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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은 흔히들 한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내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것 같지 않을 때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배운다는 것을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유아원에서 입학 전 부모님들을 모셔놓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곳 어린이들의 하루 생활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논다’라는 말을 제외하고 다른 말로 아이들의 행동을 서술해 보게 하였다고 한다. 학부모님들이 적어낸 종이에는 놀라운 말들이 씌어 있었다. 거기에는 ‘연구하다, 토론하다, 실험하다, 골똘히 생각하다, 배우다’ 등등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학습한다’의 모든 개념을 포함한 서술어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이들이 ‘놀고 있는’ 상태는 그 모든 학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이다. 그 설명회 덕분에 어른들이 강요하는 학습이 아닌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한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엔의 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놀이’를 어린이의 권리로 말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놀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먼저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친구들, 가족들이나 보호자들과 강한 유대감을 발전시킬 수 있다. 강한 유대감으로 인해 어린이들은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된 심리상태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학습능력 향상은 물론 행복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탐험하기, 감별하기, 협상하기, 상상하기, 위험을 받아들이기 등등은 놀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런 기능들은 배움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놀이를 통해 말하는 것을 관찰하고 듣고 따라 하면서 언어 발달이 도모된다. 말을 않고 조용히 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중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새로운 단어에 노출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놀이에서는 집중력 키우기, 순서를 지키거나 함께 나누는 것을 배우게 됨으로써 감정이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다. 결국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기보다 ‘놀아야만 배울 수 있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울던 아이도 돌아보게 하는 음악


어린이 교육에 있어서 음악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유아교육 수업시간에도 끊임없이 강조되었고, 실제 현장에서도 매 순간 경험할 수 있었다. 떼쓰고 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거나 모든 아이들이 한꺼번에 흥분한 상태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 음악은 늘 강력한 힘을 발휘했었다.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음치이거나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교수님들의 말씀에 힘입어 나도 엉터리 노래를 많이도 부르곤 했었다. 아이들이 나의 엉터리 노래를 알아차리지 못해서라기 보다 어른들보다 소리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알맹이를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좋다는 소리가 무엇인지 교육되고 고정된 관념으로 좋은 소리를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할 만큼 아이들은 노랫소리보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집중해주었다. 


유아원에 따라서는 음악 선생님을 따로 모셔 오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교육해 주던 한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악기를 들고 와서 쿵딱쿵딱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고, 음악을 틀고 여러 게임도 하고, 가만히 누워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음악을 접하게 해 주셨다. 특히 노래로 책을 읽어 주시던 모습은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선생님은 목소리가 워낙 좋고 노래도 아주 잘하시는 분이시라 마치 한 권의 책을 오페라나 뮤지컬로 듣는 것 같았다. 그것을 듣는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고, 끝난 후 자리를 뜨는 아이들 중 몇은 꼭 몇 소절씩 기억해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기존의 멜로디에 책 내용을 얹기도 하고 자신이 곡을 지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도 엉터리이긴 하지만 짧은 책을 읽을 때는 노래로 만들어서 읽어주곤 했는데 한 번 흥얼거린 멜로디는 기억을 못 해 매번 책 내용이 다른 멜로디에 얹히곤 했지만 그 반응은 늘 폭발적이었다고 기억된다. 


