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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가족이란

한 아이가 새로 들어왔는데 성이 김 씨이고 이름이 빈이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이름인 것이 신기했다. 한국 아이인가 싶었지만 한국말은 간단한 인사말조차 알지 못하는 듯했다.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백인이었다. 첫 만남을 일상적인 대화로 마무리하고, 입학서류를 보았더니 엄마, 아빠, 아이의 성이 다 달랐다. 개인적인 사정을 일일이 캐묻는다는 것이 예의가 아닐 수 있어 며칠간 다른 아이들 부모님과 다를 바 없이 일상적인 생활이나 적응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빈이 엄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가족들은 성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성이 다른 것은 요즘 호주 사회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굳이 남편 성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 층도 많으니까. 하지만 아이의 성이 같지 않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 엄마의 말로는 빈이는 한국에서 입양해왔고, 한국에서의 이름을 그냥 쓰는 것이라고 하면서 가족이 성이 다 같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금방 설득당한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왜 우리 가족 중에서 엄마만 성이 다르냐고 물었을 때가 있었는데, 난 그때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덧붙이길 엄마만 성이 다르니까 가족에서 빠지는 느낌이어서 이상하다는 것이다. 한국사람들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평생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들 산다는 이유로 꼭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빈이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빈이 엄마를 유독 기억하고 있는 것은 비단 아이의 성이 다르다는 이유 말고도 그 부모님들이 지극 정성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주려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란 것을 몹시 반가워하며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배워 빈이에게 쓰려고 노력했고, 아이를 부를 때도 서양식으로 이름만 부르지 않고 이름 뒤에 ‘~아’를 붙여 ‘빈아’라고 불렀다. 주변의 다른 교사들이 왜 ‘빈’을 그 엄마는 매번 ‘빈아’라고 부르는지 나에게 물어온 적도 있었다. 


그런 일뿐 아니라 빈이 엄마는 입양아들을 위한 한국어학교도 알아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다른 유아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듣던 한국 동요 CD를 몽땅 선물로 주었다. 그 부모는 너무 필요한 선물이라면서 뛸 듯이 기뻐했다. 빈이는 너무 어려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친부모와 양부모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커서 어느 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될 때 어릴 때부터의 이런 관심과 보호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한 호주 가정에서 자란 다른 한국 입양아를 알고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한 한국 아이와 친한 친구가 되어서는 한국교회에 자주 나타나는 아이였다.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그 애는 한국애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무엇보다 즐거워한다고 전해 들었다. 아주 좋은 호주 가정에서 잘 자란 아이인데 그 사회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한국인 사회에서 느끼는가 싶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유아원에서 만난 그 입양 어린이도 훌륭한 가정에 정착하게 되어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나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하나의 외로움을 더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호주에서는 입양가정 뿐 아니라 이혼 가정이나 재혼 가정의 어린이들을 우리나라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는 듯 느껴졌다. 인구 일천 명 당 이혼 건수를 말해주는 조이혼율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2.1건 (2018년 통계)이고 호주는 2.0건 (2017년 통계)이라고 하니 거의 비슷한 조인혼율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이혼을 했거나 재혼을 했거나 입양을 했거나 또는 편모나 편부 슬하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망설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그 말에 잠시라도 당황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대한다. 이유를 묻는 일은 물론 없다. 다 개개인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6학년이었던 올리비아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늘 아빠가 데리러 왔는데 올 때마다 연어를 조그마한 통에 담아와서는 집에 가기 전에 먹였다. 집이 꽤 멀어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요기를 시키려는 것이란다. 굳이 연어를 선택한 이유는 딸이 모델이 되고 싶어 해서 몸에 좋고 살도 찌지 않는다는 연어를 가져온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올리비아는 키가 크고 긴 비단결의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얼굴이 눈에 띄게 예쁜 편이어서 모델이 되겠다는 말을 누구나 수긍할 만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부모의 노력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싶었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학교 행사에서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올리비아가 같이 나란히 앉아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할 때였다. 그 자리에는 올리비아의 엄마만 계셨던 것은 아니다. 친아버지와 새엄마, 친엄마와 새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의 각각 부모님들, 즉 할머니 네 분, 할아버지 네 분을 소개받았다. 재혼한 가족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조금 당황했다. 올리비아는 모처럼 모두 모인 자리가 마냥 신이 난 듯 들떠서 소개를 했고, 부모님과 새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 모두 거리낌 없이 서로를 대하고 계셨다. 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했지만 나의 모습이 그때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 늘 노력하고 있지만 흔하지 않은 경험인 것은 사실이다. 하여튼 올리비아는 그 많은 어른들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것이 여실히 보여서 무엇보다 마음이 흡족했다.


아이를 적게 낳는 요즘, 아이 하나 키우는데 부모와 양가 조부모, 6명의 어른이 사랑을 쏟는다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경우 6명이 아니라 12명의 어른들이 그 아이 하나에 정성을 쏟는 듯 보였다. 누가 누군지 헷갈린 나머지 말하다가 실수라도 할까 조심스러워 어딘지 좀 어색하게 굴었던 것은 나뿐이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주 행복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올리비아는 더 활발했고 당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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