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갔다가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간만에 1호선을 탔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신도림역에서 타서 1시간가량 서서 가다가 수원역에서 자리가 생겨 앉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문 바로 옆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후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3명이 탔다. 둘러보고는 나란히 앉을 자리는 없었는지 한 아이가 “조금밖에 안 가는 데 서서 가지 뭐”라며 나머지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러고선 뭐가 좋은지 싱긋 웃는다.
아이의 맑은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분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화서역에 도착해 그중 한 친구가 내렸다. 내리면서 “나는 간다. 너네는 더 가야 하지 멍충이들아~” 하면서 놀린다. 가뜩이나 더 가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멍충이라고 놀림을 받다니 더 억울할 것 같았다.
남은 2명 가운데 한 명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고, 한 명은 오히려 신난 것 같았다. 친구는 가는데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는 “화서역 오랜만이다”라고 하며 내릴 것처럼 문 쪽으로 가더니 고개를 내밀고 화서역을 둘러본다.
화서역에 얽힌 사무치는 추억이나 사연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사실 그럴지도 몰랐다. 어떤 사연이 있고,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화서역을 참 반갑다고 여기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아이가 반갑다며 바라본 화서역 플랫폼은 어둡고 황량했다.
지금 다시 만난 화서역을 반갑게 여긴 마음에는 지난날 화서역에 얽힌 자신을 반가워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화서역을 반기는 감정은 그 아이 스스로 자신의 지난날부터 지금까지 전부를 긍정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지나온 시간들에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아이를 다시 만난 화서역 역시 아이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타고 온 1호선도 그랬다. 7년 전 영상 만드는 걸 배운다고 반년 동안 다닌 길이었다. 좌절하기도 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금 그로 인해 재밌게 사는 건 분명했고, 다시 돌아가도 이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만나게 된 오늘까지 시간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오늘 결혼식도 그랬다.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어느샌가 멀어진 대학 동기와 선배의 결혼이었다. 소식은 들었지만, 어색해서 안 가게 될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홀린 듯 발길이 닿았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꽤 오랜만에 보는데, 둘은 생각보다 너무 반가워했다. 내가 그들을 만나기까지 몰고 온 시간들도 같이 반겨주는 것 같았다. 몰랐다. 반겨주고 반김을 받는 것이 생의 위로가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