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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차이와 차별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익숙하다. 외형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른 것에 대해 누군가 비난하거나 싫어하면 그것이 옳지 않다고 의젓하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잘 따라주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약한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고학년 중에는 누군가 자신의 외모를 가지고 놀림을 당했다고 교사에게 이르는 아이들이 더러더러 있었다. 한창 멋을 부리기 시작하는 나이의 아이들은 그들만의 '멋스러움'의 기준이 생기는 것 같았다. 또는 이성을 괜히 괴롭히는 장난꾸러기들의 짓인 경우도 꽤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제기된 아이들을 불러서 이야기하게 하면 금세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풀어졌다. 외모를 가지고 놀렸다고 지목된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자신의 실수임을 알아채고 이런저런 변명을 해 대면서 사과했다. 어린아이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외모나 사는 환경, 종교, 민족 등등 다른 조건에 대한 차별적인 행동이나 언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장난기가 유난히 많거나 누군가를 고의로 괴롭히는 아이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교사는 매 순간 놓치지 않고 반복해서 잔소리를 한다. 비록 몇몇이 진심으로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각자 다르게 타고난 것을 탓하는 고약한 마음을 마구 드러내는 것이 괜찮다고 느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린은 6학년 중국계 여아다. 아주 명석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아이였다. 우리 방과 후 학교에는 지역 주민이 기증한 낡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는데 피아노로 음악을 들려줄 만한 아이들이나 교사가 없어서 장난감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린이 들어온 후 가끔 근사한 피아노곡을 연주해서 우리 모두를 감탄하게 만들던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좋은 재주를 타고난 린이었지만 말끝마다 차별적인 발언을 해서 귀에 거슬렸다. 


어느 날 우리는 다 같이 동네 공원으로 체험학습을 나갔다. 인도 음식 식당 앞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린이 인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면서 정말 역겹다는 말을 했다.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당황했다. 그건 문화적으로 다르고 어쩌고 하면서 매우 상식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는데 린은 멈추지 않고 수위가 높아졌다. 주변의 아이들의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인도계 학생이 없다는 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수습하나 곤란해하고 있던 찰나 한 아이가 아주 늠름하게 사태를 해결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도 음식은 아주 맛있다면서 중국에서 젓가락을 쓰고 호주에서는 포크를 쓰는 것과 인도에서 손을 쓰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한 아이가 4학년이었다. 그러자 불편한 말을 한 린은 자신은 포크만 사용한다면서 삐죽거린 후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교사의 말은 훈계같이 들렸을 수 있겠지만 또래의 친구가 하는 말에 느끼는 것이 많았을 것 같다. 아마도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견이나 차별의 상황에 처하거나 그런 상황을 목격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토록 확고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분명히 원활히 잘 해결해 나갈 것이란 생각에 뿌듯했다. 


어린 나이 아이인데도 차별의 말을 뱉는 경우를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과연 그 말의 무게를 알고 하는 말일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가 동생과 함께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만 4살 조지아와 만 3살 이든이다. 조지아는 밝고 명랑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듯했다. 동생 이든도 잘 챙기고, 교사들과도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 듯했다. 나와도 아주 친밀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의 부모님이 픽업 시간에 늦게 오셨다. 그 두 남매 때문에 센터 문을 닫을 수 없었다. 교사 두 사람 이상은 꼭 있어야 하는 규칙 때문에 나와 다른 호주인 교사가 남아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귀가하고 둘만 남아 불안해할 수도 있을 두 아이들을 다독거려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지고 별다른 할 일이 없어지자 누나인 조지아가 몸을 꼬면서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뭔가 할 말이 있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출석부를 정리해서 집어넣으려고 몸을 일으켜 조지아를 등지고 섰을 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중국 사람은 자기네 나라로 가 Chinese go home' 하고 말했다. 아주 급하고 힘없는 소리였기에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뒤돌아보자 급하게 나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책을 만지작거리며 딴짓을 하는 것이었다. 같이 있던 호주인 교사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 교사도 조금 놀란 듯 나더러 어떻게 이 사태를 대처할래 하는 물음의 눈짓을 주는 것 같았다.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린 나이에 무슨 소관을 갖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동양인은 다 중국사람으로 생각될 테고 게다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한 일이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눈을 피하고 구석으로 기어들어갔던 것 같다. 나는 가볍게 반응하기로 했다. 먼저 ‘나는 중국사람 아닌데?’ 했더니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호기심을 보일 때 살짝 가벼운 말로 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다. 호주에는 아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라고 했더니 고개를 더 숙였다.


내가 그 센터에 출근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아이들 픽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유명한 부모들이었던 모양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썩히 좋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마약으로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너무 속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편견의 눈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마도 주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별생각 없이 그 말을 뱉어 보고 싶어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가진 어른들이 주위에 많다면 교육에 좋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늘 차별이 발생한다. 호주인의 주류가 백인이어서 꼭 동양인만 차이나 차별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드니 중심부에서 일했기에 유아원이나 방과 후 학교 내에는 정말 다양한 국가로부터 들어온 아이들이 많았다. 시드니를 조금만 벗어나도 앵글로 색슨들이 대세를 이루지만 이민자들 대부분이 대도시로 몰려든 까닭일 것이다. 동양인도 많았고, 아프리카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고, 남미에서 온 아이들, 그리고 서양인이라 해도 유럽 여러 국가에서 온 아이들도 많아서 완전 금발은 거의 드물었다. 


하루는 완전 금발에 피부가 너무 하얘서 핑크빛이 도는 소피아가 새로 들어왔다. 금발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들의 경우 소피아의 머리카락 색깔을 하얀색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명주실이 햇빛에 반짝이는 그런 느낌을 주는 머리카락이었다. 엄마를 닮아 소피아도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덩치도 큰 편이었다. 하지만 덩치와는 반대로 수줍음이 많고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조금은 소심한 아이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보고 대할 수 있는 것에서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우리 모두의 경험에서 흔하지 않았던 금발과 하얀 얼굴이 너무 눈에 띄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도 그 아이의 외모는 익숙하지 않은 점이 있었던지 우르르 그 아이에게 달려가 왜 하얀색 머리인지, 하얀색 머리가 왜 호주에 있는지 물었다고 다른 교사가 말해주었다. 그 점에 대해 걱정하는 교사도 있었지만 나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다르다’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기회가 우리의 외모가 다르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가르칠 좋은 기회인 것이다. 새하얀 얼굴과 금발 머리 친구들 사진도 벽에 걸어두고, 북유럽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지도에 표시하고, 바이킹 문화에 대한 전시도 하고, 이야기 책도 읽는 등 북유럽 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리고 교사들의 행동 지침도 다시 점검하고 첨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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