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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다문화 사회

호주는 다문화사회이다. 70년대의 상황을 기억할 만한 나이의 사람들은 호주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호주의'일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 호주에는 인종차별이 심하잖아요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백호주의'라는 말이 남긴 무게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꼬집어 백인만 들어오라고 말하고 있는 정책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어이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1973년 이후 호주의 백호주의는 철회되고, 1975년에는 법률이 제정되면서 호주에서는 인종을 차별 정책이 불법화된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호주 땅에 들어오면서 다양성의 통합이라는 문제가 생겼고,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된다. 현재 호주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 어린이들을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 철저히 교육하는데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 호주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우리 모두는 다르고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교육은 매일같이 강조되는 요소이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있느냐 하는 것이 유아원, 유치원 또는 방과 후 학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교육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소개하거나 관련된 책을 비치해두고 읽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아원을 들어서는 입구에 여러 나라의 언어로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써놓는 것이 그 시작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환영합니다’로 쓰고 그 옆에 발음을 위해 ‘Hwan-yeong Hamnida’를 써 놓은 유아원이 많았다. 나는 그것이 눈에 거슬렸다. 왜냐하면 중국어로 ‘歡迎’이라고 한자로 쓰고 발음을 ‘Huānyíng’이라고 쓴 것이 늘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영’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하면서 한국과 중국이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말하던 한  중국인 학부모의 말이 맘에 남았다. 한국도 한자어를 쓴다고 기뻐하던 그 모습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어서 오세요’라고 쓰고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법에 따라 'eoseo oseyo'라고 썼다. 그랬더니 모두들 '이오세오 오쎄요'라고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Ŏsŏ-oseyo'라고 썼더니 그런대로 비슷하게 발음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려워하면서  내가 직접 소리 내 읽어보기를 원하는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많았다. '어서 오세요'라고 써 둔 글자에 동그라미가 많아서 특히나 눈에 띄고 예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들 했다. 이렇게 한글은 늘 자랑스럽다. 내가 발음을 하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한 번씩 따라 하며 즐거워했다. 나도 물론 다른 나라 언어에 관심을 보이며 함께 발음해 보는 과정에서 어쩐지 우리 모두는 더 가까워진 듯 느껴졌다. 


입학서류에도 집에서 무슨 언어를 쓰는지에 대해 묻는 항목이 있었다. 영어 외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역시 호주는 다문화국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입학 서류를 정리하다 호주인 교사가 자신만 한 가지 언어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푹 내쉬는 바람에 너의 영어는 탁월하잖아라면서 위로를 해 주고는 다들 웃음바다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다문화국가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호주의 공식 언어인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문화도 다르고 각 문화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육에 대한 사고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극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입학서류에 넣은 것이다.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가 입학할 것이지를 검토한 후 교사들은 각각의 문화에 대해 먼저 공부하고 준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입학하는 어린이와 같은 문화권에서 온 교사는 늘 환영받는다. 언제 어느 문화권에서 온 어린이가 입학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어 외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교사 또한 늘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영어만 할 줄 아는 호주 교사가 다소 위축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던 것이다. 


