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MH Nov 01. 2020

호주 속 다른 문화

호주 속에는 너무나 많은 다른 문화들이 존재하지만 일본과 유대인 문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굳이 일본과 유대인 문화인 이유는 짧게나마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매우 체계적이고 적극적이다. 일본 문화원에서 각 학교나 유치원에 파견되어 일본문화를 알려주는 전문 교사도 있었고, 일본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호주로 실습을 나오기도 했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교육을 받고 현장에 오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다양한 경로가 있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우리 유아원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일본 어린이가 입학한 적이 있었다. 유아원에는 그 아이를 적응시킨다는 명목으로 일본인 교사가 얼마 간 파견되었다.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당시 원장 선생님은 일본인 어린이가 있는 센터를 위한 후원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일본인 교사를 몇 주간 오게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유아원에 오면 일본 아이만을 대상으로 일하지 않는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치고, 일본 책을 펴놓고 종이접기를 하고, 일본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일본 요리를 하기도 했다. 그 몇 주간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본 열풍이 일곤 했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일본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쉬울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번진 일본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감이 높아지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새로 입원한 어린이와 소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어린이가 처한 환경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일본 문화원으로서도 자신의 문화를 알리는 효과를 톡톡히 본다는 점에서 만족하리라 생각된다.  


아주 오래전 우리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잠시간 일본인 교사가 일본 문화원으로부터 파견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이 반 저 반 다니면서 일본의 문화를 일러 주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딸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날 일본인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읽어주셨다면서 그 내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일본에 큰 폭탄을 떨어뜨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너무 슬픈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그림책을 직접 보지 않아 자세한 사실은 모르지만 딸아이가 슬픈 표정으로 전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그림책에는 앞뒤 사실을 거두절미하고 미국이 폭탄을 터트린 것만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 같은 어린아이들도 너무 많이 죽었다고 강조하면서 모든 아이들의 동정을 샀다는 것이다. 우리 딸에게는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사실을 말해 줄 수 있었지만, 그 수업에 참여한 많은 어린이들은 아직도 일본 사람들만 전쟁의 피해자라고 기억하고 그때 느꼈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문화 침탈일 수 있겠다. 우리도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우리 문화를 알려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시드니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슈퍼마켓에는 유대인 음식인 '큐셔 음식'만 따로 모아둔 구역이 제법 크기까지 하다. 


나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는 한 유대인 유치원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었다. 교사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모두 유대인이었다. 만 3살과 4살의 아이들만 있는 유아원이었다. 유대인이어야 입원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나, 유대교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나는 실습생으로 그들의 운영체계와 교육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드니에 소재해 있는 곳으로 뉴사우스 웨일스 주정부의 교육 지침을 따르고 있었기에 특별히 시설이나 교육에 있어서 이질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 눈과 귀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던 말이 ‘나 이스라엘 다녀올게’라든지 ‘나 지금 이스라엘 가’하고 말하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실지로 이스라엘에 다녀온 아이는 없었다. 내게는 ‘언젠가는 꼭 이스라엘에 가고 말 거야’라고 말하는 듯 들렸다. 이스라엘이 어디 있는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곤 했다. 이스라엘은 아이들의 짐작을 넘어선 곳에 있었기에 오히려 옆 집에 있는 것처럼 가까운 곳이었다. 

 

근처 초등학교로 견학을 간 날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음 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였기에 학교에 대한 친숙도를 높이기 위해 반 어린이 전체가 공립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막상 가보니 그곳도 유대인을 위한 학교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있는 큰 학교였는데 학교 초입부터 우리 반 아이들이 큰 고등학생들과 아는 체를 하고 장난을 치고 하는 것에 난 너무 놀랐다. 그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사촌이고, 형이고, 누나고, 오빠들도 있었고 또 그 형제자매들의 친구인 학생들도 있었다. 마치 거대한 가족 같았다. 나중에 교사들에게 물어본 결과 몇몇 사립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유대인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태어나, 유대인들만 다니는 유아원으로, 다시 유대인만 다니는 초등,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 다민족 다문화사회에서 굳이 그렇게 자신들만 어울려 있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나는 솔직히 놀랐다. 

