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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Feb 11. 2021

어제와 다른 나

"나 다시 돌아갈래~!" 

 요새 허지웅 씨의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고 있다.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후에 쓴 글이라서 그런지 글에서 절박함도 느껴졌다. 특히 그가 이야기한 것 중에서 마흔의 삶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과 같다.” - 허지웅 씨의《살고 싶다는 농담》중에서


 예전에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책망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를 질책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점차 현실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고 있다. 


 ‘현실’이라는 것을 핑계 삼는지도 모른다. ‘네가 현실을 몰라서 그래, 현실은 그렇지 않아, 현실은 훨씬 냉혹하고 잔인해 등’ 마치 세상 다 살아본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마음속으로는 두려움과 게으름이 더 앞서지만 말이다. 


 한 번 타협하고 안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앞서 ‘Think out of the box’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껍질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그 안에서 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은 지극히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이다. 사람의 ‘뇌’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그랬기 때문에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의 조상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떠돌아다녔다면 수많은 생명을 낳지 못했을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 또는 포식자들에게 진작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안주하고, 안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꼭 나쁜 일이 아니다. 평생을 방황하고, 떠돌이처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면서 우리만의 공간과 관계를 갖게 된다. 다만 그것이 너무 과도할 때가 문제다. 나의 본연의 모습을 잃기 때문이다. 


 영화 《박하사탕》 주인공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혹시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검색해 보길 바란다.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must’ 영화 중의 하나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그 시대를 처절하게 살아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김영호는 젊은 시절,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예쁜 꽃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 5월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는 군대로 투입되었다가 실수로 여고생을 죽이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점차 타락하게 된다. 심지어 고문을 자행하는 경찰이 되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고, IMF로 가구 사업도 망한다. 


 그는 마침내 죽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의 첫사랑 순임의 남편이 찾아온다. 그녀는 시한부 인생이었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후였다. 그녀의 ‘박하사탕’을 선물로 두고 나온 후 그는 세상과 이별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예전 야유회를 갔던 계곡 옆의 기찻길 철로 위에 올라가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면 자살한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죽으면서 시간은 철로 위의 열차와 함께 계속 거꾸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그가 순순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박하사탕’ 공장에서 일하는 첫사랑 순임과 달콤한 데이트를 즐긴다. 


 이렇게 우리는 종종 ‘타임슬립’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1년 전, 10년 전, 20년 전. 그때를 돌아보면서, 늘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막상 지금 현재 내가 내리는 ‘선택’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주인공 김영호가 과거의 실수를 참회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만약 젊은 시절의 김영호가 마흔 이후의 자신을 바라봤다면 어떤 선택을 하라고 했을까? 물론 과거의 죄책감을 이겨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자신을 계속 타락시키고, 나쁜 길로 들어서는 것은 막지 않았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10년 전,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봤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적어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마음을 위해서, 보다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떤 작가님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일 행복한 것이 ‘뛰는 것’이라고 한다. 아침, 저녁 뛰면서 새로운 영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분을 바라보면서 ‘이미 뛰기에는 늙었어’라고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5분이라도 가볍게 동네를 뛰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떠한가?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변하겠는가? 


 어제와 1센티미터라도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멋질 것이다. 적어도 마흔 이후는 이러한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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