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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o Nov 17. 2020

댄스 뮤직의 수도 암스테르담

EDM의 심장으로 가기까지

어떤 나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듯이 어떤 도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서울, 부산, 전주와 같은 국내의 도시는 물론이고 도쿄, 런던, 파리와 같은 도시가 가지는 이미지가 있다.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어떤 도시의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암스테르담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운하, 좁고 촘촘하게 늘어선 건물들, 안네 프랑크, 고흐, 하이네켄 여기에 조금 더 보태서 홍등가, 커피숍 정도 일듯 하다. 모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 들일뿐만 아니라 낮 시간에 인파가 북적이는 장소이다.


내가 가진 암스테르담의 이미지는 좀 다르다.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한, 댄스 뮤직과 클럽의 도시이다.


네덜란드는 2000년 대에 클럽과 디제이 관련 정보와 기사를 담고 있는 세계적인 잡지 디제이 맥 (DJ Mag) 순위 탑 10을 차지하고 있던 아민 반 뷰렌, 티에스토와 페리 코스텐 등을 배출한 트랜스의 본국으로, 세계적으로 트랜스=네덜란드라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유명 클럽들과 댄스 뮤직 페스티벌들이 수도 없이 많은 그곳의 문화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클럽과 댄스 뮤직의 역사를 논하자면 1988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또한 센세이션 (Sensation)이나 투모로우 랜드 (Tomorrowland)와 같은 유명 페스티벌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이벤트 프로모터 ID&T의 Innercity와 같은 페스티벌을 보며 암스테르담은 댄스 뮤직의 도시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ADE 로고 색상에 맞추어 제작된 세계 최고의 EDM 레이블 스피닝 레코드 (Spinnin' Records)의 트램 정거장 광고. 스피닝 또한 네덜란드 회사이다.


ADE를 접하다


첫 직장이었던 클럽문화협회는 잘 알려진 홍대 클럽데이를 주관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막내로 일하며 선배님과 진행하고자 했던 주요한 업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전 세계 클럽들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국내에서 클럽 문화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뿌리내리게 하고자 하는 것.


실제 나이트 라이프 (Night Life)로 일컬어지는 클럽 문화는 대도시라면 어디에서나 주요한 산업이고 각 나라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문화이기도 하다. 단지 한국에서는 '밤문화'로 치부되며 퇴폐적이고 마약이 난무하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처럼 공격받고 있었다. (이 부분은 최근 강남과 이태원의 몇 클럽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집중 조명되면서 이러한 인식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아무튼 나의 업무는 여러 도시의 유명 클럽문화와 산업의 성공 사례를 리서치하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였고 이미 자리 잡힌 클럽 문화 선진국들이 자국 문화를 지키고 세계적인 명성을 드높이는 활동 (Movement)들을 정리하였는데, 정말 알면 알수록 신세계였다. 리서치를 하는 와중에 "이게 말이 된다고?" 연발하며 클럽 문화의 또 다른 가치와 본연의 아름다움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위에서 가볍게 얘기했듯, 클럽과 댄스 뮤직이란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저 이성을 유혹하고 술 마시고 춤추고 마약을 일삼는 방탕한 곳으로만 보이겠지만 화려한 파티와 음악, 그것 만큼이나 화려한 라이프가 펼쳐질 것만 같은 세상 뒤에는 다른 산업과 같이 시장을 주도하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있다.


리서치를 통한 우리의 노력은 클럽문화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고 네트워킹을 하는 컨퍼런스까지 연결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한 곳이 바로 ADE 였다.


그 당시 ADE는 다른 전자음악, 클럽, 댄스 뮤직 컨퍼런스들에 비해 큰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강렬한 검은색과 노란색의 조화를 이루는 로고와 트랜스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하는 컨퍼런스라는 것만으로 아주 쿨하게 느껴졌다.


도시 곳곳에 펄럭이는 ADE 깃발


어느 날 갑자기 ADE가 현실로 다가오다.


