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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Nov 19. 2023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11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나는 겁쟁이다. 어릴 때부터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유난히 많았다. 요즘도 하루에 수백 번 ‘하느님,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두려워요.’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몇 년 전부터는 공황장애도 생겼다. 차를 20분 이상 타려면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도 나는 두렵다.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두려움이 많은 나지만 돌이켜보면 대담한 행동을 한 일이 몇 번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013년 2월, 나는 보은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원 입회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고 이미 수련장 수녀님의 지도하에 수도원 생활 체험까지도 마친 상태였으며 몇 월 며칠에 짐 싸서 들어오면 된다는 말씀까지 들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돌다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꼭 두드려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세상’에서 살아갈지 수도원에서 살아갈지 마지막 타진이 필요했다. 그래서 1년간 나 자신에게 유예기간을 주기로 하고 2013학년도 동안 고3 담임을 한 뒤 2014년 1월 프랑스로 떠났다. 보은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모원(母院)인 프랑스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총원장 수녀님께 면담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다. 아비뇽까지 가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새벽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어느 시골 정류장에 내렸다. 거기까지 나를 픽업하러 오신 아주머니의 차로 수도원에 갔고 수도원 응접실에서 연세 지긋하신 총원장 수녀님을 만났다. 한 시간여의 대화 끝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달은 상태였다. 이 면담 덕분에 나는 ‘세상’에 남았다. 세상 속에 용감히 뛰어들어 살아가며 할 일이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총원장 수녀님은 당신을 만나겠다는 나의 요청이 ‘대담했다’고 평하셨다.

     2022년 1월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몇몇 갤러리들에 이메일을 보냈다. 내 소개와 함께 2023년 1월에 개인전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그 중 답신이 온 곳과 계약을 맺었다. 2022년 5월에는 파리의 벨빌(Belleville)에 있는 공공 성격이 강한 갤러리에 전시 계획서를 제출했고 곧 전시 승인을 받아 계약을 했다. 그렇게 해서 2023년 1월부터 2월까지 파리에서 두 차례의 개인전을 치렀다. 더 넓은 세상에 내 그림을 선보이고 그곳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준비하고 실행한 일이었다. 어떻게 파리까지 가서 전시를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제가 뚫었어요.” 그렇다. 대담하게도 내가 그냥 뚫은 길이었다. 내년 2월에도 나는 내가 뚫은 길을 따라 파리에서 전시를 할 계획이다.

     2023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앞두고 교육부는 ‘파면, 해임, 형사고발’ 운운하며 교사들을 겁박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세종시 교육부 앞 집회 준비팀에 참여해 언론 담당 역할을 맡았다.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들과 소통했다. 집회 마지막 순서로는 내가 작성한 성명문이 낭독되었다. 참여하는 모든 순간 긴장도 되고 부담도 되었지만 신기하게 솟아나는 차분함이 있었다. 한겨울 새벽 공기처럼 맑고 차가운 느낌.

    9월 16일 국회 앞 집회 준비팀에도 참여했다. 집회 당일 3만여 명 앞에서 20분 동안 발언했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현재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변화가 생겼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힘을 모아야 할지에 대해 정리하는 발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 높은 무대 위에 서니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머리와 가슴은 차분했다. 하고자 했던 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또박또박 전달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전교조 충북지부 음성지회장과 전국대의원 선거 후보자로 등록했다. 이 도전을 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후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잃을 것이 없다.’였다. 활발한 소통과 기민한 대응으로 학교 현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겠다는 포부가 있고, 그 포부를 실현할 구체적인 계획도 있으니, 도전하자. 부딪쳐 보자. 이 도전을 두고 언제 망설였었나 싶게 어느새 착착 선거 운동을 해 나가고 있는 나.

     나는 겁쟁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두려워요.’ 그러면서도 손가락으로는 또그닥또그닥 침착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유난히 많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가슴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용기가 있다. 맑고 차가운 용기가 있다. 그 용기가 뚫어 주는 길을 따라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침착히 걸어갈 것이다. 오늘도 한 발 또 한 발 내딛으며 묻는다.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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