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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장애라는 말

영어 단어를 많이 섞어서 말하는 것을 자제하고 좋은 우리말 단어를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나름 우리말 교육 방법의 하나이기도 했고, 너무 외래어가 이곳저곳에서 남용되는 것이 그다지 마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아동이라는 단어는 불편하다막힐 장에 거리낄 애, 장애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보면 막혀 거리낌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뭐가 막혔다는 것일까? 불편한 표현이지만 딱히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외국에서 말하는 ‘스페셜 니즈 차일드 special needs child'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한 단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셜 니즈 차일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가장 편안하다. 낱말에 너무 민감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은 우리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공부하고 일한 현장에서 경험한 '스페셜 니즈 차일드 special needs child'는 어떤 형식으로든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모든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장애의 경우처럼 진단을 받아 병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편식을 한다거나 자주 징징댄다거나 심리적 상실을 겪은 경우 등등 어쨌든 특별히 손이 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지능지수가 너무 높은,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영재들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물론 특별한 관심이나 보호 또는 손길을 짧은 기간만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또는 영구히 그런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다. 우리 모두가 특별한 보호 또는 관심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말을 할 만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단어였다. 다시 말하면 특별이라는 말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인생의 한 순간 짧게 또는 길게 누구나 ‘스페셜 니즈 차일드 special needs child'라고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것 같다. 


굳이 장애를 지칭하는 단어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호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시선을 받는 일이 드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닌 초등학교는 진단을 받은 장애아동들이 한 반을 이루고 있었다. 자폐아동도 있었고 뇌성마비인 아동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애의 정도가 심한 아이는 휠체어에 앉아 몸을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학부모나 아이들 그 누구도 그들을 다르게 취급하거나 피하는 경우는 없었다.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다 같이 어울려 노는 풍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들을 도와주는 광경도 흔한 것이었다. 

 

반 대항 합창대회 날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린 반부터 고학년의 모든 반마다 합창을 선보인 후 드디어 장애아반의 차례가 왔다. 좀 서툴고 어수선한 그들의 합창을 겨우 5살에서 12살 정도인 초등학교 학생들은 너무나 열심히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소리를 지르면서 가장 큰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수히 즐기고 기뻐하는데 나만 촌스럽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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