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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Oct 13. 2024

03.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써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러면 야기 씨는 몇 위예요?”

“……네?”

“웹소설이 쭉 있을 거 아녜요. 1위부터 100위까지 있다고 치면, 대충 몇 위 정도인지-”


돌아온 명절, 내 직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형부가 물었다. 몇 위, 몇 위냐고? 나는 질문의 요지를 곱씹다 대답 같지 않은 대답을 횡설수설 내놓았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렬로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고, 작품은 매일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작품이 출시되는 플랫폼도 하나가 아니고, 그중 딱 하나만 꼽아서 세도 이미 나온 소설 몇만 작 중 100위 안에 드는 수준은 아니고, 메이저냐 마이너냐 구분하면 마이너에 가깝고, 저 진짜 그 정도는 아니고…….

나조차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로 대화는 어영부영 마무리됐다.




순위, 순위라. 사실 웹소설은 특성상 눈에 보이는 지표를 확인하기 무척이나 쉽다. 아니, 그게 전부다. 조회 수, 별점 수, 평균 별점, 댓글 수까지. 구체적인 매출을 제외한 모든 숫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도 작품 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다른 작품과 비교하기 최적의 환경이란 의미다. 심지어 비교는 단순히 ‘비슷한 시기에 런칭한 작품이 더 잘 돼서’로 끝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주 촘촘하게 나와 다른 작가, 내 소설과 다른 소설을 저울질하며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간 질투를 하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손이 빨라 하루에 10편씩 턱턱 완성해서

2.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 랭킹에 올라서

3. 최상위 프로모션을 받아서

4. 겸업인데도 일일 작업량이 나와 비슷해서

5. 오래전 낸 작품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독자층이 있어서

6. 밀도 높은 세계관을 구상해서

7. 깊이 있는 문장을 쓸 줄 알아서

8. 취향이 확고해 ‘@@남주’, ‘##물’의 대명사로 불려서


타인의 겉모습은 언제나 반짝인다. 이 일방적인 색안경이 심화되면 그가 고뇌하고 분투하는 과정조차 멋스럽게 여기게 된다. 질투는 나와 상대가 아주 멀어서, 막연한 환상과 오해가 빚어져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가깝기에 디테일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흡입력 있는 글을 읽을 때면 순수하게 경탄하다가도 번번이 내 작품과 비교하고 만다.


어떡하지?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있는데 사람들이 내 글을 볼까? 굳이? 내 글의 장점은 뭐지? 웹소설치고 너무 밍밍한가? 다른 작가들은 다 마라탕후루어쩌고 이런 고자극 이야기를 쓰는데 이런 슴슴한 순두부탕 같은 전개로 어쩌자는 거야? 그치만 난 순두부탕이 좋다고, 이 맛알못들아! 아, 근데 이런 건 나랑 비슷한 소재를 써도 사람들이 많이 봤잖아. ……재밌어. 이런 작품이 세상에 있는데 내가 쓴 건 뭐지?


숱하게 언급했다시피 원고 중인 작가는 심신미약이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위태로운 정서로 주관적인 비교를 반복한다.




한땐 완벽하게 내 취향인 소설을 접하고서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소설이 있는데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까?’ 전전긍긍했다. 데뷔한 지 3년이 지났다고 한들 이런 압박감과 자기 의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공포에 시달리진 않는다.


실력을 갈고닦아 딱 들으면 아는 유명작을 배출해서는…… 절대 아니고.


독자들은 ‘제일 유명한 딱 한 작품’만 읽진 않는다. 특히 취미가 웹소설 읽기인 사람들은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며 이 작품 저 작품 찍먹(=어 어 본다. 시험 삼아 미리보기 혹은 무료연재 분량 등을 통해 계속 읽을지 아닐지 간을 본다.)한다. 그 사람들은 내가 읽은 ‘이렇게 재밌는 소설’도 읽고 비슷한 취향의 다른 소설도 읽는다.


인생 작품은 인생 작품이고, 독서는 독서다. 당장 나부터-그리고 생활 독서인 다수가 그러겠지만- 취향인 이야기를 찾아 무수한 플랫폼을 누비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남이 쓴 글로 만족할 수 있었으면……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독서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결핍감으로 책상 앞에 앉게 되었으니 운명에 순응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이로우리라.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대단한 경지에 이른 생불 같은데, 진짜 그랬다면 질투심에 사로잡혀 종종거리지도 않았겠지. 1, 2년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근사한 성취를 내보이는 이들이 부럽다.


거금의 인세를 시민단체에 쾌척할 수 있는 수입도, ‘레전드’로 회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창의력도, 데뷔하자마자 몇백만, 몇천만 조회 수를 달성한 실력도. 전부, 전부, 전부.


터무니없는 비교임을 안다. 그토록 대단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애썼을지는 속 편히 무시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한날, 막연히 부러워하기만 한 분을 실제로 만나 작품 이면의 고생을 들은 뒤 겸허해지기도 했다.


데뷔하자마자 초고속 히트? 그전에 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냈을 수도 있다. 필명만으론 ‘진짜’ 신인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데뷔는 아니더라도 습작을 오랫동안 꾸준히 썼을지 아닌지 무슨 수로 알까.

출간하는 작마다 대박? 출간과 출간 사이 보이지 않게 엎어지는 무수한 이야기를 제삼자는 모른다. 또한 하위 프로모션을 받는 경우 작품을 아예 내지 않고 다른 소재로 새로 쓰기도 하니…… 눈에 보이는 글자 수가 전부가 아니다.


단언컨대 내가 모르는 사연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모든 작가가 지금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괴롭게 쓰고 있는지 동네방네 떠들지는 않으니까. 하물며 나조차도 SNS 게시글은 ‘이번에 런칭 예정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호호’ 정도로 정제해서 올리고.


머리론 다 알아도 몸이 지치거나 일상이 우울하면 뾰족한 마음이 푹 올라올 때도 있다. 내 상황은 형편없고 각박하고 불안정한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나보단’ 나아 보인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난 나 외의 사람이 될 수 없는데.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오로지 ‘내가 쓴 글’ 뿐이다. 강점을 키우고 단점을 눌러 세상에 선보인다 한들 내 글은 언제고 내 글이다. 내 마음에 들든 아니든. 


아, 그래도 오늘은 노력 없이 그 작가님의 실력을 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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