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를 외쳐왔던 5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나를 보고 성공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어떤 친구는 내가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는 게 대단하다고도 하고 어떤 친구는 내가 낭만적인 삶을 산다고도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유럽은 낭만적인 곳도, 대단한 것도, 성공도 아니다. 한국이 지겨운 사람들은 외국을 떠올리며 유토피아 같은 삶을 상상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이상적이지도 않고 한국과 같은 삶의 터전이다. 삶과 가까운 장소는 낭만적일 수가 없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유학하는 도시로 돌아오면 똑같은 지겨움을 느낀다.
오페어(입주 베이비시터)로 일했을 때나 독일에서 인턴과 학업을 병행했을 때, 힘든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나는 '존버'를 외치면서 정말 말 그대로 버텨왔다. 하지만 내가 버텨낼 때마다 얻는 건 스트레스를 밖으로 풀어내지 못해 생기는 몸의 병이었다. 우울의 증세를 인정하거나 제대로 인식할 수 없으면 신체는 몸의 증상으로 SOS를 보낸다. 나는 그 SOS 신호도 항상 뒤늦게 알아차려 엉망이 된 후에나 찾아내기도 했다. 외국인으로 사는 삶은 굴곡졌고 사건은 여러 번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어떻게 버텨왔다. 그런데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긴장이 풀리는 탓인지 버텨왔던 삶은 위태로워졌다.
한 번 와르르 무너져 내리자 버티고 있던 삶도 힘겨워졌다. 독일에 나와서 산지 5년째, 나는 무너질 때마다 돌아갈 집이 없다. 한국에서는 다른 도시에 있다가도 힘들어지면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에게 품어져 스스로를 충전하곤 했는데 이제 집은 가까운 곳에 없다. 모든 일을 혼자 버텨내야 한다.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단단했다고 믿었던 나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이제 이 불안한 생활을 버틸 힘이 없어졌다.
이제는 이십 대 중반에 처음 독일에 왔을 때보다 독일어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문화를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지를 안다. 외국인 유학생들과도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아주 사소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반복되고 쌓여 나를 더 지치게 만들고 힘이 든다. 어떤 날에는 독일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서 수업시간에 넋을 놓고 있다가 의견 공유하는 시간에 한마디도 꺼내지 않자 교수님께 한마디 듣기도 했다.
'이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아마도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 존버할 이유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기다려야하는 사람도, 옆에서 날 잡아주는 사람도 없다. 삶은 언제나 그랬듯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고 언제든지 또 무너질 수 있다. 아니, 또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무너짐이 반복될 때마다 항상 나는 이전보다 더 크게 무너진다.
독일에 처음 와서는 베를린에서 살았는데, 베를린에서 항상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거나 떠나와야 했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베를린에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알게 된 지 몇 개월 만에 직업을 구하거나 학교에 합격하거나 하면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다. 오래 머물러 깊은 관계를 쌓더라도 모두 다른 도시로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나도 다른 도시로 학업을 위해 떠나면서, 결국 떠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자주 헤어짐을 경험하는 것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헤어짐에 더 예민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해외에 나와 살게 되면서 한국에 있다가 독일로 돌아올 때마다 친구들과, 가족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것을 여러 번 반복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공부 잘하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오라는 엄마는 내가 떠날 때가 다가오면 애써 생각을 비우려고 가구들을 옮겨 집 구조를 바꾸고 집에 있는 모든 화분을 분갈이하기 시작한다. 공항에서 엄마 아빠와 작별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게이트에서는 일부러 웃어 보이고 혼자 걸어가는 면세점 길은 헛헛하다.
행복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정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들을 1, 2년에 한 번씩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을 두고 왜 불안한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소중한 것들을 다 뒤로 하고 보잘것없는 성취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되면 나에게 성취 밖에는 남지 않는 건 아닐까. 허무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우연히 관심 있던 한국기업의 채용공고를 발견하고선 이력서까지 작성해버렸다. 졸업도 당겨버렸다. 어렸을 때엔 내가 안정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도 몰랐고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5년이나 살고서야 여기가 낯설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을 떠난 이후로 소속이 있든 없든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아직도 그런 생각이 안 든다. 나는 이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고 싶다.
내가 독일에 오게 된 이유도 반쯤 충동적인 것이었다. 원래 독일로 석사 유학을 올 생각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갑자기 독일어를 배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강신청이 불안정해지고 전공수업이 넉넉히 열리지 않자 이미 한국의 대학 시스템에 진절머리가 나버린 나는 바로 학기 등록을 취소하고 독일어 학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충동적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가고 싶던 학교에 갔고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내리려고 하는 이 충동적인 결정도 결국에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리라는 것을 안다.
5년을 해외에서 살아온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적응해야 한다. 나는 아마도 한국에서도 다시 버티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그런 것쯤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