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얼마전부터 팔이 아프다고 했다. 아니 예전부터 팔이 아프셨지만 이제야 큰 병원에 갈 엄두를 내신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뵙기로 하고 아침일찍 서둘러 아기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아빠를 만났다. 진료실에 함께 아빠와들어가고 검사하는 장소까지 함께가고 그 사이에 아빠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아빠에게 수술을 권하셨고 흔쾌히 수술스케줄도 함께 정했다. 검사 등을 모두 하고 오니 밖에는 주룩주룩 비가왔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벌써 곧 70인 아빠를 모시고 이렇게 병원에 오고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고 그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예전 아빠 손잡고 처음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고 했던 어릴 적을 떠올려봤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보는 아빠의 모습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아빠는 이제 나를 더 신뢰하며 실비 서류, 병원 진료예약 등을 나보고 알아서 해 달라고 하셨다.
아빠는 정형외과 검진을 마치고 또 내과에 가서 소화기 관련 약을 타셨는데 이것도 대기시간이 참 길었다. 약국에서 약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9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두분은 서로 본인들이 90이 넘었다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 사이에 우리 빠가 앉아계셨는데 아빠가 애기처럼 보이는 묘한 착시현상이 일었다. 나의 시선은 특히, 그 90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는 각각의 70대 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식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내가 오늘 아빠에게 병원 모셔가며 베푼 효도는 아빠가 예전에 나에게 베푼 양육의 메아리이다. 사실 아빠보다 엄마가 병원 더 많이 데려가고 엄마가 밤새 보살펴준 공로가 더 크지만 그 시간에 삶의 일터에서 생활비 벌어다 준 아빠의 공로도 크다. 아니 아빠로부터 양육으로 내가 받은 무언가 이전에 나는 아빠 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약국에서 만난 90대 부모를 모시는 70대 딸처럼, 나는 그 시작을 오늘 했는지 모른다. 아빠가 나를 키운 오늘까지의 시간인 35년만큼이나 나는 앞으로 그 시간만큼 아빠를 돌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키워주고 보살핌받고의 관계이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 어린이집에 들려 부모상담을 하고 어린 아가를 데리고 온다. "엄마 까꿍"하는 아가를 바라보며 정성껏 밥을 지어 떠먹인다. 자식과 부모 그리고 부모의 보호자로서의 자식에 대해 그리고 삶의 순환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