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본능

조청 유과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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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야근을 하다가 입이 심심 해지면 나는 어슬렁어슬렁 건너편 기획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나와 절친 사이인 그의 책상으로 가 그가 서랍 속에 숨겨놓은 조청 유과를 찾아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 그는‘과자 본능’이라는 남다른 별명의 소유자였다. 그는 어떠한 태클과 험난한 시련이 다가와도 그 앞에 놓인 수북한 과자들 앞에 본능적으로 환한 웃음을 짓는 유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과자는 포테이토칩부터 꿀짱구, 맛동산, 아몬드 빼빼로 등과 같이 종류도 다양했지만 특별히 애정 하는 과자는, 내 입맛에는 무진장 달달한 설탕물로 완벽하게 코팅을 한 조청 유과였다. 가끔 회의실에 모여 군것질을 할 때마다 막내들이 사 온 불룩한 과자봉지 안에 조청 유과가 없으면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그늘졌다.

조청 유과가 국민 과자인 새우깡만큼이나 어디서나 파는 흔한 과자가 아닌지라 언제나 신제품으로 채워지는 편의점 가판대에는 자주 없었고, 약간의 다리품을 팔아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에 가야만 살 수 있었다. 그러니 팀의 막내들에게 조청 유과를 향한 그의 끝없는 애정을 미리 귀띔해 주지 않으면, 간식타임 내내 평소보다 과묵해진 그의 얼굴을, 무심한 후배인 자신들을 탓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봐야 했다. 심지어는 분기별로 마련한 광고주와의 워크숍에서도 회의실 한쪽 편에 차려놓은 커피와 차, 빵과 과자 등이 있는 다과상을 재빠르게 스캔하고, 조청 유과가 없을 경우에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니 그가 참석하는 과자가 있는 모든 자리에는 반듯이 조청 유과가 있었다.


작년에 비해 판매가 다소 저조한 탓에 광고주와의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불편한 회의 시간이 길어졌고, 아무런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 우리는 일 년을 꼼꼼히 리뷰하는 소위 빡 센 워크숍을 계획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각 팀 별로 분석한 시장 상황을 릴레이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이 죽음의 워크숍을 위해 늘 그랬듯이 막내들은 다양한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광고주와 함께 하는 워크숍에서는 자연스럽게 편이 나뉘기 마련이었다. 보통 간식이 차려진 다과상과 가까운 쪽에 광고주가 앉고 그 반대쪽에 우리가 앉게 되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쪽이 섞여서 앉기는 쉽지 않았다.


드디어 워크숍 날, 광고주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믹스 커피를 한잔씩 타 들고 다과상과 반대쪽인 우리들의 자리에 차곡차곡 앉았고 그도 내 뒷자리에 앉았다. 광고주들이 모두 착석을 하고 첫 번째 발표가 끝난 후, 브레이크 타임을 하는 동안 그는 간식 속에서 발견한 조청 유과를 광고주와 수다를 떨며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두 번째 발표가 시작되고 나는 무심코 광고주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쪽에 있던 그가 어느덧 과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과자를 향한 그의 본능은 멈추지 않았다. 펼쳐진 그의 스프링 노트 옆이 마치 자신의 자리 인양 조청 유과 봉지가 반쯤 입을 벌리고 살포시 놓여있었다. 그는 발표 내용을 메모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조청 유과 하나를 집어 입으로 넣고 소곤소곤 속삭이듯이 얌전히 씹어 삼키고 빙긋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나서 옆자리의 후배에게‘과자 본능은 대단하다’라는 메모를 한 노트를 슬쩍 들이밀었고 후배는 나와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와 절친인 그의 영향으로 나도 어느새 조청 유과에 중독되었고 왠지 과자를 살 때 습관처럼 하나쯤은 사둬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 년 후 그는 해마다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주의를 요하는 놀라운 당뇨 수치가 결과로 나왔고 본능적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조청 유과를 끊어야 하는 슬픈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내일부터 과자는 일절 끊기로 하고 그는 나와 마지막으로 조청 유과를 먹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꾸 손이 저절로 가는 과자 본능을 억눌러야 하는 그를 위로하며 먹었던 조청 유과 – 그 달달한 맛이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도록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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