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대로다.
빈 화면에 글자들로 씨름하고 있는 작가들은 높은 확률로 상태 이상 디버프가 걸려 있다. 판단력이 떨어지고 폭력성이 증가하며 외부 자극에 민감해진다.
아차. ‘나는 아닌데?’하고 반문하는 다른 작가 당사자가 읽을 수도 있으니 다시 쓰자면, 나는 그렇다.
‘글을 쓰는 나’는 ‘그렇지 않은 나’보다 쉽게 피로하고 심약해진다. 분명 머릿속으로 구상할 때만 해도 빨리 쓰고 싶어서 속이 달았던 이야기였는데, 쓰고 있자면 처치 곤란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재밌을까?’라는 답 없는 질문은 높은 확률로 ‘재…미? 재미가 뭐지?’로 진화한다. 어휘를 막 학습한 로봇처럼 재미의 의미를 고찰하다 보면 처음 고민을 시작한 원인은 잊고, 무한한 수렁에 빠져서, 덧없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오늘치 마감을 하지 못하면…….
적당한 통찰과 반성은 어느 직군이건 필요하지만, 과한 생각은 보통 독이다. 특히 눈앞에 해치워야 할 원고가 있다면, 그런 의문은 잠시 접어두는 게 낫다.
왜냐하면…… 원고에 매몰된 나는 오늘 쓴 이 두 편이 ‘객관적으로’ 괜찮은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쭉 써본 사람이라면 오늘 쓴 글이 내일 구려 보이거나 3년 전 쓴 글이 세기의 역작처럼 느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안목이란 이렇듯 가변적이며 제멋대로다.
특히 상업 작가에게 글이란 단순히 자기만족의 수단이 아니다. 시장에서 유행하는 흐름을 읽어야 하고, 독자의 입맛을 분석해야 하며, 결론적으로 그 흐름과 입맛을 얼마나 반영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선 ‘재미없으면 어떡하지?’만큼이나 ‘재밌긴 한데…… 어떡하지?’ 역시 골칫덩어리가 된다.
무슨 소리냐고?
당연하지만 내 글이 재밌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드물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나는 같은 불안에 빠진다.
“이거 괜찮아……?”
요컨대 내 안목을 신뢰할 수 없기에 발생한 비극이다.
재밌음 → 나만 재밌나?
재미없음 → 나만 재미없나?
물론 작가라고 해서 매분, 매초 이 생각에 매몰되진 않는다. 그랬다면 원고고 나발이고 다 엎은 뒤 속세를 등지고 절로 들어갔을 테니까. 하지만 주기 혹은 빈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불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순 없다.
술술 쓰다가도 문득 겁이 나고, 막히면 더더욱 갑갑해진다. 자꾸 이미 써놓은 부분을 연어처럼 돌아가고 싶어진다. 특히 이런 순간 바깥에서 공사 소리가 들린다거나, 동거인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진심으로 창문을 깨고 와장창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다시 강조하는데, 원고 중인 작가는 심신 미약 상태다.
Q. 그렇다면 작가는 영원히 이 굴레에서 고통 받아야 하나요?
A.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하지만 나라고 해서 항상 괴로워하진 않는다. 부득불 마음을 침범하는 자기 의심에 일일이 반응했다간 마감 기한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어떻게 하냐면……
그냥 쓴다. 뒤돌아보지 말고. 뒤를 돌아봤기에 아내를 살릴 기회를 놓친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기억하면서. 우선 목표 분량까지 쓴 다음, 고쳐 쓰는 건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상황이 급하다면 담당자의 안목을 믿고 넘기거나. 담당자가 없거나 썩 미덥지 못한 상황이라면- 음, 뭐, 어차피 원고 중인 나도 믿을 수 없는데 굳이 지금?
당연한 말이지만 써놓은 글이 있어야 고칠 글도 있다.
이미 미로에 발을 들인 이상-미로의 존재조차 모른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가능할까?-, 헤매야만 탈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재바르게 발을 놀려서 적극적으로 헤매는 것.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출구는 반드시 나온다. 그 과정에서 미로 꼴이 말이 아니게 될 수도 있고, 도착한 곳이 내 예상과 다를 순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 근데 이번 편 괜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