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U Feb 06. 2024

오늘, 냉수육

다음 생에는 장금이와 결혼하길 바라요


   "평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 알아서 먹을게. 주말에만 해줘." 최애씨가 하는 말이다. 물론, 너무나 따뜻한 그의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냉장고 문을 열고 뭐 먹을지 고민하는 그 뒷모습이 (뒤통수 아님) 동시에 떠오른다. 더 부담이다.

   최애씨는 먹을 것에 진심이다. 본인은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이들보다 더 유난인 경우가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주시는 대로 먹어'라고 할 때면 내 코에서는 절로 방귀가 나온다.

   "요리 학원을 다니면 어때?"라고 말할 때도 있다. SNS에 떠다니는 레시피인 가득인 것을. 떠다녀도 안 하는 나에게 돌려 말하는 것인가. - 안타깝게도 그는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 밖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고 진심으로 추천하고 있다. 신혼 초 '육 첩 반상'을 한 번 언급했던 사위에게 친정엄마는 친절히 식당을 추천해 주셨다. 친정 아빠는 본인의 신혼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초기의 밥상 위 메뉴는 하나였고, 점점 많아질 거라며 GOMU에게 칭찬 계속해주라는 말과 조금 더 기다려보라는 말로 지금까지도 사위를 다독이신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최애씨임에도 불구하고 와이프가 지금껏 정성스레 만든 음식들은 기억 못 하고 "맨날 요리 안 하잖아"라고 말할 때가 있다. '맨날'이란 단어는 작은 마음 간헐적 요리사에게 굉장히 날카롭게 귀에 박히며 - '맨날' 주방 입장 안 해볼까 - 욱이 빠르게 솟아오른다. 나의 트리거(trigger)라는 것을 그는 인지하고 이용하는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부정적이던 그 트리거는 결혼 생활 경력이 쌓이며 요리의 욕구를 부르는 긍정의 의미로 변화하였고 - 그는 내가 잘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 지금은 장난 스러이 가벼운 남편 멱살잡이로 마무리한다.

 


   간헐적 요리사의 요리는 주로 SNS에서 가져오는데, 모든 것을 다 요리하지는 않는다(못한다).  능력치를 알기에 간단해야 하고, 재료가 집에 있어야 한다. 요리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최상일 메뉴를 정하고, 새벽녘 앱으로 장을 양껏 본다. 가득 채운 냉장고는 기가 막히게도 평일에 재료를 다 소진하고, 막상 주말이 되면 군데군데 비어있는 냉장고를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때면 요리사의 열정은 바닥을 보이고 '오늘 뭐 먹지'의 고민과 당황스러움이 또다시 찾아온다.



   최애씨는 쉬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주부의 쉼이란 무엇인가 생각 중인 내가 서있는 곳은 주방. 그들의 위해 사랑 스푼 품고, 레시피를 복기하며 팔을 걷어붙인다.


오늘의 요리는,


냉수육



수육, 우리네 밥상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다.

압력솥에서 꺼낸 뜨끈뜨끈한 고기만을 해왔다. 과연 차가운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먼저, 앞다리를 준비한다. 첫 메뉴라 한 덩이만 구입했다.

기존의 수육은 파, 통후추, 된장, 커피 등을 넣었지만 이번 냉수육 레시피는 소금만이 전부다.


1. 끓는 물에 소금을 넣은 후 고기를 통으로 넣는다.

센 불에 10분 간 삶는다. ( 불순물 걷어내기 )



2. 10분 후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1시간 기다린다.

(1시간 후, 핏물이 보여 10분 더 끓여주고 꺼냈다.)



3. 키친 타올로 물기를 닦아준 후, 랩으로 타이트하게 감싸 모양을 잡는다.

반으로 잘라 단면을 확인해 봤다. 저온으로 익힌 고기라 핑크빛이 돌지만 익은 것이다.

나는 더 끓여서 그런지 핑크빛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4. 냉장고에 4시간 이상 보관한다.

대파의 흰 부분으로 고기에 얹어 먹을 양념장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_국간장 3T, 고춧가루 1T, 간 마늘 T, 설탕 1T, 식초 1T, 참기름 1T, 청양고추, 깨 조금


 5. 4시간 후, 칼을 집어 든다. 복어회 뜨듯 얇게 으려 나름 노력했다.

캠핑이나 여행 미리 준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메뉴다.


'요새 유행하는 하이볼'이 있으면 만들어 주는 최애씨 덕분에 오늘도 살을 찌워본다.


짧은 시간에 쫄깃하고 연한 냉수육 / 냉제육 완성!

아이들과 최애씨의 만족도가 높았다. 친정에 갈 때 가져가라는 최애씨. 소고기도 바짝 구워 드시는 엄마가 분홍빛을 드실지는 의문이다. 예쁜 입들이 맛있다고 오물오물 움직이니 뿌듯하다.


숟가락 초밥이 아닌 숟가락 냉제육과 굴 조합도 꿀맛이다



다음은 언제, 어떤 요리를 하게 될까.

그날을 위해 천천히 차근차근 마음속 요리 원기옥을 모아 본다.





오늘의 스승님 _ 정호영 셰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