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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Oct 31. 2024

ARMY도 아닌데


10월은 총 300km를 달렸다.

강풍이 불지 않는 한 비가 오는 날도 뛰었다. 평균 페이스는 540을 겨우 맞췄다.

햄스트링을 다쳐서 어르고 달래 가며 뛰는 중이다. 지난주 JTBC 서울마라톤 레이스 팩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잊고 있다가 택배 알림을 받고 부랴부랴 웹사이트를 확인하고서야 11월 3일이 대회라는 것을 알았다.


작년 JTBC 서울마라톤 때는 떨어진 은행나무 잎이 도로와 인도에 한가득이었다. 그 기억이 강해서 가을 끝자락이라 착각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그날은 요즘 같은 날에 상상할 수 없는 날씨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온사방 낙엽투성이였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어찌 됐든 매일 뛰는 10k지만 하필 대회에서 햄스트링 때문에 중간에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정말 속상할 것 같아 살살 달래는 중이다.


_

레깅스를 입고 러닝을 하러 오가다 보면 남자들의 시선이 항상 특정 부위에 집중된다. 레깅스가 짧건 길건 보는 곳은 정해져 있다.


얼마 전 신호등에 서 있는데 옆에 계신 분이 내 몸을 훑었다. 그래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시선을 알고서도 어디까지 훑는지 지켜봤다. 발끝까지 쭉 보고 나선 말을 걸어왔다.


"마라톤 몇 번 참가해 봤어요?"

-신박한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러닝을 할 때, 마주 오는 상대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아도 다리 근육 모양이나 살이 얼마나 탔는지, 운동화는 뭘 신었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다 티셔츠 뒤에 쓰여 있는 마라톤 대회 명칭과 연도를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달리는 자세를 관찰한다.

그분도 비슷한 생각으로 보신 모양이다. 수십 번 풀코스 대회에 참가했지만 무릎 수술을 받아 더는 뛰지 못해서 반가움에 말을 걸고 싶으셨단다. 무릎에서 신호를 보냈을 텐데 관리를 못한 탓에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며 잘 관리해서 오래 행복하게 뛰라고 몇 번을 당부하셨다.


무슨 마음인지 안다. 올해에는 달릴수록 근육도 강화되어 발목이나 무릎 통증이 사라졌었다. 폭염 속에도 한 달에 120km 이상을 뛰었던 덕에 최근 날씨에는 벌써 두어 달을 300km씩 뛰고 있지만 거리를 더 늘려도 좋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내친김에 페이스도 500으로 당기고 거리를 15km까지 늘이려다가 대회를 앞두고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전에는 아프면 쉬어야지 했는데 요즘은 뛰다가 특정 부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덜컥 겁부터 난다. 못 뛰면 어떡하지.


_

JTBC 서울마라톤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잔뜩 보내줬다.

특히 평소 입지 않는 색깔의 옷을 보냈다. 예쁘지 않은 보라색이랄까.

'BTS 아미'도 아닌데 '나는 ARMY다.'라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도저히 못 입겠다.

등에는 "나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놓고 현수막을 달고 뛰는 느낌이 들게 대문짝만 한 글씨를 새겨놓았다. 심지어 며칠 전 보았던 2022년도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이 입고 뛰던 티셔츠와 색깔만 다르지 같은 디자인이다.


괘씸하다.

뛰는 맛이란 게 옷도 한몫하는데.


 

사진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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