음악교육은 인지기능을 향상하고, 기억 체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도록 돕고, 언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감정조절 및 복잡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음악교육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중 특히 언어의 발달이나 사회성 발달은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언어와 음악을 배우는 것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같다고 한다. 즉,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음악을 언어로 받아들이고 이런 배움을 이용해서 언어를 디코딩해서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교육은 악기를 잘 다루거나 노래를 잘하는 아이를 육성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음악을 가까이 접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효과적인 학습을 위한 준비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표현하는 미술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주의 교육들, 예를 들면 여러 매체를 이용한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등은 아이들 놀이의 일상이다. 유아원에서는 이젤과 물감, 크레용이나 연필류는 테이블 위에 항상 비치되어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나 그곳에 와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 둔다. 어떤 아이들은 지나다니면서 이젤에 꽂혀있는 커다란 종이에 물감을 듬뿍 묻힌 붓을 들어 한 번 선을 씩 긋고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장시간 그곳에 서서 정성껏 무언가를 그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게 하면 정말이지 늘 놀라운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을 실천하던 한 유아원은 매우 감명 깊은 미술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 유아원에는 유명한 미술 테이블이 있다. 두꺼운 나무들을 이어 만든 것으로 크기가 우람한 둥근 테이블이었다. 영업을 그만둔 어느 술집에서 사용하던 테이블을 원장님께서 직접 트럭을 빌려 얻어 오셨다고 한다. 높은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인지 아이들이 그 테이블 앞에 서면 목이나 코쯤에 닿을 만큼 높은 높이였다. 아이들을 위해 발판을 여러 개 만들어 그 테이블에서 작업하는 아이들은 발판 위에 올라서서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들거나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각종 미술 도구며 공예용품들은 그 테이블 옆 선반에 다 올려져 있어서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꺼내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만 3, 4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너무나 어른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는 광경은 사실 놀라웠다. 운영 시스템이나 교육이 아이들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느냐를 실감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오전 시간이 끝나면 그 테이블은 문을 닫는다는 것이 그곳의 규칙이었다. 그런 규칙은 내가 그곳에 가기 훨씬 전부터 누구나 아는 그런 규칙이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리면 아이들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거나 다음 날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선생님들과 상의하곤 했다. 대부분은 내일까지 잘 보관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다음 날 그 아이가 여전히 흥미를 가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그 전날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었는지 환기시켜주곤 하였다. 그 작업을 계속하고 안 하고는 오로지 그 아이의 선택이었다. 


오후가 되면 센터가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오므로 미술작업을 완성할 시간이 없어서라는 것이 원장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젤이나 크레용은 여전히 다른 테이블에 펼쳐져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제나 가능했다. 혹자는 아이들의 작품 활동을 오전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미술교육에 제한을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규칙은 어른, 아이들 모두들 숙지하고 있었고, 너무나 원활히 잘 지켜졌을 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그것에 불만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오전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테이블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한 가지 특히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해리는 만 4세로 말수가 적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섬세한 아이였다. 어느 날 그 테이블에 종이를 가져와 펜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종이에는 선들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는데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주차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만들기 전 계획이라는 것을 종이에 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말하자면 설계도면을 만드는 것이었다. 


해리도 주차장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종이에 그린 것이다. 선들이 나란히 이어지는 것을 설명하면서 주차장으로 차가 지나는 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선을 가리키면서 지하와 2층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선들이 나열해 있었는데 그것이 차들이라는 설명이었다. 해리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지하, 지상, 그리고 2층까지 있는 주차장을 2차원적 평면에 그리려고 하니 그렇게나 많은 선들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차는 어디에 있냐, 어떻게 올라가나 등등을 물었고 해리는 그 종이를 들고 선을 따라가면서 신나게 설명을 했다. 솔직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공간을 해리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만들 거냐고 했더니 종이박스와 가위를 들고 와서 또 설명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그 건축물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기에 슬쩍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이르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지켜보니 종이박스를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구멍을 내고, 뜯어낸 종이를 다시 그 박스에 연결해 테이프로 붙이는 등 해리는 한참을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다.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는 완성된 주차장을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나는 일단 오랜 시간 열중하는 그의 모습을 칭찬해주면서 차분히 설명을 요구했다. 


보호자는 무작정 ‘와, 멋지다’라는 빈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알맹이가 없는 칭찬은 오히려 아이들의 자존감을 낮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혼 없이 감탄사를 난발하면서 하는 칭찬은 도대체 어느 구석이 멋지다는 것이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결국 저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던 똑같은 칭찬을 하는군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칭찬은 늘 구체적이어야 한다. 


