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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May 21. 2021

일의 보람과 현타 - 미니도서관, HW와 SW는 같이!

'모리스디페렌테'(다른삶)09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내가 일했던 NGO에서 근 1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해왔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미니도서관' -  시내 중심가로부터 떨어져 있는 탓에, 책에 대한 접근성이 좋지 않은 초등학교에 책장과 책을 지원, 아이들이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미니도서관(꿈 도서관) 프로젝트'의 취지다.


2012년까지 로스팔로스 지역 내 초등학교 9개에, '꿈 도서관'이라는 미니도서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말이 도서관이지 사실상 책장 2개 정도를 교실 뒤 혹은 교무실 뒤에 놓고, 도서를 200권 정도 비치하는 것이 전부다. 별도의 도서관 건물을 짓는 것은 초기엔 고려하지 않았다. 재정적으로도 부담일뿐더러, 별도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한 기본 사서라든가, 최소한의 관리시스템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타자가 아닌) 지역 운영 주체와의 협력을 전제로 시작해야 한다. 당연히 사서 급여를 우리가 계속 줄 수도 없고, 도서관 역시 외부단체인 우리가 계속 관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현지화하려면, 주 정부나 교육부가 책임지고 사서 채용이나 도서관 운영에 대한 관리나, 교육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학교 교사도 정부에서 제때 급여를 못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5년 현재, 교과서도 전 학년에 보급을 못 하고 있다. 학교 건물은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무너지고, 바닥이 깨지고, 화장실이 제대로 없는 곳이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근사하고 멋진 도서관 건물만 버젓이 짓는다고 쳐도, 누가 관리하고 활성화해서 “살아있는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십중팔구는 열쇠를 채워 놓은 채 먼지만 쌓여가는 죽은 공간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일단 소규모로 책을 놓고, 책에 친숙해지는 단계부터 시작하자! 

한 것이 이 “미니 도서관”인데, 모니터링을 다녀 보니 영 쉽지 않다. 

교무실이나 교실 공간 한편에 책장을 놓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학교에 학생들은 많지, 실제로 원활하게 책을 골라 보는 것이 어렵다. 학교에선 책의 분실과 훼손을 우려해, 평소엔 책장을 꽁꽁 잠가 놓거나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게 한다. 책을 “공개”할 책임을 지닌 교사들은 초반에만 어느 정도 하다가 나중에는 시들해진다. 교사분들도 잔무가 많고,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다 보니 귀찮아지는 것이다. 공간의 문제와, 관리의 문제가 더해져서 먼지만 쌓인 채 한편에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참 허하다.

우리가 기증한 책 외, 유네스코에서 기증한 책들도 무지 쌓여 있는데, 다 같은 처지다. 코이카에서 보급한 학교 교과서 역시 박스채로 고스란히 먼지만 쌓여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 다했다. 책이라는 것이 아직 많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겠고, 잘못해서 행여나 없어지고 상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애지중지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읽힘으로 살아나는 것이 책인데, 그냥 먼지 쌓인 장식품이 된 책들을 보니 마음이 쓰리다.  


단순히 도서관 건물을 짓고, 책을 기증하는 것만으로 독서가 되고, 책을 읽는 분위기가 생기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제 기능을 가지고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도서관이나 책 자체는 필수적인 기본이다. 하지만 여러 복합적인 방법과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으면, 없으니만 못한 죽은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꿈도서관 초등학교 중 한 군데.  위 사진이 학교. 아래는 교무실 한 귀퉁이의 책장과 책들. 그나마 가끔 학생들이 책을 읽었던 곳.


