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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프롤로그

악어섬 다이어리 - 동티모르에서 마주친 낯선 삶

평생 대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공부하다가, 태평양 섬나라 동티모르로 일하러 갔을 때가 서른 다섯. 

아직 마음과 뇌가 제법 말랑말랑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충격파는 꽤 크게 다가왔다. 동티모르 이전에도 파리와 카사블랑카에 잠시 살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 다름이 이토록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실제로 문화나 환경이 많이 다른 것도 있지만, 나라는 다를 지언정 어쨌든 계속 도시에만 있다가 처음 시골 생활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일을 하면서 보다 깊어진 시선으로 주위를 보게 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동티모르로 일하러 가게 된 곳은 개발협력분야 NGO.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일해왔던 서울시 산하의 공공기관을 퇴직하고 갔다. 서울에서의 일과 삶은 나쁘지 않았다. 즐길 것도 많고, 재미와 의미도 있었다. 정이 담뿍 든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의 어느 한 구석에 터전을 틀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저런 재미거리들을 찾아내면서 살아갈 것이란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서울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크고 생기 넘치는 도시가, 그냥 크기만 큰 닫혀있는 상자처럼 느껴지다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고 있던 시기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단기 보고서 프로젝트를 맡았던 개발협력 NGO에서 해외파견 자리가 났던데, 지원해볼 생각이 없냐는 연락이었다. 

"언니 대학때부터 개발협력쪽 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공고 떴는데, 언니 생각 나길래 알려주려고 전화했어요." 


개발협력은 개도국 빈곤퇴치, 경제사회 개발을 지원하고 실현하는 광범위한 협력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의 일방적 원조 개념을 당연시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일방이 아닌 쌍방이나 다자가 당연시되고, 그 주체 역시 정부 일변도에서 다양한 기구, 단체, 시민들로 다변화되었다. 추구하는 분야의 스펙트럼 역시 경제 성장 위주에서 인권, 교육, 평등, 행복권 등으로 다양하게 넓어졌다.

단기로 일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소규모로 착실하게 원칙에 맞춰 일하는 곳 같단 것이 그녀의 평.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홈페이지도 찾아보면서 좀 고민을 하다 지원을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자리였다. 합격한 후, 다니던 기관에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1달이 걸렸다.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가족에게 사죄와 통보를 하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교육을 받는 데 2달이 걸렸다. 중간에 파견국이 에티오피아에서 동티모르로 바뀌었다. 어디 있는지 대충 머릿 속 지도에서 그릴 수 있는 에티오피아와는 달리, 동티모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어차피 낯설기는 마찬가지. 

가겠다고 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악어섬이기도 하다. 

구전설화라서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른데, 티모르 섬의 탄생 설화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한 소년이 늪에서 죽음에 이른 악어를 발견한다. 소년은 매우 두려웠지만 악어를 바다로 데리고 가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악어가 소년을 먹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유혹을 이겨냈다고. 자기의 목숨을 살려준 보답으로 소년이 필요할 때 어디로든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둘은 친구가 되어 함께 먼바다로 나가 세상을 구경하는데, 악어가 지치고(/늙어) 더는 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멈추어 소년과 그 소년의 아이들이 계속 살 수 있게 섬으로 변한다”

가 티모르 섬 탄생의 이야기다.

티모르 섬 모양 역시, 악어 모양을 닮았다고들 한다. 실제로 악어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악어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인천에서 발리까지 7시간 정도. 발리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 날 2시간 정도를 날아 악어섬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역시 낯설었다. 죄다 불편하고, 어디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익숙한 것도 보이고, 익숙해지는 것들도 생겼다. 어디가나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기 마련. 이 곳도 그렇다. 난 적응을 제법 잘 했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다. 

일은 보람 있었지만, 현타도 많이 왔다. 문서와 공부를 통해 배워왔던 개발협력의 이론과 숫자, 업적들의 이면과 현장을 보니, 당연히 실망감과 한계가 왔다. 거기에서 내 입장과 역할을 새로 세워야 하는데, 그것을 아직 못해서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 더 쉴지도 모른다. 


일을 비롯 전반적으로, 예상했던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많은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반응하고 바뀌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이런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들을 새로이 느꼈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덩그러니 가져다 놓는 것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해 볼 만한 모험이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들여다 볼 기회와, 이에 대해서 다시 곰씹어 볼 시간이 무척 많았다. 오락과 소비 거리가 없으니, 내 시간은 오로지 내가 만들고 가꿔 나가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그런지 동티모르에서의 삶이, 그 이전의 나에게 익숙해졌던 것을 많이 바꿨다. '나는 자연스러운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했었다가, '나는 절대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포르투갈 남자를 만나 아이를 둘 낳고 함께 가족을 꾸린 것은 큰 변화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 악어섬은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일하게 된 NGO에서 제일 처음 만난 현지인 직원분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남자분이셨다. J씨는 15살 때 당시 식민지 세력인 인도네시아 주둔군에 어쩌다 잡혀 군인들 잔심부름을 하면서 1년 동안 갇혀 지냈다고 한다. (심한 일들도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J씨도 그냥 '힘들었다'라고만 하셨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떻게 탈출하셨다고. 이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독립군을 위한 통신병과 연락병 역할을 맡았고, UN이 관리감독한 독립결정투표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투표 운동을 하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독립 결정 이후 인도네시아군이 철수하게 된다. 이 때는 J씨를 비롯, 많은 주민들이 다 인근 산이며 숲으로 피난을 떠났다. 인도네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온갖 파괴, 방화와 폭력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 

나와 한 살 차이가 나는 이 사람은, 어린 나이에 적군에 잡히고 스파이활동과 독립군 활동을 하고, 퇴각하는 적군에 가축과 재산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한국 NGO를 만난 연으로 지역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외국생활, 도시 직장인으로 살다가 여기로 흘러와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느냐가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면서도, 마음을 찌를 때가 꽤 많다. 오래전 어디선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책임” 이란 구절을 어렴풋이 읽은 기억이 난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서로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삶에 관여하고 관계할 수 밖에 없다는 맥락의 글로 기억한다. 동티모르에 있으면서, 그 책임이라는 것이 어느 수준이나 범위까지인지,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그런 책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단상들, 그리고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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