내 물음에 해리는 원래의 계획서를 들고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2차원적 계획을 3차원으로 실현해낸 것이다. 나는 계획을 꼼꼼히 그린 그 과정을 칭찬해주고 가위질을 아주 잘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들어갈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해주자 그는 으쓱해하는 듯했다. 


오후에 해리 엄마가 들어섰을 때 해리와 엄마가 만나기 전 나는 재빨리 오늘 해리가 주차장을 만들었다는 귀띔을 해주었다. 가끔 아이들은 엄마에게 불쑥 그 날 만든 작품을 내밀면서 엄마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눈치가 빠른 그 엄마는 아이가 작품을 내밀자 고민하는 듯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조그만 차를 넣으면 어떨까 하고 운을 떼서 해리를 몹시 기쁘게 했다. 학부모와 교사의 공모 작전 순간이다. 


다음 날 나는 다양한 주차장 사진을 한쪽에 펼쳐놓고 작은 자동차들도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해리의 주차장에 대한 관심은 며칠간 계속되었는데 해리는 차가 빼곡히 들어선 주차장 타워 사진을 보고 흥분하면서 자신이 지난번 방문한 주차장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뉴질랜드 고등전문학교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잡지인 쿠푸는 미술교육은 아이들의 지적, 육체적, 사회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동시에 성장시킨다면서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맞는 미술교육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총체적인 발달을 가져오고 향후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미술교육은 흥미진진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주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 미술작업을 할 때 그 효과가 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 : 1945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레지오 에밀리아'라는 곳에서 시작된 유야교육을 말한다. 


뛰고 달리고 땀 뻘뻘


내가 일한 곳은 시드니 중심부여서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이 많은 편이었다. 교사들 회의에서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조금 더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서울에서 살았던 내 입장에서 볼 때 시드니 어린이들은 집 밖만 나오면 공원이 주변에 널려있어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뛰고 노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어릴 때 더 많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어린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방과 후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외부의 선생님을 모시고 다양한 체육 종목을 아이들이 접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농구, 배구, 테니스, 축구 등등 다양한 운동 종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선생님을 모셔왔다.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기술도 가르쳐 주셨고, 편을 나누어 게임도 하셨다. 다음 학기에는 어떤 운동 선생님을 모실 지를 결정하는데 어린이들의 의견이 반영되곤 했다. 


언젠가는 중국 탁구 선수를 하셨다는 분을 우리의 탁구 선생님으로 모신 적이 있다. 탁구에 대한 자부심이 몹시 강한 분으로 첫 시간에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고 탁구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지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먼저 탁구 게임의 룰도 설명하시고, 아이들을 줄을 세워놓으시고 한 명씩 공을 주면서 받아치게 하셨다. 공은 마음대로 받아 처지지 않고 가벼워 마구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종목들은 잘하든 못하든 바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에 비해 탁구는 연습 시간이 길었고 선생님은 다소 엄격하셨기에 성격이 급한 아이들은 짜증스러워했다. 탁구대가 3개나 있었기에 선생님의 감시가 가지 않는 곳에서는 공이 테이블을 벗어나든 말든 뛰어다니고 치느라 바쁜 광경이 연출되었으나 선생님이 지도하는 테이블에는 공을 치는 시간보다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에 탁구를 또 하면 어떻겠냐는 내 질문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반대를 했었다.


요가 선생님도 몇 번 모셨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요가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 처렁 생각되었는데 전문가는 달랐다. 요가 운동을 아이들이 잘 따라 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고, 아이들도 곧잘 따라 했다. 아이들은 역시 유연해서 동작들을 막힘없이 해냈다. 동작이 조금 복잡한 경우 서로 까르르 거리며 좋아하기도 했다. 요가 시간이 끝날 때쯤에는 가운데 촛불을 켜고 조용히 매트에 누워 눈을 감고 요가 호흡을 하도록 했다. 아주 잠시 조용한 듯하다가 실눈을 뜨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키득거리곤 했다. 몸을 꼬면서도 끝까지 누워있으려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힙합 댄스 시간도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에 맞춰 가벼운 댄스를 같이 한 후, 팀을 나누어 안무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안무 만드는 시간이 지나면 음악에 맞춰 조별로 같이 짠 안무를 전체 어린이들 앞에서 선보였다. 서너 명이 한 팀이 되어 안무를 짜는 모습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짠 안무를 선보일 때는 제목을 달거나 자신들의 몸으로 표현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과 15년의 통계에 의하면 호주 어린이 4명 중 한 명은 초과된 몸무게를 보이거나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중 하나다’라는 자조 섞인 말이 뉴스에도 나오는 등 비만이 사회적 문제였다. 공간이 부족한 아파트에 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 어린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전자게임 등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등을 비만의 책임 중 일부라고 지목하고 있었기에 학교나 센터에서는 좀 더 많은 운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말하고 듣기


