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7:00 ~ 8:00 - 기상
환복 후 아침 식사
AM 9:00 - 일
(40분 집필/20분 휴식)
오늘 치 원고 맞춤법 검사
메일 확인 및 회신
PM 1:00 – 점심 식사
PM 2:00 – 교정고 수정(없으면 퇴근)
PM 5:00 ~ 6:00 – 저녁 식사
PM 8:00 – 운동(주 2회)
안 가는 날은 산책/러닝
PM 11:00 - 취침
※ 주말과 공휴일은 작업일에서 제외한다.
직장에 적을 두지 않은 프리랜서의 묘미는 자유로운 업무 시간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동료 작가님들과 근황을 나누다 보면 생활 리듬이 다들 제각각이다. 그중 오전 4시에 SNS에서 종종 마주치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명은 안 잔 것이며 한 명은 막 깨어난 것이다. 그들의 일과는 새벽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하지만 나는 위에 정리했다시피 보편적인 직장인처럼 업무를 수행한다. 정해둔 시간에 정해둔 분량만큼. 컨디션이 나빠 원고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도, 컨디션이 좋아 평소보다 빨리 써진다고 해도. 혼자 약속한 과업이 끝나면 오탈자 검사만 마친 뒤 휴식의 나라로 떠나 버린다.
퇴고를 하거나 트리트먼트를 만드는 날에도 큰 흐름은 비슷하다. 나는 10화 단위로 작업하기에 초고 10편이 쌓이면 그 10화를 전체적으로 다듬은 뒤 이어지는 10화 분량의 트리트먼트(=화별 세부 줄거리. 기승전결을 전부 짜놓는 경우도, 대사만 미리 적어놓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 작가마다 그 쓰임과 작업 방식이 천차만별.)를 쓴다. 소요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부분 하루, 이틀을 통째로 쏟아야 한다.
특히 트리트먼트는 회당 세부 줄기를 정립하는 작업인지라 고도의 창의력을 요하고, 후반부 전개가 떠오르지 않으면 진정 울고 싶어진다.
말만 한 성인이 책상에 이마를 처박고 ‘왜…… 뭐가 문젠데, 뭐가…….’라며 울먹거리거나 거실을 배회하며 ‘와 시발 큰일 났네? 하나도 안 떠오르는데? 어떡하지?’를 연발하는 대환장 쇼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
슬프게도…… 상시 공연으로.
고통받는 작가를 도와줄 비장의 무기?
그딴 건 없다.
이 고통을 다음 날까지 미룰 수 없다는 일념으로 의자에 앉아 펜을 굴리든 키보드를 두드리든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그 일을 빨리 끝내는 거라는 천재 아이돌 전소연 씨의 말처럼.
그래서 나는 정각이면 컴퓨터 책상 앞으로 돌아가 작품 내 타임라인, 인물 간 감정 변화, 과거 뿌려뒀던 복선을 다시 끼적여가며 다시 머리를 부여잡는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물도 마시고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도 쐬다가,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밤을 지새우다 한밤에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역사적인 창작물을 완성하는 상이 예술가의 전형 같지만……. 현실에서 그랬다간 담당자와의 길고 긴 통화, 호르몬 수치 불균형으로 파생된 만성 질환, 점점 길어지는 사과 메일과 전날과 똑같은 원고만이 작가를 기다린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작가는 집필 노동자이며 정해진 분량을 정해진 시기에 납품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도 쓰기 외의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밥도 먹고 햇볕도 쬐고 운동도 해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예술은 삶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생계 수단이자 생활의 일부다. 완결과 한 발짝 가까워지려면 환상적인 계시를 기다리기보단 당장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한 자라도 적어야 한다. 취미라면 그저 즐거운 대로 움직여도 괜찮겠지만, 업이라면 결국 요행보단 성실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멍한 눈으로 아침을 먹고, 정각이 되면 글을 쓰고, 40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하고.
원고를 할 때 음악은 듣지 않는다. 집중력을 올리려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들이켜지도 않는다. 예술가의 동료 격인 커피나 홍차 같은 카페인 음료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러 나가고. 이런 생활은 언뜻 들으면 금욕적인 인상을 주기에, 모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잠잘 때 빼고 전부 맨정신으로 살 수 있어요?”
“사람은 보통 맨정신으로 살아요.”
“현대인은 그럴 수 없어요.”
알코올과 니코틴은 아니라도 카페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내 주변에도 많다. 커피 한 잔을 마셔야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는 친구부터 커다란 스테인리스 컵으로 물처럼 커피를 마시는 동료 작가까지.
내가 그러지 않는 건 절제가 몸에 박힌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카페인이 몸에 안 받기 때문이다. 카페인 함량이 낮은 차만 마셔도 불안 증세가 심해지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위장에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 또한 시작은 위와 비슷하다. 이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으면 호된 후폭풍에 휩쓸리고 마니까.
이른 나이에 어떤 병증으로 아팠고, 수술을 받았으며 회복했으나 우리나라에선 신화와도 같은 ‘젊고 건강한 몸’ 협회에선 추방당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다음 날 배로 골골거리고, 온도 변화에도 취약하며 끼니를 거르면 온갖 장기에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천천히 학습해 나갔다.
지금 같은 루틴은 이렇게 허약하고 예민한 내가 최선의 컨디션으로 글을 쓰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완성되었다. ‘완성’이라고 하기엔 수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어쨌거나 현재는.
매일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나의 최선은 내 100%를 쥐어 짜내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할 수 있을 만큼의 70~80%를 의미한다. 쓰기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