 

매주 금요일마다 안식일 의식을 행하는 것도 나의 눈에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안식일에 쓰이는 특별한 빵을 교사들이 부엌에서 직접 구웠다.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빵 만드는 일을 그들은 누구나 하는 쉬운 일로 인식하는 것이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밥을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기는 한 것이었다. 아주 두툼한 큰 꽈배기 모양의 빵을 가운데 두고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른 후 그 빵을 나누어 먹으면 끝이 나는 의식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해 간략화한 것인지 원래 의식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빵을 먹기 전에 교사가 헌금통을 돌리면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은색 동전을 하나씩 그 통에 집어넣었다. 은색 동전은 센트들이다. 10센트, 20센트, 50센트 동전들이 있다. 가끔 동전을 잊고 가져오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교사들이 슬쩍 건네주곤 했다. 교사는 앞에서 이스라엘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이라고 알렸다. 그 먼 곳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모금이라니 대견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곳에서 실습하던 3주 동안 가까운 곳에 있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언급이 한 번도 없는 것이 나는 의아했다.  

 

그들의 부엌도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다. 처음 실습을 나갔을 때 한 교사가 센터를 안내해 주면서 나에게 유대인들은 보통 부엌을 2개 사용한다는 말을 했다. 유대교에 대해 별 지식이 없었던 내가 깜짝 놀라자 유아원의 부엌에서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예절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부엌에서 육류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육류를 사용하는 부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서 육류와 채소류를 조리하는 부엌이 따로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대인들은 음식에 대한 많은 규칙들을 지키고 있었다. 육류와 유류를 구분해서 조리하는 규칙뿐 아니라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의 리스트 또한 무척 길었다. 

 

나는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참치가 든 도시락을 한 교사와 교사 휴게실에서 같이 먹은 후 무심코 부엌에서 도시락통을 씻고 있을 때였다. 같이 앉아 식사를 마친 그 교사는 할 말이 있는 듯 내 주변을 맴돌며 말을 떼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냐고 하자 어렵게 입을 떼면서 하는 말이 사실 참치를 담았던 도시락을 그 부엌에서 씻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육류를 조리하지 않는 부엌에서 육류가 담겼던 그릇을 씻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성경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설명해주셨다. 성경 말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얀 턱수염이 긴 그 할아버지 선생님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배도 나오시고 몸집도 좋으셨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과 비슷하셨다. 아이들이 앉는 조그만 의자에 불편해 보이게 앉아서 그림책의 그림이 아이들에게 보이도록 하시고는 성경 이야기를 읽어 주시면서 설명도 덧붙이셨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에게 왜 유대인 남자들만 모자를 쓰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신 적이 있다. 할아버지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남자들은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모자를 쓰게 하셨다는 것이다. 덧붙여 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한다는 참으로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하신 것이다. 유아원에서 모든 차별적 언어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어서 나는 순간 놀랐으나 그것이 그들의 종교적인 공식 견해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어 토를 달지 않았다. 난 피식 웃음이 났지만 아이들은 모두 심각하게 앉아 있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어도 안식일에는 남자아이들이 유대인 모자를 쓰고 나타나곤 했기에 그들에게는 매우 진지한 주제였을 것이다.


나는 금요일 의식 때의 노래를 거의 외워서 같이 따라 부르고 춤추는 일에 동참했다. 굳이 종교로 아이들과 나를 갈라놓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실습을 마칠 때 원장 선생님께서 내가 그들 문화를 함께 수용하는 모습을 매우 고맙게 생각해 주셨다. 우리들은 모두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서로 강요할 필요도 없고 단지 부딪히지 않게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늘 필요한 것 같다. 

이전 07화 차이와 차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