듣기와 말하기 교육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언어는 생각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언어 교육은 향후 학교에서의 학습 성취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아이들의 언어에 즉각 반응을 보이고, 질문과 대답을 유도하고, 책을 많이 읽어주고 등등 언어 학습에 도움이 될만한 교사의 노력은 늘 일상이다. 단,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나는 아이들의 언어 학습에 장애가 되면 어떡하나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이 문제는 어린이 발달과정을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명쾌하게 해결해 주셨다. 영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언어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다문화사회에서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 주셨다. 그만큼 호주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가족의 경우 아이들의 영어 부족을 몹시 걱정하고 상담을 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가 부족한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다른 언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장점에 대해 설명한다. 잘 교육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성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생각을 하는 도구라고 했다. 호주에서 비영어권 어린이의 경우 가족이 쓰는 언어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막고 다른 언어를 강요하면 생각하는 길이 막힌다. 호주에서는 어린이의 지적 능력 영역을 ‘생각하는 어린이 thinking child'로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생각이라는 것은 지적 능력의 척도라는 뜻일 것이다.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 꼭 해당되는 말일 것 같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생각하는 힘은 모국어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기억할 만한 대목이다.


어린이들은 만 4세가 되면 어른들이 하는 말을 거의 다 이해한다고 한다. 다만 어른들이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 주제가 정치나 경제처럼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도 어른들이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어린이들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대충 설명하거나 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면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언어 수준에서 해석한 대로 이해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 흥미를 가지고 물어볼 때는 그것이 어른이 생각하기 좀 어려운 주제라고 하더라도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911 테러가 난 후 어느 날 한 건물에 비행기 모양을 페인트칠하는 것을 보던 어린이가 엄마에게 저 건물도 무너질 것이냐고 물었단다. 그 엄마는 처음엔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911 테러 당시 모습은 텔레비전만 틀면 여기저기서 반복되게 방송되었으니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만하다. 비행기가 건물에 그려진 것을 본 순간 건물과 비행기가 연결되면서 텔레비전에서 본 사건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이해한 것이었다. 이런 난해한 문제를 아이들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이들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도 어디선가 듣고 보는 것이 요즘 현실이니 만큼 아이들이 다른 오해를 하지 않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들은 정말 호기심이 많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해댈 때 당황스러운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나 알아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때는 역시 책이 최고이다.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고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한 후 아이들 손을 잡고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어린이 책은 정말 다양하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함께 적당한 책을 찾고 같이 읽으면서 호기심도 채워주고 언어 교육도 자연히 되는 것이다. 


또 어린이들이 바른 언어 습관을 갖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언어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언어를 한창 배우는 3,4세 어린이들은 말도 많고 그런 만큼 실수도 잦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복수를 표현할 때 흔히들 실수를 많이 했다. 예를 들면 '피트 feet'라고 해야 할 것을 복수 명사를 만드는 규칙을 그대로 적용해서 '풋츠 foots'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수를 할 때에는 아이의 말을 고쳐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아니지, 이렇게 말해야지’라고 하면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보호자가 말을 받아서 다시 말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응, 그랬구나. 네 발이 아팠다고?’하면서 슬쩍 맞는 말로 고쳐 말해준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굳이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말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는 데 대해 자존감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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