그래서 우리가 다음에 기획한 것이, 지역 청소년들이 직접 이끄는 “찾아가는 독서 장려 프로그램”이었다. 고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2달 정도 교육을 해서, 이 친구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관련 독서활동을 하는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로 모집을 했고, 10명 내외의 소수였지만 꽤 알차게 꾸려 나갔었다. 더디 진행되었고, 워낙 소수로 진행된 탓에 이렇다 할 수치 실적은 고만고만했지만, 현지의 젊은 청소년들이 정말이지 꽤나 훌륭하게 끌고 나갔던 프로그램이어서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이 정도면 같이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이전 9개 꿈 도서관의 한계점을 어느 정도 극복해 보려고 했다. 조심스럽게, 조그맣더라도 별도의 도서관 공간을 마련해 보기로 한 것. 단, 시멘트나 벽돌, 페인트 등의 자재는 우리 단체가 대더라도, 공간을 건설하는 것은 주민들이 하는 것에 동의할 경우에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신들의 자녀들이 책을 읽고 지낼 공간이다, 자재나 책처럼 돈 드는 것은 우리가 내겠지만,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단체의 입장이었다. 소위 '돈 있는 외국인들'이 들어와 건물도 짓고, 책걸상도 놔주고, 책도 놔준다... 는 것도 가능할 수는 있다. 그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어떤 곳, 특별한 시기나 경우에는 그런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립한 지 근 20년, 일방적인 국제 사회의 원조에서 점점 더 벗어나고 있는 이곳 동티모르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일방적인 지원은 여러모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 이곳에 나와 있는 개발협력 주체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나도 여기 동의한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같이 해야지, 

'도서관이 도대체 뭐하는 덴가, 우리 애들이 저기서 책을 읽는다고, 그럼 이런 것도 좀 하면 좋겠네~'라고 이런저런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주인의식이니 책임의식이 괜히 공치사가 아니다. 


2개 초등학교에서 이런 방식을 도입했는데, 티틸라리는 놀랄 정도로 원활하게 잘 진행이 된 반면, 레우로는 처음부터 영 삐걱했더랬다. 공간을 따로 만드느냐, 학교 내 빈 공간을 쓰느냐 마느냐부터 말이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 빈 공간을 개조하기로 했다. 자재 예산이 많이 남은 관계로, 개조 공사를 지역 업체에게 맡겨 진행하는 대신 주민참여 부분은 페인트칠을 함께 하기로 했다. 한데 이마저도 무언가 불만이 나와, 담당자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울기도 하고… 결국 책임자인 내가 가서 단호하게 선을 긋고, 더 이상 불협화음은 안 냈으면 좋겠다, 원래 약속한 대로 이것은 주민과 우리 단체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다 등등... 안 되는 테툰어로 화도 내고, 어르고 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무사히 개관식을 하긴 했다. 다행히 이후에는 '찾아가는 독서 장려 프로그램'도 무사하게 몇 회를 진행했었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도 제법 책을 잘 읽어주고, 아이들과 어울렸고, 아이들은 책을 조심스럽게 들춰 보기도 하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신나 했었다. 


로스팔로스에서 그나마 상태가 좀 괜찮았던 학교 - 지붕도 벽도 새로 마련했었다. 그리고, 로스팔로스의 흔한 학교 가는 길 풍경!


2015년에서 6년이 흐른 지금, 이 미니도서관들은 어떻게 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6년 전, 머리 아파했던 문제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공용어인 테툰어로 된 책 자체는 여전히 많지 않고 책값이 비싸다. 얼마 되지 않은 테툰어 책, 포르투갈어 책, 영어 책 등을 딜리에서 힘들게 구매한다. 2015년 1월 당시, 동티모르에는 수도 딜리에 딱 3개의 서점이 있었다. 2021년 현재도 똑같다. 제일 큰 서점이, 보통 한국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편의점 크기 - 서점도 없지만, 책도 많이 없다.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대학생 전공 서적이나 어린이 책 몇십 종류가 거의 대부분이다. 다양하게, 아이들이 보기 좋은 책들을 잘 구매하고 싶은 데, 쉽지가 않다.

책은 그렇다 치고, 그때 다 같이 정성 들여 마련했던 좁은 공간과 몇 백 권의 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먼지만 쌓인 채 곱게곱게 박스에 담겨있을까? 아니면 너무 많이 봐서 진작에 다 낡아 버렸을까? 그 이후, 이 나라 교육부에서 책이나 도서관 지원에 돈을 좀 썼을까? (이 나라 매년 예산집행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게 슬프다...) 다른 국제기구나 원조단체에서라도 책이나 도서관을 지원하는 곳이 그 이후에라도 있었을까? 열심히 눈을 빛내면서 자원봉사했던 고등학생 친구들은 뭘 할까? 영국이나 한국으로 이주노동을 하러 갔을까, 아니면 그냥 보통 다수의 티모르 청년들처럼 실업자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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