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앉기 시작한 200일 언저리부터 아기를 위한 동요를 많이 틀어놓는다. 300일이 지난 지금은 영상과 동요가 같이 나오는 영상을 많이 틀어준다. 조금이라도 육아의 고됨을 도움받아 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몸으로 함께 놀아주는 육아보다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그럴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들어서 익숙한 동요들도 있고, 새롭게 나와 가사를 익혀야 하는 동요도 있었다. ‘뽀뽀뽀’ 나 ‘곰 세 마리’ 같은 동요들은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동요 같다. ‘토마토’ 같은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라 신기하고 재밌었다. 토마토가 주스가 될 거라고, 케첩이 될 거라고 다짐하는 노래라니 신박했다.
몇십 년 전에 들었던 익숙한 동요들이 아기를 키우면서 한 발자국 떨어져 들으니 의문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출근 안 하는 걸 전제로 말하는 노래처럼 들렸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라 집에서 아기를 돌보지만, 곧 내년에 복직하게 되면 엄마도 출근하고 아빠는 육아 휴직해서 아기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엄마가 출근할 때 뽀뽀뽀, 아빠가 안아줘도 뽀뽀뽀’로 바꿔 불러야 하는 것인지. 아빠도 출근 안 하고 아기를 많이 안아주고 싶기도 할 테고, 엄마도 출근하고 싶을 수도 있다. 좀 더 중립적인 단어나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역사의 영어 단어가 history에서 herstory로 소방관이 fireman에서 firefighter로 유모차가 유아차로 변경되는 것처럼 말이다.
좀 더 중립적이게 바꾸어 보자면, ‘아빠가 안아줘도 뽀뽀뽀, 엄마가 쓰다듬어도 뽀뽀보’ 정도 되지 않을까.
두 번째로 의문이 들었던 노래는 ‘곰 세 마리’이다. 곰 세 마리 노래에는 세 가족이 나온다. 엄마곰, 아빠곰, 아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을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라는 가사가 새롭게 들렸다. 우리 가족과 같은 가족 구성을 가진 곰 가족인데, 생김새가 정말 달랐다. 우리 가족의 아빠는 날씬했고, 엄마는 뚱뚱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날씬하지 않은데 날씬해 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불어난 몸집은 쉽사리 단기간에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에 ‘페파 피그’라는 영국 애니메이션에서는 다른 충격을 받았다. 페파 피그 가족의 구성은 엄마, 아빠, 페파, 그리고 페파 동생 조지로 구성되어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엄마가 집에서 업무를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조지가 엄마의 컴퓨터를 자꾸 만지려고 하자, 엄마 피그는 단호하게 컴퓨터는 엄마의 일을 위한 것이므로 만지면 안 된다고 했다. ‘뽀뽀뽀’나 ‘곰 세 마리’ 같았으면 엄마의 컴퓨터가 아니라 아빠의 컴퓨터라고 설정이 되어있었을 것 같다. 설정 자체가 엄마의 컴퓨터라는 것도 놀라웠고, 아기에게 단호하게 훈육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점점 육아하는 아빠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당연시되면서 독박 육아에 가깝던 육아가 공통 육아로 변하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기를 낳은 아빠들은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3일 받을 수 있었다. 3일은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엄마가 아기를 하루 만에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아기가 태어나는 날, 퇴원하는 날,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는 날 딱 3일 허용되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수술을 하거나, 출산 과정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기력이 없을 수도 있다. 아기가 1박 2일에 걸쳐 나올 수도 있다. 이런 많은 변수들을 생각했을 때, 3일은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다. 그래서 으레 아기가 주말에 나오면 월요일에 나왔다고 해서 그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도 10월부터 배우자의 출산 휴가는 10일로 늘어났다. 근무 수 기준으로 2주 정도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보통은 출산 예정일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2-3일 정도까지 한 번 사용하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날부터 5일 두 번에 걸쳐 나눠 사용한다. 법으로도 1회에 한하여 출산 후 90일 내에 분할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10일도 짧게 느껴졌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기가 100일이 되기까지 엄마는 선잠만 잘 수 있다. 아기가 2-3시간마다 잠을 깨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교대해 줄 남편이라도 있으면 엄마의 본능인 수면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출산 휴가는 90일, 3개월 정도다. 아빠도 비슷한 정도로 휴가를 의무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엄마도 아기도 충분히 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