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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Apr 15. 2021

일의 보람과 현타 - 돼지와 교육

'모리스디페렌테'(다른 삶) 06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개발협력 프로젝트의 모든 곳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주민 대상 교육'은, 현장에 들어가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곳 고유의 특색과 맥락과 맞닿기에, 매뉴얼에 쓰인 것 이상을 생각하게 된다. 


처음 로스팔로스에 갔을 때 (2013년 8월) 돼지 기르기에 관한 교육을 진행했다.

내가 일하던 단체서 2008년부터 실시해온 "가축 함께 기르기" 프로젝트는, 10여 명 내외의 여성을 한 그룹으로 조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주재료로 활용, 그룹 멤버들이 각자 축사를 짓도록 독려한다. (한국식의 큰 축사는 당연히 아니다. 로스팔로스 일반 가정에서 기르는 평균 5~10마리 사이의 돼지가 들어갈만한 반 울타리 -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축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축사 사용의 가장 큰 이점은 당연히 가축이 도난당하거나 실종될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돼지의 경우, 방목을 하게 되면 사람이 먹는 작물인 옥수수나 고구마, 기타 밭작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사람이 먹을 식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이웃 간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네 집 돼지가 우리 집 밭에 들어와서, 고구마를 다 먹었잖아?!"

"아니, 그게 우리 집 돼지라는 증거 있어?!" 

이런 경우가 실제로 일어난다. 

심한 경우, 서로의 가축을 죽이는 복수극?! 이 벌어질 때도 있다고!

축사가 있으면, 돼지가 출산할 때 안전하다 - 축사가 없으면, 본능에 의해, 출산 때 으쓱한 덤불 아래나 수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간다. 이럴 경우 당연히, 엄마 돼지와 새끼돼지 모두 취약한 상태이므로, 다른 짐승들한테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출산 시 발생할 수 있는 위급상황에 대해 취약하다.  

현지 주민들도 축사 사육이 이점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정부에서도 축사 이용을 독려한다. 주민들 역시 축사를 짓는 방법도 알고, 재료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그룹을 만들어 으쌰 으쌰 하지 않는 이상은, 축사 건축-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다. 


처음에는 이게 왜 이럴까 답답했는데, 지내면서 보다 보니, 나름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축사를 만들어 돼지를 가두어 놓고 기르게 되면, 돼지에게 삼시세끼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이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삼시세끼 돼지 먹이 챙기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줄 먹이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돼지는 음식찌꺼기 (계란 껍데기, 과일이나 야채 자투리, 사람 음식 남은 것 등), 옥수수, 카사바, 코코넛 등을 주로 먹는데, 이를 챙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상 사람이 먹을 것도 간당간당해지는 hungry season 에는 (로스팔로스 및 동티모르 시골에는, 옛날 우리나라의 보릿고개와 같은 시기가 있다. 지역마다, 혹은 그 해의 기후에 따라 좀 차이는 있는데, 보통 11월~2,3월이다) 돼지 먹이 챙기기가 쉽지 않다. 돼지가 먹는 옥수수, 카사바, 코코넛은 다 사람도 먹는 식량이기 때문이다. 보릿고개에는 당연히 사람 입이 먼저가 될 수밖에 없다.

해서 돼지를 그냥 풀어놓는다 - 그러다가 돼지가 없어질 수도 있고, 도난당할 수도 있고, 우리 밭이나 남의 밭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쨌거나 돼지가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먹이를 찾아먹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번식. 

방목을 하게 되면, 교미 문제도 알아서 해결된다. 여기는 교미가 큰 일인 것이, 발정기에 맞춰 수컷을 섭외? 하고, 또 합사를 시켜야 하는데, 돼지를 옮기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 (인공수정 없음!) 게다가 수컷은 2개월 전후, 아주 어릴 때, 거세시키는 것이 보통이므로 (그래야 지방 축적도 잘 되고, 사육관리가 쉽기 때문이란다) 교미할 수컷돼지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거세하지 않은 수컷돼지는 Adat 아닷 이라는 전통제례에서 도축하기에, 더더 귀하신 몸이다. 이러다 보니, 그냥 돼지를 방목하는 일이 흔하다. 산과 들로 나가, 알아서 야생돼지와 교미하게끔 하는 것.


