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통영을 안 갑니다

무지와 두려움 사이/희곡

by 걸침

무대 오른쪽에 소파가 하나 놓여있다.

조명 들어오면 60대의 흰머리를 한 여인이 느긋하게 앉아 미국에 있는 친척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여인: 어? 언니, 오랜만이유. 잘 지내시고?

(사이)

다른게 아니고 이번에 우리집 이 사람 생일 겸 해서 바람 좀 쐬고 오려는데, 통영 집 누가 안쓰면....

(사이)

그래? 잘 됐네. 그럼 우리가 며칠 쓸게. 매번 고마워요.

(사이)

어, 괜찮아. 좀 닦고 치우면 되지 뭐. 보일러 기름은 지난번에 채워 넣었으니까 괜찮을 거고.

(사이)

날씨? 어. 통영은 파란 하늘이 생명인데, 이번엔 바람 불고 날씨는 안 좋대. 그런데 뭐 휴일이 껴있으니...

(사이)

아. 괜찮아. 허름하면 어때. 참. 지난번에도 선풍기 옮기려고 손잡이 드니까 플라스틱이 삭아서 그냥 떨어지긴 했지. 사람이 한참 안 살다 보면 그렇지 뭐.

(사이)

알았시유. 고마워유. 안녕........


무대 중앙 바닷가에 위치한 통영의 허름한 가옥. 열심히 걸레질하고 먼지 털어내고 두 부부가 바쁘게 움직인다. 대충 집안이 정리되자 둘이 식탁에 앉는다.


사내: 자. 고생했습니다. 끝이 없네 끝이.....

여인: 웬 먼지가 이렇게 많디야. 아이구 허리야.

사내: 괜찮아? 그러게 좀 살살하라 했잖아. 자, 아까 사 온 멍게 해서 한잔할까.


사내, 냉장고에서 포장된 멍게를 꺼내온다. 초고추장에 겨자를 풀어 옆에 놓는 다.


사내: 자, 한입.


여인, 사내의 팔을 밀치고 힐끔 쳐다본다.


여인: 왜 안하던 짓을 하시고 그려.


여인, 마지못해 한입을 받아 먹고나서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무엇을 들고 나온다.


사내: ?


여인, 보자기를 푸니 케이크이다.


사내: 웬 케이크, 이 여자가. 써푸라이주?

여인: 그래도 명색이 칠순 여행인데. 코로나 땜에 거창한 데서도 못하구. 이런 허름한데 와서 케이크 하난 잘라야지요.


사내: 참 내, 암튼 땡유. 우리 여왕님.....


여인이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시작한다. 사내 마지못해 따라 하지만 멋적다.


여인: 사랑하는 우리 낭군..... 생일 축하, 아니 칠순 축하......


사내가 무안한 표정으로 촛불을 끈다.


(암전)


사내: 어? 스위치!


둘이서 스위치를 찾느라 허공에 손을 젓고 난리다.


여인: 어? 여기 어디 있었는데?


여인, 겨우 스위치를 찾아 켜고 불이 들어오니 코앞에 있던 두 사람, 멋쩍게 쳐다 본다.


사내: 어? 자, 자. 한 잔 합시다. 아까 와인이....


둘이 와인 잔을 부딪힌다. 연결된 블루투스에서 가곡이 흘러나온다. 창틈으론 바람 소리가 윙윙대고 뒷산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이 들려온다.


조명 페이드아웃. 무대 중앙, 암전된 상태에서 약하게 페이드 인 되면 침대에 두 사람 누워있다.

(사이)


갑자기 쿵 하는 소리에 놀라 사내 일어나 앉는다. 여인은 곯아떨어져 있다.


사내: ?


다시 쿵 하더니 이번엔 큰 통이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 조심스럽게 여인을 흔들어 깨운다.


사내: 여보, 여보. 들려? 저 소리?

여인: (눈을 비비며) 왜? 무슨?


이때 다시 우르르하며 큰 쥐가 달려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 저 소리 말야! 저건 쥐도 아니구..무슨 두더지 같은 게....

여인: 그러게. 뭐지. 천장으로 들어왔나 보네. 아이고. 잠은 다 잤다.


소리가 간헐적으로 계속 나자, 사내 일어나 불을 켜고 무언가 천장을 두드릴 물건을 찾는다. 마침 옆에 약수통같이 생긴 빈 생수통이 보인다. 사내 생수통으로 천장을 두어 번 올려친다. 잠시 기다리니 조용하다가 다시 우르르 몰려다닌다. 다시 생수통으로 쿵쿵 세게 친다. 잠잠해진다.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자 조용히 침대에 눕는다. 그래도 불안하여 불은 끄지 못한다. 이때 집 뒤에서 다시 쿵 하는 소리가 난다. 아내, 놀라 다시 일어나 앉는다.


여인: 무슨 소리야. 이건 멧돼지 같은데?

사내: 그치? 아까보다 더 큰데? 야. 이놈들이 우리 왔다고 환영인사 거하게 하는 거 아냐?


천장에서 다시 두더지 발자국 같은 소리가 우르르 몰려다닌다. 사내 다시 생수통을 잡고 천장을 향해 점프를 한다.


사내: 쉬쉬.. 이 놈들... 이 나쁜 놈들, 잠 좀 자자.


사내, 통을 휘두르면서도 겁먹은 표정이 역력하다. 천장 어디선가의 구멍으로 떨어질지도 몰라 연신 천장을 살핀다. 사내 밤새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며 서서히 페이드아웃.


