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 기획서' 중에서
이곳은 장강의 남쪽에 주둔한 손권의 진영이다. 추운 겨울밤, 아름다운 달이 두둥실 떠 있는 강 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배가 장관을 이루고 강가에 정박해 있었다. 강가 주변에는 조조군의 야습에 대비하여 병사들이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긴장되는 상황에서 군중의 한 장막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주변은 유독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 안에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손권과 유비의 최고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유, 노숙, 제갈량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먼저 주유가 어색한 침묵을 깨며 제갈량의 마음을 떠보았다.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람을 보내 빨리 군사를 내라고 재촉하시었소. 그러나 이 유(瑜)는 아직 좋은 계책을 마련치 못해 걱정이외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좋은 가르침을 내려주시오.
하지만 눈치 9단인 제갈량이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주유의 마음을 떠보니, 그는 한숨을 쉬며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어제 조조의 수채를 살펴보았는데, 매우 엄정하면서도 법도에 맞는 것이라 어지간해서는 쳐부수기 힘들어 보였소.
제갈량은 동남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날씨를 예측해서 ‘화공’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미 박망파와 신야에서 두 번의 화공으로 강력한 조조의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지만, 대군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공이었다. 주유도 마찬가지로 화공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겨울철 북서풍이 주로 부는 상황에서는 화공의 성공 확률이 낮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명은 그 지방의 과거 계절풍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입수해서 동남풍이 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계절은 이미 겨울철로 접어들어서 조조군에게는 말들을 먹일 건초(乾草)가 충분치 않았고, 북쪽의 병사들이 남쪽의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물론 이들도 풍토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있어서 유리한 때는 ‘동남풍’이 불 때고, 장소는 바로 ‘장강’이었다. 장강은 무려 6,300km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예로부터 중국에는 “장강을 지배하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는 말이 내려올 정도다. 적벽대전도 장강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이들 연합군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조조군과 결전을 벌이고자 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유리한 때와 장소를 이용해야 한다.
경쟁사의 규모가 크고 나보다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이 뛰어나다면, 정면으로 대항하면 안 된다. 화웨이(Huawei)와 샤오미(Xiaomi)는 이제 누구나 잘 아는 스마트폰 업체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판매 대수에서 애플을 따돌리고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포(OPPO)와 비보(VIVO)라는 중국 업체도 LG, Sony를 제치고 세계 5위, 6위의 강자가 되었다. 이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소와 시기를 잘 이용한 덕분이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게는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이 있는데, 전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시장을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삼아서 제품의 기술력을 키우고, 다른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으로 마련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최신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고, 값비싼 애플 제품보다는 그보다 절반 이하 가격이면서 성능이 뛰어난 자국의 제품을 선호했다. 만약 이들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애플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수출로 눈길을 돌렸다면 지금과 같은 영광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때와 장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애플은 잡스가 떠나고 나서 뉴턴(Newton)이라는 PDA(Personal Digital Assitant)를 출시했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당시 PDA는 일정, 주소 관리, 일부 게임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기능이 없었다. 또한, 2001년에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는 현재 태블릿의 원형이 되는 태블릿 PC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직 사람들은 터치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앱도 지금처럼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아이패드, 갤럭시 태블릿 등이 출시되면서 소비자들은 본격적으로 태블릿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기술이 발달하고, 수많은 앱 개발자의 참여로 많은 콘텐츠가 생성되면서 생태계가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PMF라고 한다. 즉, Product Market Fit이라는 것의 약자인데, 직역하면 ‘제품의 시장 맞춤’이다. 넷스케이프(Netscape)의 창업자이고,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PMF를 “좋은 시장에 그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DA와 초기 태블릿 제품은 좋은 시장을 만나지 못했고, 제품은 준비가 제대로 안 된 경우였다. 미국에서 2008~2010년에 투자를 받은 약 1,100여 개의 스타트업 중에서 70%가 실패했는데, 이 중 42%는 시장 니즈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와 장소, 그리고 거기에 맞는 제품은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케팅 활동을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디어나 기술도 소비자의 요구와 상관없이 너무 앞서 나가도 안 된다. 특히 약자의 경우 나의 능력을 망각한 채 강력한 상대방과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적절한 시기와 좋은 제품으로 차분히 준비하면서 제갈량처럼 나만의 ‘동남풍’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