로스팔로스의 흔한 마을 풍경. 산책하는 돼지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저러다가 남의 집 밭에 들어가면 큰 일이다 - 이웃끼리 의 상하는 것은 시간 문제!
들돼지와 집돼지 사이에 태어난 돼지. 새끼들은 역시 다 무척 귀엽다!


환경도 해치고, 구제역과 같은 집단 발병 시 대규모 도살을 하고, 돼지도 엄연한 생명인데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게 오로지 더 빠르게, 더 많이! 만을 생각하는 인간위주의 상업적 축산은 반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처럼 너무너무 자연친화적인 축산 역시, 냉정하게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이곳에서 돼지나 소는 집을 빼고는 제일 큰 자산으로, 한 가정의 식량이자, 단백질 급원이자, 돈이 필요할 때 팔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그에 비해 생산성이 너무 낮고, 가축 자체의 삶도 질병에 무척 취약하다 - 방목하면, 들돼지에게 병 옮아오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렇게 돼지 한 마리가 병 옮아오면, 한 마을 다른 돼지들에게도 병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 실제로 우기 초입, 돼지가 자주 아픈 시즌에는, 한마을 돼지가 전부 죽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다시 교육 얘기로 돌아가... 

축사를 각자 다 지은 후에는, 현지 관련 부서와 연계해 축산 교육과 백신 접종을 실시한다.

돼지를 건강하게 잘 기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백신 접종을 하는 편이 더 좋다. 발병률과 사망률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 백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술이 있어야 하고, 아직 그 여건이 자체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이곳에서는 다 수입을 해야 한다. 

교육을 가서 보니, 백신과 다른 가축용 약은 다 인도네시아산, 주사기는 스페인산이다. 비싸게 수입을 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실시하는 것처럼 별도 교육이 있을 경우엔, 사용법을 비교적 쉬운 구어/상용어로 습득할 수도 있지만, 아닐 경우, 인도네시아어나 영어로 설명서를 읽어야 하며, 가축 kg당 cm/ml라는 지시사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전 지식, 즉 도량형과 숫자, 기본 산수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제일 끝 단계, 즉, 수입품 (백신/약) 지원과 직접적인 사용 교육만 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가끔 다른 개도국에서 일했던 동료들에게 듣던 이야기대로,  그 이전 단계, 즉, 기초 산술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 될 것 같다. 일 자체의 막막함도 막막함이지만, 나에게 너무 당연해서, 그렇지 않은 타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좀 충격을 먹고, 왜 이렇게까지 세상이 다른 걸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끝도 없다...


2017년 12월 현재, 동티모르의 가축 백신은 정부가 공급과 투약을 공급하고 통제한다. 즉슨, 로스팔로스 시골 마을에서 자기 돼지에게 백신을 맞히고 싶은 주민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관할 농업 축산부 공무원에게 요청을 해야 한다. 문제는, 로스팔로스 일대를 관할하는 축산부 공무원은 현재 3명뿐이라는 것! 로스팔로스 농업 축산부에서 이동할 때, 가까운 마을은 편도 오토바이로 15~20분, 먼 곳은 1시간 30분까지도 걸린다. 해서, 개인별 백신 요청/접수보다는, 마을 이장을 통한 요청/접수가 이루어지는데, 이 절차 역시, 보통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는 마을로의 출장은, 공무원이 비공식적으로 "담뱃값" 혹은 "오토바이 주유비"를 요구하는 일이 으레 있다. (공무원만의 잘못은 아닌 것이, 공식 업무 출장의 경우에 주유비를 정부에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개인별이건 마을별이건, 백신 접종 요청이나 실제 실행, 모두 쉬운 게 아니다.


