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이 아닌 표현
시각디자인은 학교 밖을 나서면 고객이 있고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작업을 해야하지만 학교 울타리 내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직접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표현할 수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많고 자신의 주제를 정하는 방법도 표현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주장을 전달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이 단순하게 이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작업도 있다.
나의 작업에는 가치판단이 없다.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맡긴다. 가치판단은 없고 이론만이 있다. 오랜기간에 걸쳐 읽었던 사회학책의 머릿말에서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도덕적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구절이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그 머릿말의 일부는 내 작업의 기본적인 입장이 되었다. 나는 이론을 토대로 작업하지만 결말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작업하기 전에 내가 관심있는 주제를 여러가지 정해두고는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처음에 단어의 나열이었다가 마인드 맵이었다가 리서치와 메모였다가 긴 글이 된다. 글보다 시각적인 표현을 먼저 시작하는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나는 글을 먼저 쓴다. 이론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으면 컨셉이 흐려지고 시각적인 표현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교수님께 한 달동안 글을 가져가 보여주다가 글 말고 비주얼을 가져와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론 없이는 표현도 없다.
글의 주제는 대부분 내가 일상에서 던지는 질문들과 평소에 관찰하거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이 합쳐진 것이다. 그것들을 나는 대부분 가능한 한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감정에 관한 것일지라도.
표현방식은 이론을 위한 도구다. 어떻게 표현할지는 모두 이론에서 시작된다. 종교로서의 로맨스라면 종교가 무엇이고 로맨스가 무엇이고 두가지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를 먼저 조사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성스럽고 로맨틱하다고 느끼는 지를 조사한다. 예를 들어 로맨틱한 이미지라면 가벼운 파스텔 톤의 색상에 너무 선명하지는 않고 약간 뿌옇다. 로맨틱한 시간대는 해가 쨍쨍한 점심이라기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다. 로맨틱한 장소는 일하는 곳이나 집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곳이다. 현대의 로맨스가 서로를 소비하는 것이라면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한 도구다.
이런 이론과 이론의 표현은 내 삶에 기반하지 않는다. 내 인생을 작업으로 옮긴 것이 아니다. 내가 읽는 책을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것처럼 내 작업도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길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것도, 내 삶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사회 전체적인 흐름과 사회적 사실의 관계를 관찰하고 거기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것을 공유하고 싶고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한 것 뿐이지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거나 삶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졸업작품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그래서 나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것이 나쁘냐고 좋으냐고. 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는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희망적인 교훈도 주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삶은 다양하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다른 사람의 정답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관찰한 것을 이미지로 옮기는 것 뿐이다. 그 관찰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작업이 내 손을 떠나고 나면 작품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이론을 펼치는 사람이 글을 쓰듯이 나에게는 글 대신 시각 언어가 있을 뿐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https://www.studentartguide.com/articles/how-to-make-a-mindmap-creative-id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