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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호주의 유아원과 방과 후 학교

호주는 취학 전 어린이들을 위한 유아원의 형태가 여러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형태가 우리의 유아원과 비슷한 형태이다. 갓난아이부터 다닐 수 있거나 아니면 만 2살, 3살, 4살반으로 이루어진 곳도 있고 때로는 만 3세와 4세반으로만 구성된 곳도 있다. 전문적인 유아 교사와 아이들의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고, 엄격한 국가 품질 스펙트럼에 의해 평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기록 문서들을 검토하고, 전문가가 직접 센터를 방문해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고, 지방 자치단체나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곳도 있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어린이 보육시설도 있는데 이는 한 명의 보육 교사가 최대 4명까지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제도이다. 학부모에 따라 이런 제도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가까운 이웃, 그렇지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공부한 이웃에게 맡기는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경우 짧은 코스의 교육과 120시간 이상의 교생 실습만 마치면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와 같이 일한 유아교육 전공자도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정에서 이런 시설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다 보니 어린이들도 다 같은 동네 이웃들이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 일과 중에 가장 힘든 점은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이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않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알아온 이웃사촌들이다 보니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에 딱 좋은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 임시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캐주얼 센터도 있는데, 이곳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거나 또는 육아에 너무 지친 엄마들이 짧은 휴식을 갖기 위해서 잠시 잠시 아이들을 부탁할 수 있는 곳이다. 교육은 일반 센터와 같이 이루어지지만 주기적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아니고 매일 얼굴이 바뀌는 곳이어서 서로 친숙하기 힘들고, 교사와 아이들 간 신뢰를 쌓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돌봄에 조금 더 치중한다고 생각된다. 


취학을 한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학교는 또 다른 형태의 센터이다. 때때로 등교 시간 전에도 운영하는 곳이 있어서 일찍 일하러 나가는 부모의 경우 도움이 된다. 학기 중뿐 아니라 방학 때도 운영되는데 이 때는 하루 종일 운영되므로 더 다양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일하는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방학 중 방치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충족되는 프로그램이어야 하므로 한 방학이 끝나고 조금 숨을 돌리고 나면 또 다음 방학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부모님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방과 후 학교에서의 하루는 오후에 시작한다. 학교는 3시에 끝나므로 방과 후 학교 교사는 1시 반부터 프로그램 준비도 하고 행정에 관련되는 일도 하는 등의 시간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줄 세워 픽업해오고 나면 전쟁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실내와 실외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페인팅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한 테이블, 또 공예를 위한 테이블은 항상 마련되어 있어서 스스로 참여하거나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특별한 만들기는 아이들의 관심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 프로그램되고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 다른 작업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흥미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프로그램을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되고 바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드게임이나 퍼즐, 레고 등이 테이블에 나와있었지만, 다른 것을 원할 때는 언제나 장을 열어 원하는 게임이나 장난감을 꺼내서 놀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하루 종일 몇 장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하루 종일 뭔가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뭔가를 만드는 것에도 유행이 있어서 뜨개질이 유행할 때도 있고 매듭이 유행할 때도 있고 폼폼 만들기가 유행할 때도 있었다. 그라피티가 유행할 때도 있었는데 교사들은 그라피티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 누구도 그런 새로운 장르의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그라피티 아트 작품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부분을 복사해주는 일을 도와줄 뿐이었는데 아이들은 서로서로 도움을 주며 발전해 갔다. 그라피티에 대한 관심을 쉽게 잃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몇몇은 끈질기게 연습을 거듭한 결과 제법 그럴듯하게 그라피트 작품에 나오는 글자 형태를 완성해 냈다. 


나이가 다양하고 취향이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모여 있다 보니 서로 묻고 가르쳐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다른 흥미,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더 발전시킬 수 있게 적극 협조해 주고, 다른 재능에 대해서는 차별을 두지 않고 칭찬으로 북돋우어 주는 것이 교사가 하는 일이었다. 


고정되어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숙제를 같이 하는 시간이나 운동을 같이 하는 시간 등이 있을 뿐이었다. 숙제하는 시간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학기 동안 숙제 시간에 많이 참석한 아이들에게 상을 주어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학교 숙제를 센터에서 다하고 나면 집에 가서 편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숙제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딱 한 건 있었다. 중국 가정이었다. 그 아이는 학교 수업 외 과외를 하는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호주에서는 한국인 위에 중국인, 그 위에 인도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모의 교육열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의 교육열이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으로 키운다는 의미보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으로 키운다는 의미가 강한 뜻이라고 생각된다. 

