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켈이 말하는 에보라
라켈은 57세의 활달하고 눈웃음이 매력적인 여성이다.
에보라Évora 남서쪽 작은 마을인 산티아고두까셍 Santiago do Cacém에서 태어났는데, 고성이 있는 바닷가 근처, 오래된 로마 유적이 아직 남아있는 작고 매력적인 마을이라고.
세투발에서 대학을 다녔고, 에보라에서 5년, 이후 스페인과 영국에서 공부를 계속한 후, 에보라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에보라 대학은, 코임브라 대학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2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16세기에 예수회가 세운 공립 대학이다.
현재 에보라에 29년째 거주 중.
에보라를 너무 사랑하고, 최고로 살기 좋은 곳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에보라만큼이나 음식과 와인도 사랑하는데, 음식과 레스토랑 추천해주세요라는 말에 온 몸과 마음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말하는 라켈도, 듣는 나도, 10분쯤 지난 후에 침이 고였으나, 먹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참 지난 후에야 잠정 중단되었다.
에보라, 음식과 와인뿐 아니라, 자신의 일도 매우 좋아한다.
“매년 젊은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오니, 나는 그때마다 그 나이로 돌아가는 기분이야. 젊다는 것은 spirit 혹은 에너지의 문제거든. 마음을 열면 그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거야. 나는 대학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좋아”라고 활짝 웃는데, 덩달아 웃게 된다. 라켈의 에너지는 아주 긍정적이고, 밝고, 전염이 잘 되는 에너지다.
에보라에서 정말 오래 사셨네요. 에보라는 어떤 곳인가요?
너무 좋은 곳이야. 조용하고 치안이 좋지.
로마시대에 토대를 세운 도시이고,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또 음식 좋지, 와인 좋지. 이 지역에 훌륭한 와인메이커가 많아.
중심가 자체는 아주 작아서, 그냥 걸어 다니면서 다 볼 수 있지. 도시를 둘러싼 성벽도 정말 멋지고. 내가 사는 곳에서 대학까지는 차로 5분, 걸어서도 10~15분 정도 걸리는데, 학교, 슈퍼마켓 등등, 접근성이 다 좋아.
에보라는 수도인 리스본, 휴양지인 알가르브, 스페인에서 다 가까워.
삶의 질 – 바로 그게 에보라에서 내가 느끼는 거야.
오래된 것이 잘 보존되어 있고, 좋은 음식과 와인이 있고. 기후 좋고. 적당한 규모의 도시여서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고.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다 개방적이고 친절해. 물론 에보라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살아온 오래된 가문들은 좀 보수적일 때도 있지만.
또 대학이 있기 때문에, 젊은 느낌도 있어. 오래된 도시이긴 하지만, 활기찬 느낌이 있지.
작은 도시지만, 문화적으로 풍부한 곳이야.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소규모이고,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 정말이지 에보라엔 필요한 것이 모두 다 있다니깐, 내 기준에서는 말이야.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니셔티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하는 측면이 있어. 대학이 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지. 콘서트 개최도 활발하고, 연극도 많고, 문화적 기회가 풍부해. 이웃 도시인 베자나 포르트알레그레도 도시 규모 면에서나, 행사나 이벤트 여부는 에보라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에보라는 작거나 크거나 모든 측면에서 계속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도시야. 베자나 포르트알레그레도 살기 좋지만, 좀 더 고유의 특색이 없달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에보라의 오래된 역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또, 에보라에 관광객들이 많다는 것도 작용할 테고.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계속 오니깐, 그에 맞춰 어떤 문화, 관광적 서비스나 상품을 기획하려는 요인도 있을 거야.
사람들은 어떻냐고?
에보라가 위치한, 알란테주 지역은 포르투갈에서도 가난한 지역이었어. 이건 알란테주 전통 음식만 봐도 알 수 있어. 음식이 아주 간소하거든 - 그냥 빵, 올리브 오일, 허브, 계란 한 두 개 정도를 쓰는 음식들이 많아. 왜냐하면 더 이상의 재료가 뭐가 없거든. 가난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물물교환 방식이랄까. 나는 치즈를 생산하는데, 당신은 닭이 있으니 바꿉시다 이런 거지. 일종의 공동체적인 생활방식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봐.
내가 있는 대학도 그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자선바자회라든가 모금이 자발적으로 활발히 많이 이루어지는 편이야.
처음에는 여기 사람들이 좀 부끄러워하거나 내성적이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개방적이야.
