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환상의 거울로 가득한 방, 페르난두 페수아 02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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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속의 일상 — 고독과 창작
페수아는 결혼하지 않았고, 낮에는 사무직을 전전하며 밤에는 시를 썼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고, 그 평범한 리스본의 풍경은 그의 문학적 배경이 되었다.
“Há metafísica bastante em não pensar em nada.”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데에도 충분한 형이상학이 있다.”
그의 일상은 사유였고, 고독은 창작의 조건이었다.
그러던 와중, 1934년, 그의 시집 '멘사젬'Mensagem (message) 이 출간되었다. 그가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포르투갈어 시집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포르투갈의 역사적 인물들 (항해왕 엔리크, 바스쿠 다 가마, 세바스티앙 왕 등)을 소환하며, '영적 부활'과 '국가의 내적 비전'을 탐구한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찬미하지만,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 신화적이고 영적인 비전, '내면의 제국'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이 후대 연구자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당시 초창기였던 살라자르 독재 정권은 이를 '국가 재건의 상징', '포르투갈의 부흥을 예언한 민족시'로 왜곡하며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포장해 버렸다. 심지어 '국가선전부'Secretariado de Propaganda Nacional (정부 부서 이름 좀 보소! 누가 봐도 독재국가형 부서!)가 주관한 문학상에서 상('Antero de Quental Prize')까지 받아버렸다. 사실상 체제의 공식 인정을 받은 첫 작품이 된 셈이다.
페수아는 상을 받은 뒤에도 공식적인 수상 소감이나 감사 인사조차 남기지 않았다. 대신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Receberam a minha Mensagem como um poema nacionalista. Que ironia!”
그들이 내 『멘사젬』을 국가주의적 시로 받아들이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 Carta a Adolfo Casais Monteiro, dezembro de 1934, Arquivo Pessoa
“Não sou patriota no sentido que eles desejam. Sou patriota no sentido que eles não entendem.”
나는 그들이 바라는 의미의 애국자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의미의 애국자다.
- Carta a Adolfo Casais Monteiro, 1935
페수아는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사이에 여러 정치 에세이를 썼는데, 여기서 당시의 독재적 분위기를
'복종의 거짓된 종교'pseudo-religião da obediência (A Nova República, 1928),
'(살라자르 체제인)Estado Novo는 자유로운 정신이 바라는 것의 정반대'O Estado Novo é o contrário do que um espírito livre deseja. (Sobre o fascismo, o comunismo e a ditadura, 1933)
라고 비판한다. 살라자르 정권이 아직 문인이나 지식인을 본격적으로 검열하기 전이고 (Estado Novo는 헌법 제정으로 1933년 확립), 페수아는 1935년 사망했으니,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떤 탄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트렁크 속의 문학 — 생전의 무명과 사후의 폭발
페수아는 1935년 4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생전에 출판한 포르투갈어 시집은 단 한 권뿐이었지만, 사후 그의 집에서 발견된 트렁크Arca 하나가 문학사의 균형을 바꾼다. 그 안에는 2만 5천 장이 넘는 원고가 들어 있었다. 대부분 미완성이었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Escrevo por não ter nada a fazer no mundo: sobrei e não há lugar para mim na terra dos homens.”
“나는 세상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나는 남겨진 자이며, 인간들의 땅엔 나의 자리가 없다.”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부적응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그 현실을 넘어서는 방식이었다.
‘불안의 서’ — 자아의 해체, 문학의 실험실
'불안의 서' Livro do Desassossego는 그의 가장 유명한 미완성 유고다. 그는 이 책의 저자로 ‘베르나르두 수아레스Bernardo Soares’라는 반(半)헤테로님을 설정했다. 이 작품은 줄거리도, 사건도, 인물도 없다. 대신 끝없는 내면의 기록만이 있다 - 도시의 밤, 피로한 노동자의 생각, 허무, 자의식, 꿈, 현실에 대한 무력감 같은 것들이 조각조각 나열된 내면의 지도.
“Sinto-me múltiplo. Sou como um quarto com inúmeros espelhos fantásticos.”
“나는 복수의 존재로 느껴진다. 나는 수많은 환상의 거울로 가득한 방과 같다.”
...
“Tudo quanto vive é fragmentário.”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조각난 것이다.”
나름 세계문학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던 젊은 시절, 읽으려고 하다가 덮은 책 들 중 하나, '불안의 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 기억 속으로 들어간 프루스트와, 인간 의식의 혼돈과 언어의 한계를 밀어붙인 조이스와 더불어 인지적 부하을 크게 주었던 책입니다. 읽었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잘 모르겠는...
'내 타입이 아닌 책'이었지만, 읽으려고 했던 이유는 페이지를 넘기다가 생각할 만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문장인지는 잊어버렸는데, 한 문장에 복잡하고 많은 사고를 담아냈다는 것이 와닿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문장단위로 보면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지고 공감이 되는데, 그걸 모아놓은 책은... 펼치면 “이게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하며 길을 잃었죠.
지금은 그냥 마음을 비웠습니다. 어차피 일관된 서사가 없는 것 (혹은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생각날 때 한 두 페이지씩 읽으면 되지 하면서 두고 가끔 들춰보고 있습니다. 완성된 서사나 해답보다는 질문과 흔들림 그 자체, '조각난 생각들의 창고'라고 생각하고 생각나면 한 두쪽씩~ 멈추게 하는 문장을 만나면 생각하고, 다시 넘어가고, 덮고... 또다시 되풀이. '이해해야 하는 책’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접근하고 있죠. (그래서 자주 못 (안) 읽...)
페수아의 세계에서 ‘나는 나’가 아니다. 그는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낯선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시로 기록했다. 그의 문학은 ‘정체성의 분열’을 ‘표현의 자유’로 바꾼 시도였다. 그의 글도, 그의 정체성도, 심지어 그의 시대의 리스본도 다 불완전하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독자는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파편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페수아 이후의 리스본 — 문학적 아이콘
오늘날의 리스본은 페수아의 도시다. 그의 동상 앞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고, “Pessoa Route”라 불리는 길에는 그가 살았던 집, 일했던 사무실, 카페들이 이어진다. 그의 유해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다. 그 옆에는 까몽이스와 같은 포르투갈 문학의 별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
페르난두 페수아는 읽기 어렵다. 하지만 읽는 이를 붙잡는 힘은 강렬하다. 그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다른 나’를 드러내고, 그것이 얼마나 고독하면서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Tudo vale a pena se a alma não é pequena.”
“영혼이 작지 않다면, 모든 것은 가치 있다.”
...
“A ironia é o primeiro indício de que a consciência se tornou consciente.”
"아이러니는 의식이 의식이 된 첫 징후다"
“Passa tudo isso, e nada de tudo isso me diz nada, tudo é alheio ao meu destino, alheio, até, ao destino próprio…”
“모든 것이 지나가고,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나의 운명에서, 나의 고유한 운명에서조차 낯설다…”
그의 문장은 리스본의 바람처럼, 오늘도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몇 명의 나인가?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가 존재하나?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는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