영어 외 다른 언어를 쓰는 학부모들은 언제나 주저함 없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아이들에게 선보이곤 했다. 아이들은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고 그들이 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영어가 다소 서툴거나 아예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어를 잘한다고 우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신기하고 특별한 능력으로 받아들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일도 자주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호주에서 태어났으나 다소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호주 학교에 편입한 우리 아들이 영어 실력으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장애가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차 아들의 친구가 어느 날 '너의 영어가 좋아. 아마도 너는 미국 영어를 쓰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니 조금 깊은 대화에서는 아마도 막히는 일 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아들의 친구들은 너무나 긍정적으로 '우리와 조금 다른 영어를 쓰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의 다문화 사회를 강조한 교육 때문인지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놀리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초등학생들까지는 거의가 그랬다. 혹시라도 다른 아이의 외모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하는 것을 누군가가 듣거나 본다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교사에게 일렀다. 그런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어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언급한 책을 찾아 읽고 토론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활동도 한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등장하는 책을 다 읽고 나자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을 만져보고 피부색을 평가하더니 서로 껴안고 좋아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의 교육이 이렇게도 중요하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색 피부의 인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꼭 검은 피부를 가진 인형을 함께 놓아둔다. 그런 작은 배려가 아이들로 하여금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손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 경우도 있었다. 검은색, 노란색, 핑크빛 도는 색, 갈색에 가까운 색 등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세하게 비슷한 듯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어느 누구도 같은 손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아이들도 놀라는 눈치였고 그런 미세한 차이를 아직은 충분하지 않은 언어로 표현하려고 몸을 다 써서 표현하는 모습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아프리카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이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아주 새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새까만 피부를 가진 어린이가 입학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이들은 그 아이의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이나 윤기 나는 까만 피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오래 친했던 친구처럼 금세 가까워졌다. 우리가 피부색에 대한 책을 읽을 때가 되어서야 그 아이를 자세히 쳐다보더니 꼬불거리는 머리카락과 까만 피부가 예쁘다며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의 편견을 어린이들이 흡수하는 것이지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친구를 대하는 경우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아토피성 피부를 가진 아이의 경우도 그렇다. 그 아이는 아토피가 심해서 얼굴은 물론이고 손이나 팔의 피부도 쪼글쪼글했고 가끔 귀 뒤쪽이나 접히는 부분에 진물이 나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 나도 흠칫 놀랄 지경이었으나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손을 씻을 때 비누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그 아이를 위해 따로 마련해 둔 전용 비누를 챙겨주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호주가 다문화 다민족 사회라는 것은 음식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세계 모든 음식들을 쉽게 시드니에서 맛볼 수 있다. 다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다른 나라에서 사는 호주인들은 한결 같이 호주의 식당들이 그립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이 모인 유아원에서도 각 가정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나라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직접 먹기도 하고, 만들어 보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이 흥미를 보일 때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먹는 행위를 싫어하는 아이들이라도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거나, 예쁘게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음식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거나, 또는 음식에 대한 경험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등 음식에 관련된 어느 한 부분에는 흥미를 보이기 마련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러 아이들은 한국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였다. 나는 이 참에 우리나라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김밥이 괜찮을 것 같았다. 4 등분한 김에 밥을 얹고 미리 썰어 준비된 야채 중 하나를 얹어 대충 말면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같이 만들기 전 내 머릿속에는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같이 해 보니 밥알이 손이며 얼굴이며 테이블이며 여기저기 붙고, 그것을 떼내느라 또 난리도 아니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정신이 나간 듯 한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형태가 일그러져 엉망인 김밥을 맛있게도 먹으며 깔깔거렸다. 


젓가락과 김밥 사진을 붙여두고 요리를 진행한 탓에 몇몇 아이들이 젓가락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젓가락 놀이로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포크만을 사용하던 아이들은 낑낑대며 커다란 '폼폼'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느라 또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있던 때 한 아이가 중국음식점에 갔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보면서 중국음식점에서 본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먹는 듯이 젓가락을 흔들어 대면서 신이 나서 장황하게 중국 음식점의 분위기와 음식에 대한 설명을 했다.


우리의 주제는 당연히 중국 음식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중국 음식에 관한 자료들을 같이 찾아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 음식을 먹어 본 아이들이 많았던 터라 자신들의 경험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요리를 더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무얼 만들지 묻자 이제까지 중국음식을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엉뚱하게도 피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피자는 어디서나 환영받는 음식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음식 만들기가 즉석에서 준비하고 이루어질 수는 없는지라 다음 날 피자를 만들기로 했다. 당연히 이야기는 이탈리아로 옮겨졌고 이탈리아 국기도 세워두고 몇 마디 이탈리아 말도 배워보는 것으로 옮겨갔다. 다음 날은 피자 만드는 날. 피자 도우를 같이 만들고 토핑은 각자 알아서 이것저것 넣은 것이었는데 이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오히려 교사들이 놀라고 말았다. 역시 바로 굽는 피자가 최고였다. 


종교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일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들린다. 우리나라는 많지 않지만 호주에는 무슬림 인구도 제법 된다. 중동에서 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의 무슬림 인구도 만만치 않다. 그 외 불교도, 힌두교도 등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만큼 종교도 다양하다.