상대적으로 북쪽 사람들은 좀 더 부유하고, 근면하고, 경쟁적이고,
알란테주 사람들은 좀 더 여유가 있고, 친근하지.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지, 당연히!
사실, 포르투갈에는 알란테주 사람들을 소재로 한 유머가 정말 많아, 너무너무 여유가 넘치고 한가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재미난 농담거리로 만들지. 아하하하하. 심지어 알란테주 사람들이 셀프디스 유머를 만들고 즐겨. 내 생각에 이건 아주 좋은 거야. 스스로에 대해 편하게 느끼니깐 가능한 거거든.
에보라에 갔을 때,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을 보고 궁금했던 적이 많았어요, 사실.
이렇게 오래되어 보이는 집에도 정말 사람이 살까 하면서요. 에보라처럼 로마시대, 아랍 시대, 유럽의 중세 근대를 다 아우르는 오래된 시간의 화석층이 그대로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도 궁금했구요.
아하하하하. 에보라의 수도교를 본 적이 있니?
8~9km 정도 되는데, 까누 가Rua do Cano에 가면 잘 볼 수 있어.
수도교 중, 시내에 있는 구간에는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어. 아주 작은 집인데, 문, 창문, 있을 건 다 있지.
500년 전 만든 다리에, 현대인이 들어가 사는 것이지. 에보라는 그런 곳이야.
한편, 무어인들의 흔적은 색깔이야. 아주 하얀색으로 칠해진 집들, 포르투갈 남부에서 볼 수 있는 눈부시게 하얀 집들은 무어인들의 유산이야.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에보라나 다른 소도시도 마찬가지만, 어떤 장소를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거야. 스마트폰, 지도, 가이드북 없이 그냥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지. 걸어 다니면서 오래된 흔적들, 그 분위기를 즐기는 거지.
에보라처럼 기원 전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도시, 이렇게 오래된 흔적이 있는 곳들은 특히 더 그래 – 그냥 편하게, 어디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걸어 다니는 거지.
에보라의 관광객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알고 있어요. 실제로 제가 올해 갔을 때, 작년에 갔을 때, 2년 전에 갔을 때, 눈으로 보이는 차이가 벌써 크더라구요. 지역 주민 입장에서 외부 관광객인 증가하는 것은 어떤가요? 환영하는 입장이 더 큰 지, 아니면 좀 불편한지요?
확실히 관광객이 많이 늘었어. 심지어 수업시간에 관광객이 교실로 쳐들어오는 경우도 있지. 에보라 대학은 오래된 곳이고, 볼 것도 많아서 관광객들이 티켓을 사고 들어와 구경을 하는데,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다가, 수업하는 교실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 다행히 많지는 않지만!
물론 이런 경우는 짜증이 나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수준이라고 봐, 아직까지는 말이야. 그리고 주민들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관광객 증가는 생활의 불편이나 소음 등과 자연스레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으니깐. 아직까진 크게 불편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해.
아마 관광객 추천 코스를 좀 다양화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지금은 코스가 다 거기서 거기거든. 다이애나 신전, 올드타운, 뼈성당 일대만 도는데, 카누 로나 좀 외곽으로 벗어나 보면 또 좋은 것, 볼 만한 것이 많거든. 관광객 코스를 좀 다양화하면 좋을 거야. 분산화시키는 거지. 관광객도 좋고, 주민도 좋게.
참, 에보라에 찾아오는 관광객들 중 중국인 단체관광객도 증가 추세야. 중국 단체 관광객들은 보통 마드리드에서 출발해서, 에보라에 잠깐 정차하고, 리스본으로 가지. 내가 다니는 수영장 가는 길에 중국인 단체관광버스들을 자주 봐. 몇 년 전에는 그냥 에보라에 머물지 않고 갔는데, 요즘에는 하룻밤을 에보라에서 묵더라고. 이전에는 숙박까지는 하지 않고, 그냥 몇몇 관광지에만 들려서 사진을 찍고 후딱 떠났거든. 우리 과 석사 과정 학생들이 조사한 데이터를 봤는데, 관광객이 에보라에 투숙하는 투숙 박수가 늘고 있어. 아주 큰 증가는 아니지만, 0~1박 수준에서, 1~2박 수준으로 늘고 있지. 관광객들이 좀 더 에보라에 머물면서, 더 보려고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브라질 관광객들이 많고, 요즘에는 프랑스 관광객도 좀 보여. 한국인은 잘 모르겠네. 아, 그리고 와인 관광과 와인 생산 및 판매량도 늘고 있어.