우리 단체 같은 경우, 교육 날짜를 한 달 정도 전에 미리 잡는다. 담당 공무원을 만나, 교육 목적과 내용, 주안점을 논의하고, 교육 제일 마지막에는 백신과 자가치료 실습과 연계를 하자는 식으로 끌어갔다. 합리적인 수준의 강사비와 주유비도 지급하고. 교육 2~3일간은 점심식사도 우리가 준비하고, 공책과 필기구도 준비해서, 최대한 교육자체에 집중될 수 있게 한다. 공무원도 한큐에 교육과 백신까지 할 수 있으니 좋고, 주민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단, 초반에는 "교육 참가비"를 요구하는 주민들도 있어서 좀 힘들었다.

동티모르가 독립하기 전, 인니 식민지 시절에는 교육에 참여할 시, 참가비를 주었다고!

처음에는 

"아니, 참여하는 사람이 참가비를 내는 것이 아니고, 교육해주는 곳에서 제발 교육을 들어주십사 하고 참가비를 주었다고?!" 하면서 이해가 안 갔는데,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이야기하길, 그곳에도 참가비를 "지급"해야지 교육을 들으러 오는 경우가 있단다. 교통이 불편하니, 교통비일 수도 있겠고, 교육에 참여하는 동안 생업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이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으리라. 또는 교육이 어떤 교육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머릿수를 채우기 위한 유인책일 수도 있으리라.

현지 교통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 교육장소가 마을에 있는 경우엔 마을서 하고, 교육장소가 마을 내 없으면, 우리 단체의 도서관을 쓰되, 우리 단체에서 당일날 오고 갈 수 있는 차량을 임차하는 것으로 했다. 그래도 교육참가비 문제는 쉽지 않아, 설득에 또 설득을 했다

"식민지 시절, 어떤 교육과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시절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교육은 들으면 여러분들의 가축 기르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 (여기엔 다 동의) 그리고 백신도 맞추고, 영양제 주사 놓기 실습도 하고, 자가치료도 실습을 한다. 필요한 내용이지 않느냐?! (다 동의) 교통비가 없어서 교육을 들으러 올 수 없다면, 우리가 교통비 지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차량도 임차하고, 점심도 제공하고, 공책과 필기구도 지원한다. 교육만 열심히 들으시면 된다. (동의)"

... 오래 걸렸다. 


이런 지난한 절차를 거쳐 며칠 간의 교육을 끝내고, 마침내 교육의 마지막 순서!

돼지에게 주사를 놓는 실습은 '축산 그룹' 멤버 아주머니들 몇 분께서 돌아가시면서 하셨다. 

첫 번째 돼지는 좀 피곤한지, 약간 쳐져 있는 애라서 아주 쉽게 주사를 놓았는데, 두 번째 돼지는 굉장하다. 무언가 전조를 느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 들어간 순간부터 완전 발광을 하는데 7kg 정도 되는 아직 아기 돼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괴력을 낸다. 그리고 정말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데 가까이서 처음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아주머니 두 분이서 돼지를 꽈악 잡은 후, 한 분이 주사를 놓는 데 성공!

넘치는 괴력으로 백신까지 맞았으니 진짜 한 300kg까지는 살이 찌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는 돼지로 살았으면 좋겠다. 

돼지를 팔면, 그 돈은 어디다 써요라고 물어보면, 보통은 대부분 애들한테 든단다. 로스팔로스 마을은 5명 이상 다자녀 가구가 대부분이니 - 우리 현지인 직원분들 역시 자녀가 평균 8명이다- 애들 학비, 애들 옷, 공책 등등만 해도 큰 일이다, 일!


로스팔로스의 흔한 마을 풍경

 


어떻게 하면, 자연도 병들지 않고, 돼지도 아프지 않고, 먹을 거 잘 먹고 건강하게 살고, 사람도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누리면서 공존할 수 있을까. 의 문제는 어렵다. 

개도국에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고, 과도한 소비와 과도한 생산,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하는 "풍족한 곳"에서의 패턴도 바뀔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분야에서는, 항상 당연히 전자에 초점을 맞추는데, 후자 역시 동전의 다른 면이라고 생각한다. 

죄책감과 연민 베이스가 아닌, 현명한 공존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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