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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지우니

I want nobody

by Loche


몇 년째 지지부진하던 집 청소와 정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탱고에 빠져 있을 때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수업, 쁘락, 밀롱가, 그리고 탱고 지인들과 만남이 일상에서 매우 큰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탱고를 그만두고 탱고에 관련된 인간관계를 모두 끊으니 내 생각과 시간에 많은 여백이 생기고 비로소 나의 삶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


탱고는 혼자 할 수 없는 커플 댄스이다. 연습은 혼자서 하더라도 춤은 커플로 춰야 한다. 누군가가 있어야만 출 수 있는 춤. 그래서 그 누군가를 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왕이면 잘 추는 누군가를 찾게 되고 이왕이면 잘 생기고 성격 좋고 품격 있는 누군가이기를 내심 바란다.


내가 잘 추고 잘 생기고 성격 좋은 것이 우선이지만 나 못지않게 상대방(들)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높은 클래스의 사람(들)이기를 원한다. 내가 선망하는 상대와 춤을 추기 위해 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한다. 그런데 이 잘 추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춤 실력 향상이 앞서기니 뒤서거니 하면서 까기도 하고 까임을 당하기도 하는 잔혹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 욕망은 더욱 커진다. 욕망의 눈빛이 마구 날아다니는 무언의 정글, 밀롱가. 욕망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탱고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던 것일까. 중간중간에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일 년 정도 쉼이 있었지만 만 7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늘 탱고가 있었다. 그리고 2025년. 마침내 탱고에서 해방되었다. 탱고에 대한 내 욕망이 사라졌다. 드디어.


탱고는 중독성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하지만 그 중독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입문자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에게만 문이 살짝 열린다.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고 극강의 멘탈이 요구된다. 반면에 관문을 일단 통과하면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가 아주 어렵다. 나는 정말 운 좋게 빠져나왔다.


나와서 돌아보니 그 세계가 매우 재미난 세계였음은 인정하지만 거기에만 빠져 지내기에는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누군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요즘 느낀다. 욕망과 거리를 두며 내면의 실을 기하는 삶. 휴일 온종일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점점 윤기가 나고 화색이 도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더불어 나도 살아난다.


한밤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올해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다.


탱고에, 탱고로 알게 된 인간관계에 소비되는 지출을 전부 투자로 돌린다. 탱고에 소모되는 시간을 공부와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대체한다.


나 완전 정신 차렸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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