조명 페이드인 되면 햇살 밝은 아침이다.

여인 일어나 주방에 가서 가스를 키려고 몇 번 시도하나 켜지지 않는다.


여인: 여보, 가스 좀 봐줄래요?


사내, 눈 비비며 겨우 일어난다. 한잠 못 잔 얼굴이다.


사내: 어. 일어나셨어? 괜찮아? 아이고, 그 새끼덜 땜에.....


사내, 일어나, 가스통이 있는 곳을 찾는다. 부엌 안쪽에는 없어 뒷문을 겨우 밀고 나간다. 가스통을 열었다 닫았다 몇 번 하며 아내에게 묻는다.


사내: 나와요?

여인: 어! 나오네요. 됐어요. 땡유.


사내 기지개를 한번 펴더니 집과 바로 붙어있는 뒷산을 무심히 바라본다. 올려다보던 그가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라 거의 뒤로 자빠질 뻔 한다. 그러고는 천천히 사태를 파악한다. 그리고는 급한 목소리로 여인을 부른다.


사내: 여보, 여보, 이리 좀 나와봐!

여인: 왜요. 찌개 안치는 데....


뒷문으로 나온 여인,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다.


사내: 저기 봐 저기. 저기 언덕에 있는 저 나무,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져 있지, 그 가지가 우리 지붕에 걸쳐 있잖아. 저것이 사태의 원인이네. 저 반쯤 부러 진 가지가 어젯밤 그 세찬 바람에 휘둘리며 이 스레이트 지붕을 이리저리 쓸었던 거야. 아, 내, 참....

(사이)

우린 그걸 보고 쥐다, 두더지다, 멧돼지다 놀래서 그냥... 으......


조명 페이드아웃되면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 아래 사내가 서 있다


사내: (독백) 멧돼지..... 흐흐.. 그래요.

예전, 와이프랑 둘이 아프리카 여행을 했 을 때 생각이 나네요.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를 거쳐 빅토리아폭포를 가는데 정보 미숙으로 1박으로 가는 완전 시골버스를 타게 됐지요. 그 버스 참. 휴게소가 따로 없고 운전사가 오줌 마려우면 거기 서는 데가 휴게소죠. 운전사가 내리면 참았던 승객들이 우르르 따라 내려가고. 일을 마치고 버스에 먼저 올라와 밖을 내다보면 무릎 높이의 풀 사이로 까만 엉덩이, 흰 궁둥이... 지천이죠.


밤에 어느 동네에 도 착하였는데 아무 집에서나 자고 아침에 다시 오라는 거예요. 주변 몇 집을 둘러봤으나 도저히 잘만한 곳이 못되었고, 또 짐도 다시 꺼내서 내리고 옮기고 하려니... 우린 그냥 버스에 남기로 했죠. 맨 뒤쪽 두 줄의 의자에 반쯤의 자세로 누워 눈을 붙이기로 했죠.


한참 지났을까 컴컴한 밖에서 누가 갑자기 유리창을 두드리는 거예요. 소름이 쫙 끼쳤죠. 조금 있으니 커다란 막대기 같은 걸로 또 쿵쿵 거리고 쫙 무언가를 뿌리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때부터 멘붕이죠. 이제 죽었구나. 기사도 아무도 없는 외진 마을 버스속에 갇혀있는 두 사람. 이래서 여행 사고가 나는구나. 둘이 앞뒤 좌석을 사이로 손을 꼭 잡고 식은땀을 흘렸죠. 저 친구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나. 우리 짐을 뺏어 가면? 짐까진 좋은데 몸만 놔 뒀으면.... 온갖 안 좋은 의구심과 상상이 펼쳐지면서 한숨도 못 잤죠.


어쨌거나 비몽사몽간에 잠깐 눈을 붙였나본데 사람들이 버스에 타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제 살았구나 하 고 몸을 일으켰죠. 벌써 아침이더라고요. 밖에선 한 무리 아이들이 버스 기사와 얘기 중이고요. 그런데 그 들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어요. 긴 장대 같은데, 옆에 물 양동이도 있고.


순간 무언가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어요. 바로 저거였구나. 아...... 버스가 밤에 머물러있는 동안에 저 친구들이 버스 외부 청소를 한 것이었어요. 긴 막대에 달린 솔로 버스 천장을 닦으려니 쿵쿵 소리가 났고, 무언가 끼얹는 소리는 물 뿌리는 소리였구요. 쓸데없는 공포로 밤을 지새운 것이지요.

(사이)


그래요. 이번 통영 지붕사건도... 상황을 모르니 의심을 갖게 되고 의구심이 커지면 공포가 되는 거겠지요.

(사이)

우리 사람 사이도 그럴 까요. 상대를 모를 때 우리의 의심은 커지고 그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자라구요.


아니, 어떨까요? 우리 삶도....지나고 보면 젊었을 땐 왜 그렇게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는지.. 아니, 죽음이라는 것도 비슷할까요? 그것을 잘 모르니 공포심도? 왜 고전에 죽음에 대한 그런 비유가 있잖아요. 어느 시골 색시가 궁녀에 뽑혀가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고 안 가려고 했는데 궁에 들어간지 일 년후 집에 다니러 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암튼 통영 사건, 괜찮았어요.

내 속에 쓸데없는 걱정이나 염려가 자라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림자란 허상에 마음을 졸이는 건 아닌지. 아침이면 밝혀질 그 공포의 진실을..


어쨌든 그 뒤로 그 통영집은 통, 영.... 안가게 되네요..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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