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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 부유하는 사람

자가격리가 떠올리게 한 힘든 시간들.

by Faultier

요즘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조금 기분이 가라앉게 되고 감정은 조금 더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내가 요즘 그랬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 학기 중에 행복하게 열심히 살던, 쓸데없는 생각 따위 사람 만나느라 공부하고 작업하느라 떨쳐버리기 쉬웠던 나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그 반대로 생각을 많이 하고 (완전히 혼자는 아니지만) 외로운 섬으로 암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스스로 보면서 내가 베를린에 있던 때를 떠올렸다.




내가 베를린에서 아무 소속 없이 학교 입학조건에 맞추기 위해 독일어만 배우고 있을 때, 나는 인생 처음으로 소속이 없는 사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어학원에서는 매달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반 구성원이 바뀌었고 첫 수업에는 항상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 소개를 할 때 소속이 없는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아니면 종업원으로 일한다거나 학교를 다닌다거나 했다. 같은 유학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소속 없는 소개를 할 때의 어색함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처음 베를린 생활은 즐거웠다. 어학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모든 게 신기하고 흐린 날씨마저 좋았다. 어학원에 있는 친구들은 다양했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친구들과 친해졌고 어떤 친구들과는 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어떤 친구들과는 보드게임을 하기도, 어떤 친구들과는 요가를 하기도, 어떤 친구들과는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항상 떠나갔다. 베를린은 정착하는 도시라기보다는 거쳐가는 도시이기 때문에 친구들은 어학을 베를린에서 하고 취직은 다른 나라나 도시에서 하고 합격한 학교에 따라 이사를 갔다. 어학 수업만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턴쉽만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매달 바뀌는 반 친구들, 깊게 친해질 틈도 주지 않고 떠나는 친구들을 보내주면서 너무 힘들었다. 처음엔 베를린을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점점 내가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정신이 풀린 사람처럼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발을 땅에 붙이고 서있는 사람. 그래서 베를린에서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을 땅 위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났고 나도 함께 무게감있이 서있다고 생각했다. 한 삼 개월 동안은.


그 이후 나는 다시 허공에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사실 나에겐 놀 수 있는 누구보다 명백한 면죄부가 있었는데 그건 대학합격증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2년 반을 소속 없이 지낸 나는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로 베를린을 떠날 생각만 했다. 베를린만 떠나고 학교만 입학하면 나에겐 이제 소속이 생기고 나에 대한 정의가 생긴다. 나는 나를 위해 주어질 그 단어 하나만을 바랐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도 나는 불안정했다. 베를린에서 만났던 발을 땅에 붙이고 서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도 헤어지고 친구들을 만났는데도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또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발을 땅에 붙이고 서있는 사람'을. 하지만 내가 허공을 떠다니는데 어떻게 안정된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불안한 사람만을 만났다. 헤어졌다던 그 사람도 이제 생각해보면 나를 땅으로 끌어내려 붙여준 적 없다. 같이 부유하고 있었고 그런 사실을 잊게 해 줬을 뿐.


그렇게 함께 불안해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어느 날 이 불안한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내가 거부하던 안정적인 사람들이 불안정적인 나를 거둬들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안정과 불안정에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지 않았다. 땅에 두 발로 서있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공기 중에 떠다니지 않던 때가.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뭔가를 해야 한다거나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강박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를 채워줄 사람, 나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되찾았는데 요즘 많은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면서 베를린에 있던 나를 떠올리게 됐다.




원래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무디고 나를 돌보는데 인색한 사람이지만 예전에 제대로 겪어본 감정은 그 초입에만 발을 들여놔도 느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들어서고 있는지. 내가 불안정해졌다는 징조는 나에게는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내가 사람들의 연락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그중에 하나다. 나는 원래 연락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에다가 핸드폰도 무음이라 자주 확인을 안 하는 편인데 가끔 불건강한 상태일 때 살짝살짝 집착하고 싶은 마음이 비칠 때가 있다.


이런 불안함이 나타날 때에는 사람들과의 연결감이 너무 약하게 느껴질 때이다. 사람들과의 연결감은 예를 들면 아동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부모와의 애착관계 같은 것이다. 나무가 부모고 나무와 나를 연결하는 끈이 애착관계여서 내가 어려서부터 이 애착관계를 튼튼하게 형성해 왔으면 이 연결된 끈을 믿고 나무와 멀리 떨어져도 불안하지 않다. 부모 나무와의 연결처럼 나는 친구 나무와의 연결이 튼튼함을 알고 있을 때엔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 불안하지 않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아직 신뢰관계를 못 쌓았을 경우나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을 경우에 그 연결을 신뢰할 수 없어 불안해진다.


요즘에 갑자기 연락을 너무 자주 확인하면서 연락이 아무에게도 오지 않으면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감정에서 발을 빼서 되돌아가기 위해, 친구 나무와의 연결끈을 다시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사람들과 얘기하고 화면 속에서 만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뜨려고 하는 나를 빠르게 잡아서 바닥에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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