내가 만난 많은 무슬림인들은 아주 신앙심이 깊어서 꼬박꼬박 알라신에게 하루에 4번 예배를 드렸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과 후 학교에도 무슬림 교사가 있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다음 자리를 깔고 한쪽 구석에서 절을 하곤 했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그 주변에서 웅성거리면 다른 교사들이 기도를 하는 동안 조용히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주위를 물렸지만 정작 기도 중인 교사는 관계치 않았다. 센터 측에서는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말릴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종교가 아니라 업무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종교를 자유롭게 드러내지만, 유아원이나 방과 후 학교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종교색을 드러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겠지만, 우리는 무심결에 종교적 색채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메리 크리스마스’나 ‘오 마이 갓’ 같은 말을 사용하는 순간도 그러하다. 인사나 감탄사 이상의 의미는 아니라고 해도 그런 말은 분명 특정 종교를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오 마이 갓’은 감탄사로 입에 붙은 말이라 자주 뱉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떤 곳에서는 금기어로 되어 있었다. 대신 ‘오 마이 가쉬’ 정도로 바꿔 사용하기도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학부모 및 아이들과 일상 대화에서는 서로 주고받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예를 들면 주보 같은 곳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행복한 연말 되세요’ 정도로 바꿔 사용했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신나는 일들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노래도 듣는 등 그야말로 11월이 지나면서 계속 축제 분위기가 된다. 크리스마스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도 기억하고 특정 기념일에 맞춰 축하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즉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이나 힌두교, 이슬람에 대한 요소들에 대해서도 거부감 없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종교 행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주로 책이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아이들과 나름 행사를 준비한다. 특히나 특정 종교를 가진 어린이가 입학했을 때는 그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더 신경을 써서 그들의 행사나 종교를 챙길 수 있었다.


축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도의 무슨 축제 날  우리는 이마에 찍는 점, ‘빈디’를 아이들과 같이 찍었고 손에 헤나 문신도 했었다. 그 문신은 화려하고 예뻤지만 서서히 흐려지며 없어지는데 3주나 걸리다는 점이 문제였다. 색이 엷어지면서 패턴은 보이지 않고 손에 얼룩이 묻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나 교사들이나 모두 얼룩덜룩한 손으로 얼마간을 지낸 기억이 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다른 곳에서는 한동안 손을 내놓기가 부끄러워 괜히 손을 감추게 되었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도 우리가 꼬박꼬박 챙기는 행사였다. 어린이들도 ‘망자의 날’이라는 축제가 보여주는 화려한 색감을 좋아해서 많은 그림과 공예품을 제작했고, 그것으로 이방 저 방을 치장하기도 했다. 


음력설을 호주에서는 중국설,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부르며 대대적 행사를 한다. 중국의 명절이라고 단정 짓는 호주인들의 무지에 대해 나는 속상했다. 나는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이나 한국에도 음력설을 기념하는데 우리는 특별히 ‘설’이라고 부른다며 사진이며 관련 소품들을 전시해 두고 홍보했다. 교사들이 한국의 명절이기도 한데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괜찮냐고 물어왔다. 그 질문이 마음 아팠다. 나는 불편하다고 말하면서 중국이 워낙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큰 행사를 해서 우리의 명절이 가린다고 은근 불평을 했지만, ‘차이니즈 뉴 이어’는 점점 더 음력설을 대표하는 단어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한 번은 설을 맞아 특별한 오후 티타임을 갖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부모님들을 초대해서 같이 차도 마시고 아이들 그림 전시회도 갖기로 했다. 나는 초대장에 ‘음력 새해 Lunar New Year' 나 ‘아시안 뉴 이어 Asian New Year’로 쓸까 고민도 해 보았으나 모든 이들이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 명사처럼 된 상황에서 학부모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다른 용어를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차이니즈 뉴 이어 아프터눈 티 Chinese New Year Afternoon Tea'라고 타이틀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쓰고, 대신 ‘호랑이 해  Year of Tiger'라고 크게 써서 소심한 반란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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