 무겁게 옮기는 발걸음을 남긴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류승완의 사포질
<모가디슈>.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한국 대작 영화다. 갑자기 다시 한번 코로나 19 확진자가 증가세를 보이면서 혹시 개봉이 미뤄질까 염려했지만, 한국상영관협회와 한국 IPTV방송협회의 지원으로 제작비의 50%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영화가 워낙 대작인 탓에 관객수 300만을 넘겨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인 점이라면 영화 <모가디슈>가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을 만큼 매끈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마치 한국인의 신체에 딱 맞춘 기성복 같은 느낌이다. 울퉁불퉁할만한 지점을 귀신같이 갈고닦아서 매끈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돋보이고(특히 식사 장면!) 전반부와 후반부의 역할 분배가 분명하다. 어쩌면 낯설 수도 있는 사건을 충분히 친절하게 설명해내고, 캐릭터는 한눈에 알아볼 만큼 친숙하다. 마치 류승완 감독의 이전 영화가 들었던 비판들을 모으고 모아 틈을 메운듯한 매끈함이다. 하지만 이 매끈함과 안전함이 나에게 진한 매력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느꼈던 매력은 매끈함이 아니라 어딘가 사포질이 덜 된 듯한 투박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모가디슈>는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텐트폴 영화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성실한 영화다. 그렇지만 이 여름을 지나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인지는 의문이다. 전작 <군함도>에서 200억 상당의 제작비를 감당해야 했던 그가 다시 한번 같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어내면서 그 규모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모가디슈>의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류승완 감독에 대한 기대가 만든 감상이다. <모가디슈>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기대하게 한다. 분명히 <군함도>보다 좋은 영화이지만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가 사포질에 조금은 게을러지길 바란다.
*2021년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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