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기 Oct 06. 2024

01. 많이 써야 할까 잘 써야 할까

둘 다 되면 최고겠지만

“글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써요?”

호기심 섞인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두 가지였다.


1) 많이 썼으니까.

2) 난 빨리 쓰는 축도 아닌데.


웹소설은 빨리, 많이 쓰기에 특화된 장르다. 모든 웹소설 작가가 글을 공장처럼 뽑는데 특화된 인재여서는…… 아니고, 매일 쏟아지는 작품 사이에서 1초라도 주목도를 올리려면 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부 장르나 출간 형식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로판 연재 기준 편당 3,300자에서 4,500자 사이를 써야 한다. 플랫폼이나 출판사 규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지금은 3,500자에서 4,000자 사이로 1화를 마무리 짓는다.


그러면 이 작업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당연히…… 작품을 완결 낼 때까지지.


이 역시 플랫폼마다 다르긴 하지만, 최소한 100화 이상은 써야 한다. 100화. 글자 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대충 40만 자 정도. 물론 100화는 정말 최소한이며 120화, 150화 완결을 조건으로 플랫폼과 계약했다면 그만큼 써야 한다.

세상에, 그렇다면 편 단위로 제공되는 유료 연재가 아니라 이북으로 곧장 출간되는 작품이면 나을까?

단행본의 권당 분량은 통상 10만 자다. 분량이 5만 자 내외라면 단편, 1~3만 자 내외로 완결이 난다면 ‘초단편’이라고 명명한다. 200자 원고지 80매가 단편인 문단 문학과는 차이가 있다.


여하간 웹소설을 쓴다면 어떤 장르와 형식을 골랐든 손이 빨라야 무조건 유리하다. 그렇다면 빨리, 많이 쓰기만 하면 무조건 오케이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낫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기에, 나는 4년 내내 신작을 쓸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고-과장이다- 한글 창을 보다 비명을 지르게-이건 사실이다- 된다.


모든 작품은 플랫폼의 심사를 거친다. 이 심사에 따라 어떤 프로모션을 받을지, 즉 몇 월 며칠 어떤 위치에 작품이 선보일지가 결정된다. 소위 말하는 ‘좋은’ 프로모션은 그만큼 유저에게 노출이 잘 되는 자리를 배정받는단 의미다. 반대로 하위 프로모션을 받는다면 작품은 사람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가 무수한 신작에 휩쓸려 가기 십상. 심지어 시장 상황이 열악해진 터라 그 하위 프로모션마저 받지 못하고 심사에서 똑 떨어져 노출의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한 경우도 늘었다.


유료 연재의 경우 플랫폼 심사는 작품 시놉시스와 10화 분량의 원고로 이뤄진다. 내가 공들여 쓴 작품이 묻힐지 말지가 4만 자 내외로 승부가 나니, 작가들은 이 10화를 갈고 닦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담당자와 사건 배치와 서술 방식, 시점을 바꿔 가며 3, 4번씩 다시 쓴 적도 있고.

그렇다고 ‘정말 재밌는’ 한 편, 한 편을 위해 매번 심혈을 기울여 엎고, 갈고, 고쳐 쓰고 다시 쓰면 만사형통일까? 그건 또 아니다…….


‘어쩌라는 거야?’ 싶을 수도 있는데 나야말로 세상에 묻고 싶다. 진짜 어느 장단에 맞춰 대가리를 돌리라고…….




유료 연재는 속도가 관건이다. 연독률(= 작품을 꾸준히, 이탈하지 않고 속해서 는 비)을 유지하려 주 7회 연재가 넘치는 판에 한 편, 한 편을 일주일, 한 달씩 잡고 있는다면……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기에 작가는=나는, 빨리 쓰고 적당히 가다듬어 내보내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퇴고는 엉성한 초고를 견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고의 횟수가 작품의 질을 보증하진 못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시장 분석 끝에 탄생한 작품이 망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휘갈긴 작품이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는 것처럼.


포인트는 내려놓기다. 적당한 타이밍에 넘기고 다음으로 넘어갈 줄 아는 결단력. ‘조금만 더 수정하면 더 나아지겠지’라는 바람으로 고치고 또 고치지만, 정말 그럴까? 같은 내용을 너무 많이 읽어서 ‘최종.hwp’, ‘최최종.hwp’, ‘진짜 최종.hwp’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보이지는 않고?

나는 그게 어렵지 않았다. 특별한 훈련을 거치진 않았고, 성향 덕분이었다. 한 번 매듭지은 글을 쉽게 쉽게 떠나보냈다. 오히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조급증 탓에 퇴고의 중요성을 체감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초고 한 편을 몇 시간 만에 써야 하는지, 퇴고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는 성향에 따라 다르다. 한 편을 30분 만에 쓰고 퇴고를 숱하게 반복하는 작가도, 하루 꼬박 걸쳐 쓴 다음 오탈자만 가다듬은 뒤 끝내는 작가도 있다.

어찌 되었든 본인이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뭔들 어떨까. 물론 담당자님과 합의해서……. 이런 연재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면 곧바로 이북 출간을 하는 방식을 노리는 경우도 있고.(물론 이 경우 여성향 장르는 대개 19금을 달아야 독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 이와 관련된 애로사항은…… 아자아자 파이팅.)


나 역시 연재물을 집필할 땐 아침과 점심 사이 두 편을 완성한다. 오탈자는 그날 작업이 끝나면 바로, 퇴고는 10편 단위로 몰아서 한다. 이런 습관은 내 생활 리듬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데- 이 얘기는 뒤에서 다루도록 하고.

이렇게 뭐라도 된 듯 줄줄 적었지만 처음엔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고꾸라져도 경험이고, 작가란 종족은 ‘진짜’ 깨닫기 전까진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와닿지 못할 테니-내 얘기다-. 사람마다 작업 방식과 지향점은 천차만별이고, 잘 맞는 방법은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다.


정답은 없다. 마감만 있을 뿐.

이전 01화 00. 원고 중인 작가는 심신미약 상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