수업시간까지 들어오다니, 매너 없는 관광객이네요!
대학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포르투갈의 대학과 대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상황이 어떤가요? 아마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겠지만, 한국에서는 대학 졸업 후에 직업을 구하는 것인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야. 포르투갈에서는 졸업 후에, 구직 때문에 리스본으로 들 많이 가지. 해외로도 나가고. 당연히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 중에서도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해외로 많이 나가.
그런데 전공별로 좀 차이가 있어. 예를 들어, 현재 에보라에는 Technology Park가 있어. 다양한 기업이 입주하고 있는데, 로봇공학, 정보공학 분야 위주야. 이쪽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여기서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지. 농업도 마찬가지야. 알란테주 지역에는 알케바 호수 덕에, 농업분야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생산성 확대를 위한 R&D라든가, 와인 생산, 올리브,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넛트류 생산 분야의 밸류체인 연구라든가... 농업 관련 분야 기업들이 많이 투자를 하는 편이고, 따라서 구직 기회도 많아.
어학분야는 대체적으로 구직이 좀 힘들지.
구직도 구직이지만,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구직을 하더라도 아주 낮은 수준의 급여를 감수해야 한다는 거야. 전반적으로 급여 수준이 무척 낮아. 내 생각엔 불공평할 정도야, 학생들이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말이지. 학생들이 부모님과 살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어.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와 비교해 보면, 현재와 달랐어. 그때는 이 정도로 수준이 낮지 않았지. 과거에는 석박사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좀 더 학문적 호기심에서 기인한 편이었다고 봐. 지금처럼 좀 더 좋은 스펙을 위한 것이라긴 보단 말이지. 그만큼 경쟁이 심해지고,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거지.
학자금?
포르투갈에는 국립/공립 차원의 대학 학비 대출은 없어. 개인적으로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말이야. 학비는 대략 공립대학은 연 1,000유로 정도야. 사립은 월 800유로 수준이야, 학교별로 좀 차이는 있지만 말이야.
고용주들은 공립대 졸업생들을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공립대에는 입학사정기준이 있고, 학사관리가 좀 더 엄격한 편이거든. 공립대 교수들 역시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하는 편이야, 물론 전반적으로 그렇단 이야기고, 개인별 차이는 당연히 있지.
학생들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지난 10년간 대학 R&D 펀딩이 대규모로 삭감되었어. 경제위기 탓이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라든가 기초 연구 분야에서 예산이 다 삭감되었어. 지금은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야. 3년 내에는 차이를 모르겠지만, 10년 장기로 보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라고 봐.
그리고 공립대학교의 교수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나이가 많아. 40세 이하 교수가 잘 없어. 다수가 5~60대, 은퇴에 가까운 교수가 많아. 새로운 아이디어, 창의, 혁신을 하려면, 젊은 피가 수혈될 필요가 있다고 봐. 매년 그 나물에 그 밥인 격이랄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동기부여도 힘들어지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다른 학교, 다른 지역, 다른 경험,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해. 공립대학에선 경제위기로 이런 부분이 그냥 멈추고, 나와 내 동료들의 급여도 굉장히 많이 삭감되었지.
이처럼 경제위기로 공공분야나,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는 많은 출혈이 있었지만, 정치인들은 아니라고 봐.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별로 손해보지 않고 굴러가는 것 같아.
정치가의 본모습, 정치가에 대한 인식은 어딜 가나 비슷하네요. 슬프게도, 한국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것은, 날씨, 안전함, 음식.
특히 음식!!! 아하하하. 그리고 와인.
포르투갈이 전반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신경 쓰는 노력도 좋아. 에너지를 좀 더 친환경적으로 하려는 것, 쓰레기나 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하려는 것, 이런 부분은 아주 중요해.
싫어하는 것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시간 약속에 너무 관대한 것. 약속 시간을 잘 안 지켜. 9시라고 미팅을 잡으면,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 “9시에 내가 가면 아무도 안 오고, 나만 제시간에 갈 걸. 그러니 천천히 가지 뭐”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 나는 그게 싫어. 매년 세금신고 기간이 있는데, 어차피 나중에 (사람들이 많이 안 하고 막판에 몰리기에) 한 달 연장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기한에 맞춰 안 해. 이런 부분이 꽤 흔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예컨대 친구들을 저녁에 초대하면서, 8시라고 약속을 하면, 9시에야 다들 도착하는 거지. 이런 경향이 꽤 있어. 물론 수업시간은 다르지만 말야, 다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