 

전자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은 오후 5시가 넘은 후 하루에 20분씩 허락이 되었다. 3대의 컴퓨터와 한 대의 전자 오락기가 있었는데, 오후 5시가 되면 자신의 이름으로 먼저 예약한 순서대로 게임을 한다. 아마도 가장 경쟁이 심한 영역일 것이다. 6시면 센터가 문을 닫으니 아이들이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흥미와 재능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아이들은 아무 예고 없이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부분을 바꾼다. 어제까지 좋아했던 일에 대해 시큰둥하면서 전혀 다른 것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교사는 모든 아이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대화를 통해서 그들을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노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놀이를 통해서 하루하루 훌쩍 커 간다. 교사들은 그들이 재미있게 지치지 않고 잘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 늘 우선이었다.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날들이었다.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깔깔거리며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많았지만, 매일매일 누군가는 싸움을 하고, 누군가는 씩씩거리며 분을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는 삐치거나 우는 일도 발생했다. 그 모든 것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였다. 해마다 새로운 어린이들이 입학할 때쯤에는 우리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고 놀라곤 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은 매일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성장해 갔던 것이다.


우리 방과 후 학교는 학기 중이나 방학 중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얼핏 기억나는 것들만 나열해도 볼링장, 수영장, 스케이팅장, 암벽 타기, 육상, 트램펄린 등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박물관 방문을 하거나 식물원, 동물원을 가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선생님들을 센터에 초빙하는 경우도 많았다. 꽃꽂이 선생님, 만화가, 요가 선생님, 육상 코치 등이 우리를 방문했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학교나 유치원 등을 다니면서 교육하시는 분들을 초빙하기도 했다. 송아지, 어린양 등등의 어린 동물들이 센터를 방문하기도 하고, 뱀이나 파충류를 다루시는 분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쇼를 하기도 했다. 조개류나 신기한 해양생물들을 차 가득 싣고 오셔서 전시해 놓고 설명을 하시고 아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도 하셨다. 머리를 하시는 분이 오셔서 아이들 머리를 만져주고 손톱에 스티커로 장식을 해주기도 했고, 공주옷을 입은 분이 오셔서 동화를 읽어주기도 하셨다. 가까운 공원에 나가는 일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센터에서 디스코 파티를 하거나 잠옷 파티, 영화 파티를 하기도 했다.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휠체어 체험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휠체어가 20대쯤 준비된 농구장에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계신 한 분이 아이들 앞에 나오셔서는 밝게 인사하시면서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오자 자신은 너무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아있다고 힘차게 이야기하시면서 아이들의 분위기를 바꿔 주셨다. 그리고는 차를 타고 내릴 때 주의할 점, 길을 걸을 때 주변의 차에 신경을 써야 할 점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차 때문에 위험했던 경험도 이야기하고 교통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고 어른스러운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 후 아이들 모두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휠체어를 움직이는 지를 배웠다. 휠체어에 앉아 운전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아이들과 차사고로 다리를 잃었다는 아저씨는 함께 달리고 공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센터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휠체어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들께서 오셨을 때도 달려가 휠체어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차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흥분하면서 해댔다.


휠체어 체험에 이어 우리는 장애우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는 놀이를 준비했다. 앉아서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하는 배구 놀이와 눈을 가리고 하는 축구였다. 큰 홀 가운데 네트를 치고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가벼운 고무공을 쳐서 넘기는 배구와 비슷한 게임이었다. 다만 움직임이 불편하다고 가정하고 앉은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만 허락되고 다리를 이용해서 움직일 수는 없다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 달랐다. 몇 번 공을 쳐내다가 조금씩 경쟁이 과열되자 자신도 모르게 벌떡 벌떡 일어나 앉는 일이 발생했다. 상대편이 제지하면 아차 하면서 앉으면 다들 까르르거리곤 했다. 경쟁이 과열되어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웃으며 땀범벅이 되어갔다. 


또 어느 날은 눈을 가리고 소리 나는 공으로 축구를 한 적도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우선이어서 교사들은 잔뜩 긴장을 했지만, 아이들은 더듬거리고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면서 공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눈가리개를 벗고는 얼마나 답답했던 지를 열을 내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기억난다.


장애물이 잔뜩 놓인 체육관 같은 곳을 방문한 적도 있다. 군대 유격훈련장의 어린이 버전쯤 되는 곳이었다. 안전 그물망을 아래에 두고 로프 한 줄을 건너다니기도 하고 나무로 된 장애물을 올라가서 넘어가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활발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오르고 있었지만, 소심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은 높은 곳은 포기하고 낮은 장애물만을 선택해서 조심스럽게 오르고 내렸다. 어느 경우나 잘못된 것은 없다. 높은 곳까지 끝까지 오르는 아이들은 과감히 도전하고 성취한 것에 대해 칭찬하고, 두려움으로 낮은 곳만을 오르고 있는 아이들은 자세가 안정되었다거나 늘 조심하는 그 마음을 칭찬하면 되었다. 그러다 조금 더 도전하려는 준비가 된 듯 보일 때 도전하는 마음에 대해 큰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조금 더 용기를 내곤 했다.


암벽등반 체험도 기억에 남는다. 천장에까지 숨 가쁘게 올라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 칸을 올라가는데 온종일 끙끙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오를 때 밑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교사들은 그 날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도무지 쉴 틈 없이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체험은 안전에 가장 신경을 쓴다. 암벽 등반을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장치를 하지만 교사들 또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체험이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으니 안전을 위한 모든 점검과 장치를 하면서 감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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