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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제철 음식의 강렬함

'모리스 디페렌테' (다른 삶) 24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퇴근 길엔, 길가서 채소며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들을 항상 지난다. 레몬, 라임, 바나나는 거의 일년 내내 볼 수 있다. 50센트를 주고 산 레몬 10개와, 지난 번 사 놓은 생강을 다듬었다. 소독한 유리병에 꿀과 함께 켜켜이 잘 재어 넣어, 로스팔로스 표 100% 오가닉 핸드메이드 레몬생강꿀차 완성! 

뭘 만들기 시작하면, 왠지 발동이 걸린다. "그동안 한 번 만들어 봐야지~" 하고 벼르던 새우버거 패티도 만들었다. 딜리에서 사온 냉동새우를 써 먹을 차례! 양파를 다지고 계란과 전분, 빵가루를 넣어 치대어 동그랗게 빚어 오븐에 구웠다. 내친 김에 양파, 얼마 전에 만든 오이 피클, 삶은 계란에 마요네즈를 섞어 타르타르 소스도 만들었다. 레시피에 '레몬즙 약간'이라고 해서 한 개 분을 짜 넣었더니 너무 묽어지긴 했지만, 맛은 훌륭하다. 

로스팔로스에서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간다. 실제로 구할 수 없는 것을 직접 만들어 먹다 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마음이나 일상의 시간이 더 여유로워진 탓도 있다. 그렇게 혼자 척척 잘 먹고 나선, 베란다에 앉아 기분좋게 멍 때린다. 우기의 밤 -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벌써 공기중에 비냄새와 젖은 흙냄새가 난다. 야옹이를 안고 베란다 소파에 앉아, 바나나나무잎에 떨어지는 우두둑 빗소리를 듣다보면 시간이 무척 잘 간다. 


레몬이나 바나나와는 달리, 짧게 철을 타는 재료들도 있다. 

버섯은 시즌이 짧다. 한국 느타리 버섯 비슷하게 생겼는데, 60cm 정도 되는 뻣뻣한 풀 줄기에 10송이 정도 내외를 끼워서 판다. 전혀 안 보이다가, 순간 파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때가 철이다. 한 달 남짓인가 정도의 짧은 기간. 재배하는 게 아니고, 자연 채취를 하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선 자연채취한 버섯은 먹어본 기억이 없다. 자연송이 같은 것 말고는 거의 다 재배가 아닐까. 그러고보니 버섯뿐만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채취를 한 뭔가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모두 재배, 양식, 농사이니깐. 

물론 여기도 야채 종류는 재배한 것을 먹지만, 이렇게 철따라 나오는 것들 - 버섯, 파인애플, 망고, 아보카도 등은 보통 그 과일들이 날 때 따서 파는 경우가 대부분. 따로 길러서 팔고 하는 경우가 아직은 덜 하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어느 정도는 사람의 손과 기술이 개입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영양을 공급하는 매커니즘을 만드는 것은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원래 날것의 맛과 향과 가치가 어땠는지는 좀 희미해 지기도 한다. 원래는 항상 나오는 것들이 아니건만, 365일 항상 보여야 하는 것에 더 익숙해질 수 있다. 

로스팔로스에서 12월 말 부터 한 달 정도, 계속 시장에 나오는 파인애플이 너무 맛있어 보일 때마다 사서 먹었다. 그런데 365일 보여도 이렇게 열심히 맛있게 사먹을까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먹고 싶을 때마다 항상 구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사실 원래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은 정해진 시간에, 그 시간이 허락한 가장 풍요롭고 좋은 것들을 내놓아서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처음 맛보는 제철의 달고 향기로운 파인애플, 흙냄새와 약간 곰팡이 냄새 같은 게 그대로 나는 버섯 모두 다, 집어 든 순간부터 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굉장히 강렬하다. 보존 기간은 짧지만 체취의 강렬함이 있는데, 제철에만 베풀어지는 것의 존재감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시 자연 채집수렵의 생활만이 이상적이고 바른 것이다라고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깐. 

하지만 너무 손에 닿기 쉽고 편하고 항상 있다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은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낀다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자연스러운 상태는 미개하다고 느껴버리는 것, 또 자연스러운 상태의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역시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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