클럽 문화협회 이후 댄스 뮤직 페스티벌 관련 일도 하고 시간이 더 지나서 전자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리스너의 입장보다는 더 산업적인 측면으로 시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언젠가는 ADE에 가서 공연을 하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라는 막연한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ADE로부터 깜짝 놀랄 뉴스레터를 받았다. 이전 연도의 중국에 이어 올해는 한국을 포커싱 하겠다는 것. 쉽게 말해 한국을 주빈국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뉴스레터의 스크린 샷. 아쉽게도 해당 뉴스 링크는 없어졌다.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지만 마치 신의 계시인 것처럼 한동안 뉴스레터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고 이미 마음은 암스테르담을 거닐고 있었다. 이 절호의 찬스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국이 주빈국이 된다는 것은, 한국의 ADE에서 한국의 전자음악과 댄스 뮤직 산업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숫자를 셀 수도 없이 많고 많은 아티스트중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아티스트와 관계자가 주목을 받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터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찬스를 잡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ADE에 가야만 했다.


보통 ADE는 매년 10월 중순경에 열리니, 앞으로 ADE가 열리기까지는 7개월이나 남아 있었지만 준비과정을 대략 계산하여 일정을 거꾸로 헤아려보니 7개월의 시간이 결코 여유로운 일정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ADE와 나와 아티스트 사이에 연결점을 이리저리 그어보아도 당장 뚜렷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이 소식을 온 동네 (?)에 알리고 국가기관의 투자와 지원을 받아 보자 싶어서 연락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무래도 해외의 산업 박람회에서 한국의 문화와 상품을 알린 다는 것은, 국가 기관의 자본으로 주도하여 이목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속하게 답변을 받아서 시간을 벌 수 있었는데, 가장 기대했던 해당 기관의 담당자는 아쉽게도 이미 올해의 예산이 편성되어 있고 새로운 예산과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에 3월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이미 타이트하게 짜인 1년의 예산과 일정 안에서, 그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상위 기관과 협력하여 이벤트를 만들어 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행정적 절차에 더하여 전자음악, 댄스 뮤직 산업의 측면과 국가기관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는 상당히 있을 것 같다. 또한 국내 관계자 중에서도 ADE를 경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고 국가 기관에서 관심 있게 바라보는 시장이 아니었기에 그 규모와 중요도가 와 닿지 않았을 것이라 어림짐작한다.


최선의 방법 이리라 생각했던 시작부터 일사천리로 불가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벌써 좌절할 순 없다. 힘을 합칠 수 있을만한 동료들을 모아 보자.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단계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국내에 뛰어난 아티스트와 이벤트, 페스티벌 등 각종 관계자들은 많다. 문제는 주빈국으로써 화려함을 담당하기에는 내수 규모가 작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지려면 더 큰 산업의 자본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3대 메이저 기획사들 밖에 없었다. K-pop 대형 기획사 들이야 말로 댄스 뮤직 산업의 가장 강력한 바이어들이기 때문이다.


산업이란 당연히 돈이 되는 곳으로 몰리기 마련인데 막상 주인공으로 지목받으신 분들은 그냥 시큰둥했었던 것 같다. 그 연결고리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쪽 분야는 이벤트, 페스티벌, 클럽과는 거리가 멀고 제작, 프로덕션과 관계가 있을 것이기에 나와 나의 아티스트가 속한 언더그라운드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프로듀서, 퍼블리셔의 주 고객일 테니 연결고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결국 그냥 들이대기


그렇게 머리를 쥐어 짜내던 중 아이디어는 한계에 왔고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방법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되든 안되든 그냥 들이대 보자. 홈페이지의 제너럴 이메일 주소에 이메일을 보내고 아티스트 공연 문의를 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나름 이 기회를 날려버리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다.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나중에 후회를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이메일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ADE 제너럴 이메일 주소로부터 답장이 왔다. 이메일과 해당 아티스트의 소개자료는 잘 받았으니 ADE와 연관된 클럽과 공연장 전체에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고로 일이란 도장 찍을 때까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


HQ에서 보았을 때 본인들의 기준을 통과하였을지는 몰라도 클럽과 공연장들이 각자의 공간의 색깔과 프로그램에 맞게 아티스트를 선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쁘고 바쁜 ADE 일정 중에 남는 슬롯이 남아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보통 이런 중요한 이벤트의 공연들은 아무리 늦어도 6개월 전에는 일정이 꽉 차있다.)


마치 해외 직구 온라인 쇼핑을 하고 나서 잊고 있던 직배송 택배 박스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것처럼, "역시 무리였어." 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쯤 답장이 왔다. 공연장 중 한 곳에서 이디오테잎의 기획 공연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것도 암스테르담의 공연장 중 가장 큰 규모는 물론 파라디소 (Paradiso)와 더불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멜크웨그 (Melkweg)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대형 공연장 멜크웨그 (Melkweg/영어로 Milkyway) '은하수'라는 뜻으로 과거 우유 공장이었다고 한다. 소극장부터 대형 공연장까지 총 4개의 홀이 있다.


여기까지는 무턱대고 일단 뭐라도 해보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보자는 심산으로 저질렀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ADE 공식 나이트 프로그램으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클럽 중심가 한복판에 있는 명성 있는 공연장에서 공식 프로그램으로 올라간다면 관계자들도 눈여겨볼 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ADE 기간의 암스테르담은 극성수기 기간입니다~


"10월인데 설마 항공료랑 호텔비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남들 놀 때 바빠지는 일의 특성상 휴가철 성수기에 비싼 항공료를 내고 투어는 많이 다녀봤다. 하지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는 10월 말에 이렇게 살벌하게 비싸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설마 암스테르담 단풍놀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였나. 나만 몰랐나. 아니다 그냥 명백한 나의 무지였다.


암스테르담행 항공권과 호텔비가 모두 비수기에 비해 2배로 뛰어올라 극성수기에 버금가는 가격이 되어 있었다. 하긴 80만 명 인구의 암스테르담에 ADE를 목적으로 40만 명의 관객과 관계자, 아티스트가 방문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서울 인구 1,000만 명을 기준으로 보자면 관광객 500만 명이 일시에 방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겠지.


이게 어느 정도인지 ADE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숫자를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전 세계에서 2,500명의 아티스트가 약 140개의 클럽, 공연장, 온갖 베뉴 (Venue)에서 공연을 하는데, 공연뿐만이 아니라 ADE 기간 동안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와 장소를 모두 합치면 1,000여 개의 이벤트가 200개 정도의 장소에서 단 5일 동안 진행된다. (사실 주말은 거의 끝물이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이렇게 단 3일 동안 이 모든 이벤트가 진행된다.)


암스테르담 중심지는 물론 도시 전체가 검은색과 노란색의 ADE 로고로 도배가 된다.


여기에 유럽 전체는 물론 전 세계에서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한 관객들이 몰려오니, ADE가 열리는 한 주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유명 디제이 공연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모두, 정말 모두가 암스테르담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자... 우리가 기댈 곳은 중국, 러시아, 중동의 항공편... 많은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중국과 러시아의 항공편은 리스크가 크기에 가볍게 제외하였다. 단지 저렴하다는 이유로 해당 항공사를 이용하기에 우리는 공연을 해야 했고 악기라도 늦게 도착하거나 환승 공항에서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공연을 못하게 된다. 그럼 시간을 손해 보더라도 (=몸이 힘들더라도) 중동 항공편으로 이용하기로 한다.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경비를 아끼려면 공연일 전날 도착, 공연일 다음날 출발이 당연하다. (1회 공연을 위해 2박 3일로 유럽을 다녀오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ADE 기간 동안 암스테르담 출도착 편이 극성수기인 것은 네덜란드 플래그 캐리어인 KLM 뿐만이 아닌 다른 항공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ADE기간 내에 출도착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보다 공연 후 2일 정도를 더 체류한 뒤 ADE 기간이 지난 뒤에 귀국하는 것이 더 저렴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ADE를 처음부터 끝까지 즐기는 것 (?)으로 결정하였다.

*체류한 호텔이 시내 중심부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이 시내에 위치해 있었다면 당연히 2박 3일 일정의 전체 경비가 더 저렴했을 것이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항공료와 호텔비에 위기의 상황이 닥칠 뻔하였으나 시간을 쓰고 돈을 절약하는 대안(...)으로 그럭저럭 위기를 모면하였고, 어렵게 어렵게 ADE 공식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기 위한 기반은 마련되었다.


일단은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한 성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공연만 달랑하고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체류하는 일정을 최대한 알차게 사용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ADE 홈페이지와 이전 프로그램들을 살피며 가능한 한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게 된 ADE는, 말 그대로 잠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다양한 스케줄과 에피소드들로 채워졌고 거의 실신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지에서의 직접 경험한 ADE는 아래의 글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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